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레이로 여행온 학생들. 우베인 다리 위에서.
어느 휴일입니다. 두 학생들과 한국의 김치를 담그기로 했습니다. 고등학생인 하데 니앙과 중학생인 씨엔 룬. 니앙은 의사를 꿈꾸는 학생입니다. 룬은 나중 한국에 유학 가서 요리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입니다. 단짝인 둘은 한국어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서툴지만 저와는 한국어로 얘기합니다. 미얀마 음식은 기름에 볶고 튀기는 게 많아 여행객들이 자주 배탈이 납니다. 나물도 살짝 데쳐서 먹으면 좋겠고, 숯불을 많이 쓰니 생선도 구워 먹으면 좋을 텐데 볶거나 튀겨버립니다. 좋은 기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국 김치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됩니다. 이런 제 맘을 눈치 챘는지 어느 날, 룬이 “선생님, 우리가 한번 김치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하고 말한 것입니다. 참 기특도 하죠.
최근 한국에서 온 요리전문가에게 김치를 배우는 씨엔 룬. 양배추 김치까지 배웠다.
“선생님 나라는 발효음식을 먹어서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김치, 고추장, 된장 등. 김치로는 김치국,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두부김치, 김치전골, 김치김밥 등 여러 음식을 만들 수 있어.”
“근데 선생님, 국과 찌개는 뭐가 달라요? 음식이름 공부할 때 보니 무슨 탕도 많던데요.”
질문도 많고 요리 레시피에는 설명이 어려운 게 더 많습니다. 찧다. 으깨다. 어슷썰다. 송송썰다. 저미다. 물을 자작하게. 우리말은 요리처럼 맛깔스러운 단어가 많습니다. 마늘은 찧는다. 감자는 으깬다. 작은 조각으로 얇게 베어내는 걸 저미다라고 한다. 칼로 도려내듯 마음이 아플 때도 ‘가슴을 저미다’라고 한다. 물이 없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걸 자작하게 붓는다고 한다. 참 섬세한 표현들입니다.
건물의 벽틈에 피어난 봉숭아. 미얀마에서 코스모스와 함께 처음 보았다.
김치재료를 찧고 까고 벗기고, 고춧가루와 밥풀에 섞은 양념을 마침내 절인 배추에 버무립니다. 고유의 재료가 빠지긴 했지만 처음치곤 그럴 듯합니다. 두 학생이 처음 만든 미얀마식 김치입니다. 학생들이 이 김치에 맛들이길 기대하며 차곡차곡 김치통에 담습니다. 며칠 후에 먹습니까? 씨엔 룬이 물어옵니다. 삼일 후에 먹어보자. 제가 대답합니다.
한국은 곧 김장철입니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어머니께서 뒷마당에 묻은 김치를 꺼내 왔습니다. 추운 계절인데도 빛깔부터가 먹음직스럽고 속이 시원해지는 김치였습니다. 하지만 일찍 제 곁을 떠나셔서 언제부터인가 그 맛의 ‘행복한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옥수수와 감자의 쓸쓸한 기억만 남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냄새’를 제가 안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꽃과 바다를 유난히 좋아했던 분입니다. 유년시절 제 손을 잡고 바다를 거닐곤 했습니다. 산속으로 들어가 형형색색의 야생화를 한아름 안고 오신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 향긋한 냄새가 집안을 채웠습니다.
맛과 냄새. 우리에게 지워지지 않는 ‘은폐된 기억들’. 바다의 포옹력과 꽃의 다정함. 우리 모든 어머니들의 상징입니다. 어머니는 제게 그 냄새의 기억을 영혼의 한 기슭에 남겨서, 어머니가 없어도 살아가게 만든 걸까요. 그래서인지 저도 유난히 꽃과 바다를 좋아하며 살았습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