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덕영배 아마대왕전과 덕영바둑축제에 모인 참가자들이 7층 대회장을 가득 메웠다. 덕영배 아마대왕전은 올해부터 대회 규모를 대폭 확장해 64명을 초청했으며, 최강부 우승상금을 1000만 원으로 대폭 올렸고 시니어·여성부 우승상금도 500만 원으로 인상했다. 이밖에 아마대왕전 예선탈락자에게도 30만 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일요신문] 11월의 셋째 주 혹은 넷째 주는 아바추어 바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덕영배 아마대왕전이 열리는 시기다.
‘덕영배’는 지난 1990년에 창설됐다. 대구 덕영치과 병원 이재윤 원장이 20년 넘게 한결같이 후원을 도맡고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기업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는 바둑대회는 많아도 개인이 후원하는 아마대회는 드문데(사실 프로기전도 드물다) 대단한 일이다.
‘덕영(德榮)’은 이재윤 원장의 아호인데 ‘의사가 덕을 베풀어 환자를 치료하면 환자가(모두가) 영화롭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최강부 결승전 장면. 대회 2연패를 노리는 우원제(오른쪽)를 제치고 최광호가 첫 우승을 차지했다.
덕영배는 출발할 때부터 초청전이었다. 아마추어 대회 중 상금이 제일 컸으며 참가 선수들에게는 첫날 예선탈락 했더라도 숙식과 교통비 등 일체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평생 바둑 외길을 걷고 있는 아마추어 고수들을 예우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초청을 받은 기사들은 자랑스러운 마음에 한 달음에 달려오고, 초청받지 못한 쪽은 서운한 마음 금할 길 없게 된다. 게다가 올해는 규모를 더 키웠다. 초청 선수를 32명에서 64명으로 늘렸고 최강부는 1000만 원(준우승 300만 원), 시니어·주니어부는 500만 원(준우승 200만 원)의 상금을 걸었다. 또 출전선수 전원에게 최하 30만 원을 지급했다. 웬만한 시니어 프로기전과 여자기전을 능가하는 규모다.
올해 최강부 우승상금을 1000만 원으로 대폭 인상했지만 사실 관심은 시니어·여성부에 쏠려 있었다. 이쪽은 시니어 16명, 여자기사 16명이 초청됐는데 수십 년 동안 아마대회를 호령했던 시니어들과 최근 전력이 급상승한 여자 기사들이 개인전에서 정면충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더욱 기대를 모았다.
대회를 마친 후 입상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남녀들의 대결은 결론부터 말하면 여자 기사들의 압승으로 끝났다. 각조 2명씩 8개조로 나뉘어 열린 예선리그에서는 여자 9명, 시니어 7명이 예선을 통과,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하지만 이튿날 4라운드 스위스리그로 치러진 본선에서는 전유진과 박지영이 결승에 올라 전유진이 우승을 차지했고 3위도 김수영이 올라 그야말로 여자 선수들이 금은동을 휩쓸었다. 시니어는 ‘호남 호랑이’ 조민수 선수가 4위에 턱걸이했고 김세현 선수가 본선에서 2승 2패를 기록해 6위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이에 대해 덕영배 관계자는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예전 그 용맹하던 시니어 기사들도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첫날은 대등하게 버티는데 이틀째 경기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60을 넘긴 기사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상위권에 오른 젊은 피(?) 조민수 선수도 55세, 김세현 선수도 53세가 됐으니 아무리 상대가 여자라도 이젠 공정한 대결이라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한편 최강부에서는 최광호 선수가 대회 첫 정상에 올랐다. 결승에서 지난해 우승자 우원제 선수를 상대한 최광호는 좋지 않았던 바둑을 역전시킨 후 끝까지 우세를 지켜 우승상금 1000만 원의 주인공이 됐다.
유경춘 객원기자
[인터뷰] “매년 3억 지원해 지역바둑 활성화” 이재윤 대구시 바둑협회장 대구 덕영치과의 이재윤 원장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이다. 국내에 임플란트가 보급된 것은 60년대 말인데 서울대 치의대를 졸업한 그는 당시 국내 임플란트 권위자 김홍기 박사를 사사해 임플란트의 최고 전문가가 됐다. 이후 그가 운영하는 덕영치과는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어 현재 그의 병원에는 하루에 400명 정도의 고객이 내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유명해진 건 치과의사로서가 아니다. 평소 봉사에 관심이 많은 그는 국제 로타리 클럽, (사)민족통일중앙협의회, (사)전국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연합회, (사)자연보호대구광역시협의회, 법무부 교정위원 중앙협의회 회장 등 폭넓은 사회봉사를 하는 기업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둑계에서는 그를 열렬한 애기가요, 후원자로 기억한다. 서울대 재학시절 학교 기우회 활동을 통해 1급 반열에 올랐다는 그는 1990년 덕영배 창설 이후 30년 가까이 바둑을 후원해오고 있다. 지난 1990년 덕영배 창설 이후 30년 가까이 바둑을 후원해오고 있는 이재윤 대구광역시 바둑협회장. ―오랜 시간 바둑을 후원하고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가. “바둑은 내 인생 유일의 취미다. 30년 전 대구기우회를 처음 맡으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골프는 즐기지 않는다.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다. 대구바둑을 위해 활동했더니 한국기원의 요청으로 바둑본부도 창설했고 나중에는 바둑협회 등을 맡게 됐다. 일본 후쿠오카 시, 히로시마 시와도 교류했고 중국 칭다오, 청두 시와도 바둑 교류를 이어나가고 있다. 요즘도 틈만 나면 바둑을 둔다. 대구바둑협회는 기원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얼마 전 사는 곳 주변으로 옮겼다. 행사가 없는 주말은 기원에 나간다. 바둑은 즐거운 것이며 계산적으로 설명하지 못 할 부분이다.” ―수십 년간 바둑에 쓰는 돈만 해도 상당한 액수로 알고 있다. 밝힐 수 있는가. “나는 상대가 배신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산다. 바둑도 그렇다. 덕영배 개최에 약 1억 원 정도 들어가고 내셔널바둑리그 대구덕영팀 운영에도 5000만 원 정도 쓰인다. 올해는 견문을 넓히라고 팀 전원을 유럽바둑콩그레스에도 보냈으니 좀 더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역연구생 입단에도 연간 3000만 원 정도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 대구광역시 바둑협회 운영도 인건비와 건물세 등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들어간다. 거기에 로타리클럽 바둑대회, 해외교류전 등을 포함하면 연간 2억 5000만 원에서 3억 원 정도 쓰는 것 같다. ―그렇다면 바둑으로 인해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오래전부터 지역바둑 발전을 위해 지역연구생 제도를 활성화할 것을 주장해왔다. 원래 3명을 지역입단 몫으로 배정하자고 했었는데 현재 2명이 지역입단대회를 통해 입단하고 있다. 일반인 입단자에 비해 지역 연구생 입단자들이 아직 실력이 약하다고 하는데 두고 보라. 앞으로 분명히 지역바둑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올해 덕영배 아마대왕전 규모를 크게 확대했다. 이유는? 박영진 아마7단이 솔직히 얘기하더라. 현재 시니어 정상과 주니어 정상은 선에 3집, 혹은 4집 정도 차이가 난다고. 그래도 어쩌겠나. 그동안 아마추어 시니어들이 바둑 발전에 많이 애를 썼다. 그래서 우승상금도 1000만 원으로 인상하고 시니어·여성부도 500만 원으로 올렸다. 다만 주니어들이 주로 출전하는 대회 명칭을 ‘최강부’로 바꿨다. 시니어들도 자신 있으면 얼마든지 도전하라는 취지다. 오랫동안 교통비와 숙식을 제공하는 건 그냥 예의 차원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