양곤 외국어대 한국어과 학생들의 공연 모습.
장남인 캄피의 꿈은 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더위도 식힐 겸 동네의 유칼립투스나무 아래서 기분 좋은 나무향을 맡으며 이것저것 얘기를 나눕니다. 저도 질문이 많습니다. 말이 잘 통하니까요. 월급을 얼마나 받냐, 회사 시스템은 어떠냐, 여기선 대학 공부는 어떻게 하냐 등. 이 친구는 고향 얘기며 부모님 얘기, 고등학교 다니는 동생 얘기를 해줍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한 달에 한 번 꼭 고향에 갑니다. 그것도 월급받은 다음날. 그래서 물어봤더니 월급을 갖다주러 간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 그런 청년들이 많습니다. 때론 엄마들이 옵니다. 은행도 있지만 오랜 관행인 듯합니다.
얼마를 갖다주냐고 했더니 급여 딱 10만 짯(우리 10만 원과 비슷)에서 1만 짯을 떼고 9만 짯을 엄마에게 갖다 드린답니다. 1만 짯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고 하니, 회사에서 먹고 자는 건 대주니까 휴대전화 충전요금과 교통비까지 충분하다고 합니다. 제가 충전요금을 줄이고 줄여도 2만 짯이 들어서 뭐 줄이는 방법이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하루에 딱 한 번 엄마와 짧게 통화하는 게 전부입니다. 나머진 다 무료로 다운을 받아 씁니다.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 세워지는 한국어학당 및 기술교육센터. 필자를 비롯 한국인들이 직접 가르친다. 아래는 12월부터 중부와 북부 청년들이 공부를 하게 될 한국어학당 강의실.
캄피는 혼자 휴대전화와 책으로 한국말을 배워서 다양한 표현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우리말은 처음에는 배우기가 쉬운데 미얀마말처럼 3성은 없지만, 표현방법이 다양해서 나중엔 어렵습니다. 식당에서 손님들이 하는 말 하나도 여러가지입니다. 언제 문 닫죠? 끝났나요? 벌써 클로즈합니까? 조금 더 있어도 됩니까? 이게 다 같은 뜻이라고 하면 기가 막힌 표정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캄피가 한국서 일하는 자기 친구와 자신의 취업 때문에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모르는 말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데?”
“불금 때문에 머리가 아프데요. 불금이 뭐냐니까 그냥 금요일이래요. 왜 금요일이라고 안하고 불금이라고 합니까? 그날은 왜 머리가 아픕니까?”
웃음이 나옵니다.
“그 친구, 여친이 생겼나부다. 불금은 ‘불타는 금요일’이거든. 주말이 시작되니까. 여친이 없으면 머리가 안 아프고 보통은 기분좋은 날인데, 한번 물어봐라.”
한국에 유학해 관광경영학을 공부하는 미얀마 학생 메리 툰. 한국의 가을을 배경으로 자신의 부족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캄피야, 그 숙소로 가서 먹고 나면 설거지는 누가 하냐. 한국 아가씨들 안갈 걸. 분위기도 그렇고. 한번쯤은 나가서 좀 써야지.”
“걔는 쓸 수가 없어요. 부모님께 보내고 남은 돈으로 반찬도 사야 하고, 교통비에 통신비에 남는 게 없대요. 근데 선생님, 치킨에 쏘맥을 둘이 먹으면 얼마나 나옵니까?”
“치킨 만 원 잡고 쏘맥 만 원 잡고, 간단히 먹어도 2만 원은 들겠네. 영화 보면 4만 원 정도.”
“그렇게 비싸요? 그럼 저도 못 나갑니다.”
“그럼 그 친구에게 ‘처음 만난 공원에서 보자’고 해봐. 난 술은 못 먹고 운동을 좋아한다고. 거기 가면 1000원 하는 아메리카노 커피가 있어. 김밥도 있고. 김밥보단 떡볶이가 낫겠다.”
“선생님, 저도 친구가 자기 사장님에게 얘길 잘 해서, 한국말 열심히 하면 내년에 워킹포밋을 내준다고 하는데요. 한국 갈 생각하니 ‘불금’이 무섭네요.”
“캄피야. 한국 갔다온 삐양 씨 알지. 너도 한국 가면 ‘불금’에 나가지 말고 친구처럼 월급을 부모님께 보내 저축을 해. 너네 청년들 한국 갔다 빈털터리로 오는 사람도 있는 거 알잖아. 5년쯤 일하고 돌아와 양곤의 착하고 예쁜 여자와 결혼해. 삐양 씨처럼 고향 부모님께 이층집도 지어주고 땅도 사고. 동생도 대학 보내고. 얼마나 멋지냐?”
“예, 저는 장남이라서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불금’은 무조건 바쁘다.”
양곤에서 택시를 타면 한국말을 잘하는 기사를 곧잘 만납니다. 그 사람들은 대개 한국서 일했던 사람들입니다. 힘든 작업장에서 일하긴 했지만, 열심히 모으면 집도 짓고 땅도 사고 택시도 삽니다. 현재의 캄피 급여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캄피는 꿈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그에겐 꿈이 있기에 기회가 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캄피에게 ‘외국인들이 꼭 알아야 할 30가지’ 한국 청소년들이 자주 쓰는 용어를 적어주었습니다. 처음 보는 단어라고 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놀토, 생선, 어사, 버카충, 즐감, 강추, 담샘, 깜놀, 투투, 착한가격, 훈남, 악플러, 뻘쭘, 샤방, 생얼, 얼빵, 얼짱, 열공, 므흣, 야그 등. 다들 통신으로 소통하니까 줄임말은 100개가 넘는다. 그리고 카톡에는 단어 끝에 ㅇ을 자주 붙인다. ㅋ나 ㅎ를 따로 쓴다. 부호도 많이 쓴다. 그것도 언어다. 모르면 모르는 단어 끝에 ‘?’를 붙이면 넌 외국인이니 친절한 답이 온다. ‘?’을 붙여도 답이 없으면 넌 외계인이란 뜻이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