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방송된 <개그콘서트>에서는 ‘민상토론2’가 문을 열었다. 사회적 이슈를 신랄하게 꼬집었던 ‘민상토론’이 지난해 11월 막을 내린 지 1년 만에 다시 가동된 셈이다. 이 코너는 지난해 6월 정부의 메르스 사태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를 강하게 비판한 직후 결방돼 ‘외압 논란’에 시달린 적이 있는 코너. 이후 조용히 자취를 감추며 “KBS가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시청자들의 날선 비판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민상토론2’는 비판 수위는 ‘역대급’이라 할 만큼 적나라했다. 처음에는 개그맨 유민상, 김대성이 과거 진행했던 ‘리얼 사운드’라는 코너를 재개할 것처럼 하다가 ‘검찰청에서 곰탕 먹는 소리’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을 공개하면서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됐다.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2 방송 화면 캡처.
또 다른 출연자인 송준근은 “운동을 좋아한다”는 유민상을 ‘운동권 개그맨’으로 규정하고, 김대성은 “최순실을 안다”는 유민상을 ‘최순실 최측근’이라 꼬집었다. 이어 “유민상이 최근에 태블릿 PC를 잃어버렸다”고 현 세태를 비틀었다. 극 중 정치에 무지한 캐릭터로 나오는 유민상이 크게 당황할 때마다 객석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맞춤법 문제를 맞추는 과정 역시 통쾌했다. 유민상은 ‘최순실 게이트’라고 쓴 푯말이 나오자 “나는 모르겠다”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송준근은 “아 이게 아니라 요거”라며 ‘박근혜 게이트’라고 쓴 또 다른 푯말을 들어보였다.
이날 방송된 <개그콘서트>의 전국 시청률 10.9%(닐슨코리아 기준). 한 주 전과 비교해 1.2%포인트가 상승했고, 최근 석 달 사이 최고 시청률이다. <개그콘서트>의 ‘변신’에 시청자들이 호응한 셈이다.
<개그콘서트>는 이미 11월 초부터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6일 방송된 ‘세.젤.예’ 코너에서는 개그우먼 이수지가 여러 뉴스를 통해 공개된 최순실과 똑같은 모습으로 분장을 한 채 등장해 허리에 끼우고 있는 검은 물체을 가리키며 “이거 태블릿 아니다. 그냥 클러치다”라고 능청을 떨었다. 또한 종업원으로 나온 유민상이 독일에서 온 맥주를 추천하자 “저 독일에서 안 넘어왔다”고 정색하기도 했다. 이어 유민상이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이러냐”며 한숨을 짓자 “실세? 실세라니. 나 그 사람 아니다. 그럴 능력도 없다”고 제 발 저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웃음을 이끌어냈다.
<SNL 코리아> 역시 가세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대선 때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에서 대선 후보들의 모습을 패러디하며 희화화해 화제를 모았다. 2014년 이미경 부회장이 정부의 압박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선 것이 이 프로그램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영향이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진 후 CJ E&M 계열 프로그램에서 어떤 반격을 할지 관심이 쏠리던 차에 <SNL 코리아>가 포문을 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코너에서 개그맨 유세윤이 특혜 입학 논란에 휩싸인 최순실 딸인 정유라와 같이 승마 선수 분장을 하고 등장해 “엄마 신발 한 짝 찾으러 왔다”고 말했다. 이는 검찰에 출두한 최순실의 신발 한 짝이 벗겨졌던 것을 비꼰 것이다.
tvN ‘SNL코리아’ 그리스로마신화 방송 화면 캡처.
이어 유세윤은 뺨을 맞자 “우리 엄마 누군지 몰라? 엄마 아빠도 능력인 거 몰라?”라고 정유라가 자신의 SNS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의 내용을 읊으며 전화기를 들고 “엄마 어디예요? 곰탕 먹고 있어요?”라고 외쳤다. 검찰 조사를 받던 최순실이 곰탕을 먹었다고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기사화한 것을 꼬집으며 언론의 보도 행태까지 패러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여러 연예인들이 소신 발언을 하고, 세월호 사태 당시 등장했던 노란 리본이 다시금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소셜테이너’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방송인 김제동은 JTBC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를 진행하며 “사는 시국이 ‘어순실’할 때…”라며 ‘어수선’이라는 단어를 ‘어순실’로 바꿨고, “지금 우리나라 예술 분야가 위기다. 영화나 소설보다 재밌는 이야기가 더 많아서다. 특히 인형극은 더더욱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해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조종당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하지만 이런 풍자를 향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분장이나 말장난을 통해 현상의 표면을 훑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단순히 비꼬는 수준을 넘어 올바른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바람직한 형태의 풍자라 할 수 있다”며 “경직된 정치 문화 때문에 풍자 문화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보다 고차원적인 풍자를 위해 제작진과 출연진도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미는 크다. 종합편성채널과 진보적 색채를 가진 몇몇 신문이 최순실 사태의 프레임을 주도해가고 있는 동안 지상파 보도 기능은 갈 길을 잃었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뉴스보다 먼저 움직인 것이 예능과 드라마다. 각종 패러디와 풍자를 통해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보도의 기능까지 대신했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뉴스 한 줄보다 예능의 자막 한 줄이 더 강할 때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며 “이번 사태는 잠자고 있던 풍자 문화를 깨우는 계기가 된 셈”이라고 전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