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사법시험에서 수석의 영예를 차지한 정세영씨가 16일 오전 대전 카이스트대학교에서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먼저 사시 수석 합격 축하드린다. 기분이 남다를 것 같은데 소감이 어떤가.
“처음 2차 시험 합격 발표가 났을 땐 좋았는데 수석이라는 연락을 받았을 땐 실감이 안 나더라. ‘이게 꿈인가’ 하고 있다가 수석으로 이름이 기사에 나는 것을 보고 감사하기도 하면서도 많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주변에서 반응이 뜨거웠을 것 같은데.
“어머니는 합격 소식을 들이시고는 숨넘어갈 정도로 좋아하셨고 아버지는 대견하다 하셨다. 주변 친구들도 축하한다고 하는데 ‘수석이 어떻게 자기 아는 사람 중에 나오느냐’며 신기하게 생각하더라.”
—KAIST 역사상 최초의 수석 타이틀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처음에는 KAIST에서 사시수석이 나온다는 자체가 과학연구중심대학이라는 학교 취지에 어긋나는건 아닐까하고 걱정했는데 이왕 벌어진 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법조인이 되도록 노력해서 학교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수석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공학도라는 특이한 이력에 눈길이 간다. 법학 비전공자인데 사법시험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나중에 대학에 가면 사법시험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중학교 때 사시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 나이 때는 못 보게 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가장 좋아했던 적성, 과목 따라 과학고에 진학을 하게 됐고 KAIST에 오게 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법조인의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쪽에서 특이한 장점, 과학 전공을 갖고 미래의 과학기술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막상 2012년도에 입학하고 나니 폐지가 2017년이더라. 그래서 내게 두세 번의 도전기회는 있을 것이라 생각해 과감하게 도전하게 됐다.”
—어렸을 적부터 법조인의 꿈을 갖게 됐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꿈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느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어느 분야에서든 능력을 갖고 활발히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조인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또 아버지가 과거 사시를 준비하시다가 안 됐다. 집에도 아직 법학 서적이 남아있기도 한데 그 영향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전공이 전기 및 전자공학과다. 비전공자라 사시 준비에 어려움도 컸을 것 같은데 준비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2013년 여름, 학교를 휴학하고 1차 시험을 준비할 때는 독학으로 해보려고 기본서를 억지로 읽어나갔다. 근데 그게 잘 안됐다. 공부 방식도 낯설고 배우는 것도 새로워 적응이 잘 안됐다. 갈피를 못 잡아 공부 방법을 계속 바꿔 보다보니 수험생활이 일정하지 않고 불안정해지더라. 굉장히 빨리 지쳤고 그래서 그해 12월에는 아예 시험 준비를 포기해버렸다. 아무래도 주변에 고시 공부를 한 사람도 없었을 뿐더러 정보 수집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았던 것 같다. 그 후 고향 집으로 내려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아무 것도 안하고 지냈다. 시험을 포기하고 학교를 마저 다녀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
—그렇다면 다시 사시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고향집에 내려가 있을 때 우연히 <KBS-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사법연수원 편이었는데 그 때 방송을 보고 느낀 게 많았다. ‘저 사람들은 엄청 노력해서 저 자리까지 갔는데 난 아무것도 못해보고 이대로 시험을 져버리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 때 다시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2014년 6월부터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 방법이나 환경에 어려움을 겪고 한번 실패를 맛봤다. 그 후 공부할 때 전에 비해 바뀐 점이 있었나.
“처음 사시를 공부할 때는 무조건 책만 읽어나가는 식으로 했는데 그 때(6월)부터는 수험가에서 많이 듣는 기본강의도 듣기 시작하고 어떤 책, 조문을 봐야 하는지 최신 판례는 어떻게 챙겨봐야 하는지 등 정보들을 많이 알아봤다. 수험방법이 체계화되다 보니 어느 정도 법학에도 적응이 돼서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9월부터는 학원에서 매일 모의고사를 봐야했기 때문에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준비하는 동안 슬럼프는 없었나. 만약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나.
“평소에 치아가 안 좋았는데 지난해 초 통증이 심해지면서 그 때 슬럼프도 같이 왔다. 1주일 정도 공부를 전혀 못했는데 시험을 한 달여 앞두고 좀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열심히 했으니 1주일 못했다고 큰 지장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슬럼프를 극복했던 것 같다.”
—시험준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무엇이었나. 1차 시험과 2차 시험 나눠서 설명해 달라.
“1차 때는 민법이 가장 어려웠다. 그 이유가 양이 너무 많아서 종종 공부하다가 내가 지금 어디 부분을 모르고 있는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2차 때는 상법이 어려웠다. 2차 시험부터는 암기도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데 양에 비해 어느 부분을 공부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분명 지엽적인 문제가 어느 순간 사례 문제로 나올 때도 있고 시간 투자를 많이 한 부분은 별로 안 중요할 때도 있었다. 그런 부분이 혼란스러웠다.”
—워낙 양이 방대하다 보니 시험에서는 어느 정도 운도 따라야 할 것 같다. 이번 시험 봤을 땐 어땠나.
“감사하게도 2차 시험에 응시할 때 이상하다 싶을 만큼 준비했던 부분에서 많이 나왔다. 덕분에 시험 전체를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봤다.”
—수석 합격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크게 특이한 점은 없다. 하지만 문제를 풀면서 직접 손으로 목차를 써보는 버릇을 들였다. 답안지를 작성할 때도 어떤 목차로 써 나갈지 그런 걸 항상 생각했고 그렇게 쓰다보면 내용이 안 빠지게 되더라. 평소 모의고사 문제나 사례 문제를 풀 때 눈으로 읽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답안지에 쓸 때 어떻게 쓸 건지 목차를 손으로 써봤다. 책을 볼 때도 어느 순간 보면 이 책을 무의식적으로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심지어는 무슨 내용으로 보는지도 모르고 넘기고 있더라. 그래서 목차 위주로 내가 어느 대단원에 어느 소단원 무슨 부분을 보고 있는지, 목차 순서가 왜 이렇게 되는지 정리를 해보고 고민을 해봤다. 양이 워낙 방대하고 공부하다 보면 길을 잃기 쉬우니까 목차로라도 틀을 잡아놔야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사시폐지 이야기를 해보겠다. 내년 2차 시험을 끝으로 사시가 폐지되는데 존치 여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시를 준비하다 보면 나이 드신 분이라든지 로스쿨에 진학할 여건이 안 돼 사법시험에 도전해보시는 분들을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도 여전히 사법시험이 갖는 의의가 작지 않다고 생각해 내년에 바로 사시가 없어지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국민 의견도 듣고 제도적 문제도 고려해 다시 한 번 논의해서 진행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의의’라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
“사법시험에서는 실력 외적인 부분은 덜 고려된다. 오로지 시험 성적으로만 반영되기 때문에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다는 점이 사법시험이 가지는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3학년 정세영 씨. 고성준 기자
—공학도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는데 앞으로 어떤 법조인이 되고 싶은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좋은 양질의 과학기술교육을 받아온 만큼 이에 부합해 과학기술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춰 앞으로 과학기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미래 사회에서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국가 과학기술을 보호하고…”
—미리 답변을 외워온 것인가. 솔직한 답변 부탁드린다.
“제 일신의 영달에 전념하기 보다는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고 내 이웃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서 사회발전에 공헌하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
—과학기술 분야만 해도 여러 가지 선택의 길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이 되고 싶나.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아직 어떤 길로 나아갈지 아직 결심은 하지 못했다. 아마도 연수원에 들어가서 결정하게 될 문제인 것 같다. 가령 판사를 하게 되면 특허법원에 가서 관련된 판결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검사가 되면 특허침해라던지 산업기술을 빼돌리는 범죄를 전담하는 첨단범죄수사부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 변호사가 된다면 특허변호사가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사시 수험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시험장에서 답안지를 다 쓰고 나오기 전까지는 그리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보는 게 맞는 것 같다. 공부가 안 되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아도 막상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저도 제일 뒤쳐진다고 생각했던 과목이 제일 점수가 잘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