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헌대기아차와 정몽구 회장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성준 기자
글로벌 금융위기로 제대로 배울 기회를 잃고, 일자리마저 이민자들에게 빼앗긴 ‘덜 배운’ 백인들에게 돈 맛을 보도록 해주는 게 트럼프 당선인의 숙제다. 이 같은 정책은 반드시 취임 초기에 강하게 추진해 성과를 내야만 4년 뒤 재선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펼칠 방법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정부에서 10년 이상 장기채권을 발행해 시중에 풀린 달러를 정부가 거둬들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돈으로 정부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개발 사업을 벌인다. 경기부양에서 미국 기업들의 수혜를 극대화하고 상대적으로 해외 기업들의 기회는 줄이기 위해 무역장벽을 높일 것이 확실시된다. 불법이민에 대한 강력한 통제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곳은 자동차와 철강이다. 당장 국내 및 멕시코공장 등 미국 밖에서 만들어진 자동차에 대한 관세·비관세 장벽이 높아질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현지에도 공장이 있지만 철강과 주요 부품 등을 한국에서 가져갈 경우 그만큼 불이익이 예상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업체들도 해외에서 부품을 조달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 나오고 있다”며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자국 기업도 압박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LG그룹에도 트럼프가 썩 달갑지 않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친환경 에너지 쪽에 관심이 많지 않다. 오히려 기존 화석연료 사용을 더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LG화학의 북미 배터리 공장을 직접 방문했던 오바마 대통령과 정반대인 셈이다.
삼성전자도 트럼프가 껄끄럽다. 우선 반도체와 휴대전화에서 간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휴대전화는 애플에 이어 구글이 픽셀폰을 내놓은 점이 치명적이다. 북미에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는 이렇다 할 미국 기업 제품이 없었던 탓에 삼성 스마트폰의 시장점유율이 높았다. 그런데 구글 픽셀폰이라는 삼성 스마트폰의 강력한 대체재가 등장한 셈이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물론 미국 브랜드 스마트폰이 모두 해외에서 생산되느니만큼 삼성 제품에 관세장벽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며 “하지만 갤노트7 사태처럼 각종 규제와 안전문제 제기 등 비관세 장벽을 통한 견제는 이뤄질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반도체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對) 중국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을 펼치면서 간접 피해가 예상된다. 중국을 통해 미국으로 수출되는 전자제품이 견제를 받으면 중국 내에서 삼성 반도체 수요가 줄어드는 효과다.
전기차 배터리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트럼프 당선으로 북미시장에서 사업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종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관심이 큰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 인수합병(M&A)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등으로의 기술 유출을 이유로 M&A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며 “또 구(舊) 산업 우선 정책을 펼칠 경우 상대적으로 실리콘밸리 기술기업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진그룹의 고민도 커졌다. 그룹에서 공을 들이고 있는 미국 LA의 초고층 호텔 사업 때문이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트럼프재단을 통한 기업 경영에 간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의 사업 가운데는 호텔업도 있다. 한진이 트럼프와 경쟁관계에 설 수 있는 셈이다. 다만 트럼프가 호텔업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 경우 동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두산, 한화 등은 상대적으로 수혜를 기대할 만하다. 두산은 미국 건설장비 기업인 밥캣의 대주주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수요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한화는 주한미군 역할의 상대적 축소로 방산 부문에서 상대적 수혜가 기대된다.
한편 트럼프가 자국 중심 경제정책을 펼치면 국내에서는 가계부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의 주력 수출기업 실적이 악화되면 구조조정 등으로 일자리가 압박받고, 이는 가계소득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무역수지 악화로 외국인 자금 이탈까지 가속화될 경우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환율이 급등하고 시장금리가 오를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는데, 모두 빚 부담을 높이는 요인들”이라고 꼬집었다.
최열희 언론인
대기업 총수들 ‘최순실 게이트’ 스트레스 고조 트럼프 당선으로 사업적 고민이 커진 대기업 총수들의 ‘최순실’ 스트레스도 더 높아졌다. 검찰이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것으로 알려진 대기업 총수들을 소환해 조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7곳 이상의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로 소환당하는 사상 초유의 장면이 연출될 전망이다. 청와대는 대기업 총수들을 어떻게 압박했을까. 당시 독대 내용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와야 확인될 수 있지만, 청와대에서 기업별로 어떤 압박 수단을 활용했을지 어느 정도 추정은 가능하다. 과거 정권의 경우 금융권을 통해 돈줄을 조이거나 세무조사로 먼지를 터는 방법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높지 않고, 세무조사는 표적조사라는 여론 부담이 커 동시에 여러 기업에 적용하기 어렵다. 고전적 방법 외에도 각 기업별 고민을 잘 알면 다양한 압박 수단이 가능하다. 청와대가 여러 대기업을 동시에 압박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이 가진 국내 주식은 시가로 100조 원에 달한다. 국내 주요 대기업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그 자체만으로 어마어마한 부담이 된다. ‘주주중심 경영’과 ‘투명경영’이라는 명분도 내세우기 쉽다. 국민연금은 펀드 등 국내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영향력이 상당하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SK와 SKC&C 합병에 반대했다. 하지만 뒤이어 열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는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통한다. 이전 홍완선 본부장은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직속 후배였고, 현재 강면욱 본부장은 청와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직속 후배다. 강 본부장은 직접 자산을 운용한 경험이 없는 마케터 출신이어서 지명 당시부터 청와대 입김이라는 분석이 많았다”고 전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효율적인 통제 수단이다. 올 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눈물을 머금고 삼성SDS 주식 일부를 매각했다. 공정위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순환출자가 강화됐다고 판정하면서 삼성SDI 등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매각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위해 그룹 외부로 팔 수 없고, 순환출자 규제 탓에 다른 계열사가 인수할 수도 없어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살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지분 일부를 주당 24만 원에 매각한 이후 삼성SDS 주가는 폭락, 현재 15만 원선에 머물고 있다”며 “이 부회장에게 삼성SDS가 결국 현금 마련을 위한 소모품임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순환출자 외에도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와 관련한 칼자루를 쥐고 있다. 삼성, 현대차, SK, 롯데 등 국내 대기업이 거의 모두 연관돼 있고,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규제다. 전통적이지만 세무조사도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다. 상장한 계열사가 적거나 일감 몰아주기를 적용하기 애매한 기업들, 예를 들어 부영 같은 그룹에 효율적일 수 있다. 실제 부영그룹에서 최순실 쪽에 세무조사 무마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