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공화당 경선 후보 중 최강 라이벌이었던 플로리다 주지사 젭 부시와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를 향해 “미국이 세습제 나라냐”고 공격했다. 부시에게는 아버지와 형에 이어 동생까지, 클린턴에게는 남편에 이어 아내까지 대통령이냐는 야유였다. 미국 서민들에게 공감을 일으킨 이 두 마디는 2016년 미 대선의 성격을 규정지은 말로 평가 된다.
그가 내세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는 미국인들이 잃어버린 아메리칸 드림의 향수를 일깨웠다. 그는 자신은 돈을 벌어 봤기에 할 수 있다며 국민을 부자로 만들겠다고 했다. 국민이 가난한데 ‘세계의 경찰국가’라니 ‘빛 좋은 개살구’라고 했다. 미국인이 잘 살기 위해 미국에 불이익이 되는 어떤 것도 배격하겠다고 했다. 그것이 미국 우선주의이고 고립주의다.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는 것도, 불법이민자를 추방하는 것도, 무슬림의 미국입국을 통제하는 것도, 불리한 무역협정들을 파기하는 것도, 미군 해외주둔비를 주둔국에 전액 물리는 것도, 미국이 손해나는 동맹의 포기까지 모두 미국우선주의에서 나온 공약들이다.
그의 막말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비난의 대상이었으나 매스컴과 대중의 이목을 붙들어 두기 위한 선거전략이기도 했다. 거액의 정치자금을 모아 광고에 쏟아 붓는 기성정치인들과는 달리 그는 매스컴이 그의 입을 좇게 함으로써 공짜로 효과만점의 선거를 치렀다.
“나의 돈으로 정치한 주제에”는 공화당 경쟁자들을 낙마시킨 상투적 막말이었다. 클린턴이 자신의 성추문에 대해 공격하자 그는 남편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파동을 몰아왔던 르윈스키 스캔들을 지적, “나는 말로 그랬지만, 그는 행동으로 그랬잖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장사꾼이 도덕군자는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만한 일이다. 트럼프의 승리는 미국인들이 그의 온갖 성추문과 탈세혐의까지도 기업가의 일탈로 용납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속는 셈치고 지지를 보냈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미국인들의 현실은 힘들고, 변화에 대한 갈구는 절실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공약의 실천이다. 민간 출신의 대통령이 부패한 기성정치를 깰 수 있을까.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 국민을 부자로 만들 수 있을까. 이 지난한 과제로 트럼프의 미국은 국내외적으로 끊임없는 갈등을 빚을 것이다.
한국은 그 중에서도 매우 큰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다. 한미 FTA, 주한미군주둔비, 북핵문제 등 하나같이 트럼프의 대응이 강경한 난제들이다. 이처럼 위태로운 혼돈의 시대에 한국의 정부는 죽은 상태다.
임종건 대한언론인회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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