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4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당시 참석한 김정은과 리영길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16년 11월 4일,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김정은의 군부대 시찰 소식을 중점적으로 전했다. 당시 조선인민군 제525군부대직속 특수작전대대를 시찰한 김정은은 현장에서 장병들을 격려하는 한편, 직접 훈련을 지휘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김정은의 이번 군부대 시찰은 지난 9월 9일 제5차 핵실험 직전이었던 9월 5일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참관한 뒤 약 두 달 만의 일이었다. 또한 미국 대선 나흘 전이었다.
여기서 주목받았던 사람은 김정은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리명수 총참모장 등 군부 최고위급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그중에서도 이목을 집중시켰던 인사가 바로 리영길 부총참모장이었다. 한때 숙청설이 나돌았던 리 부총참모장은 이 자리를 함께하며 대내외적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소문만 나돌았던 리 부총참모장의 공식 직함이 공개된 것은 이 자리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리영길 부총참모장은 총참모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월 당시 종파 행위 등을 이유로 숙청됐다는 소식이 국내에 관련당국 명의로 전해진 바 있다. 당시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역시 이 소식과 관련해 사실상 기정사실화 입장을 전하면서 그의 숙청은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리 부총참모장은 숙청이나 처형이 아닌 1계급 강등과 함께 야전부대에 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기관의 정보 혼선 문제와는 별개로 리영길 부총참모장 거취는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필자는 지난 5월 본지 연재를 통해 이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리영길은 지난 1월 제1사단 방문 당시 김정은의 방문과 비견될 정도의 환대를 받았고, 이것이 과하다고 판단한 강원도당 보위부가 당을 통해 김정은에 보고했다는 것이 요지였다.
다만 김정은은 리영길의 숙청을 실제 시도했지만 최종 예심 과정에서 군 내부 반향을 고려해 계급 강등 및 오지 배치 수준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이 당시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었다. 당시 필자는 김정은이 리영길을 손수 제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군 장악력에 이상 징후가 있음을 특별히 지적한 바 있다. 군 장악력에 문제가 있다면 김정은의 국정 장악에 사실상 우리가 표면적으로 볼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잠재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 최근 북한 내부 핵심 관계자들을 통해 보다 자세하고 추가적인 내막을 접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이 실로 충격적이었다.
수집된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난 1월 1사단 사건으로 리영길이 숙청 위기에 처했던 당시, 북한 군부 군단장급 이상의 군 간부들이 모처에서 한데 모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이 자리에 참석했던 군 간부들 중에서는 일부 정치군인들도 속해 있었지만 대다수는 야전 작전과 지휘를 꾀하는 일선 현역 군 지휘관들이 주를 이뤘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자리를 함께한 군단장급 이상의 지휘관들은 리영길 숙청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담은 일종의 연판장(내지는 연명서)을 작성했다. 그렇게 작성된 연판장은 곧바로 군부 최고위 기관인 총정치국에 전달됐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이 민감한 내용의 문서를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모든 직위에서의 숙청, 더 나아가 처형 가능성까지 제기됐던 리영길은 군부 지휘관들의 연판장으로 인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두 가지를 눈여겨 봐야 한다. 첫 번째는 김정은의 군 장악력 문제다. 연판장 사건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다. 말이 ‘반대 의사’를 담은 연판장이지 사실상 북한 최고지도부의 의사결정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북한 군부는 사실상 1969년 김창봉이 제거된 이후 철저하게 최고지도자에 의해 움직였다. 명분은 당의 군대이지만, 김 씨 1인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김창봉은 항일빨치산 출신으로 군 민족보위상(현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의 실권을 동시에 갖고 있을 정도의 지위)과 내각 부주석을 거친 군 엘리트였지만 김일성 뒤에 숨은 김정일의 우상화 사업에 대놓고 반대하다 제거된 인물이다. 이후 북한 군부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통제돼 왔다. 엄혹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군은 안정적이었다. 당시 군부 내 군령권을 가진 최고 간부들은 최소한 한 자리서 10여 년 근무했다.
그러나 김정은 등장 이후 리영호부터 현영철에 이르기까지 북한 군 최고 간부들의 극단적인 숙청 및 제거가 이어졌다. 군부 입장에선 김정은의 독선적인 지휘행태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위기감이 늘 군부를 뒤덮었고 리영길의 숙청 길목에서 군단장급 이상의 지휘관들을 중심으로 총참모부와 1선 군단급 간부들 속에서 목소리가 피력된 것이다.
지난 5월 리영길의 복권과 관련한 보도를 보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더욱 의미 있는 사실은 이렇게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지휘관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지금까지 별다른 불이익을 당하거나 다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실제 현영철 처형 이후 아직까지 군부 내 극단적인 인사조치가 목격된 적은 현재까지 없다.
오히려 김정은이 등장하고 난 이후 유일하게 군 정찰총국을 맡으면서 김정은맨으로 그나마 통하던 김영철 전 정찰총국장이 이 시점에 당 대남담당 비서로 자리를 옮겼다. 표면적인 승진이지 상대적으로 보면 군 내부에서 축출일 가능성도 농후하다. 총체적으로 김정은의 사람들이 군내에서 축출되지는 않을까 하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이번 사건은 김정은 군 최고사령관 스스로 연대적인 한 목소리를 낸 군부를 의식하고 수긍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전 김정일의 군 장악력과 비교해 김정은의 그것이 상대적으로 훨씬 약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두 번째는 리영길의 군부 내 신임이다. 리영길은 비(非) 만경대(혁명 유자녀 출신들의 군 간부를 위한 특수학교) 출신으로 총참모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가문의 배경보다는 철저하게 자기 실력과 주변의 신망을 토대로 성장했다.
리영길은 북한 최고의 군 작전통으로 용맹과 덕을 겸비한 간부로 통한다. 강건군관학교 출신으로 작전계통에 종사하였으며 방어사령부 작전부장,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을 거쳐 수도방위의 1제대 제3군단장(포병 중심 부대)과 DMZ 중부전선의 1제대 제5군단장(대연합부대로서 방어 및 공격 겸용 부대)을 거친 전형적인 군 지휘관이다. 특히 북한군의 최근 현대전 혁신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리더십을 갖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군 지휘관으로서의 실력과 함께 리영길은 군부 내 각종 비리와 구설과는 무관할 정도로 깨끗한 생활을 이어왔다고 한다. 이로 인해 군부 내 최고 간부들 중 지휘관으로서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앞서의 연판장 제기는 김정은의 최근 군 행보에 대한 지휘관들의 반감이 첫째 배경이지만 리영길의 군부 내 신망이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특히 비슷한 시기 군부 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자리에서 물러난 몇몇 인물들과 비교가 되곤 한다. 우선 상부에 아첨이 능하고 정치적 술수가 익었다는 평가가 있었던 고 김격식 전 인민무력부장(사망 전 최고사령부 작전지휘조 조장 겸 국방위원회 군사부문 책임참사)과 북-중 접경지역 무역을 통제하며 금품을 챙겨왔다고 의혹을 받아 온 고 현영철 전 무력부장과 비교해도 깨끗하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리영길 부총참모장은 3월 1계급 강등 뒤 일선 사단장으로 잠시 배치됐을 때도 단순한 부대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부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리영길은 당시 중부전선을 전담한 5군단 산하의 727사단장으로 재직했다. 비록 사단장으로의 강등이었지만 727사단의 군내 위상과 위치를 되새겨 볼 때 리영길에 대한 배려가 어느 정도는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727사단의 부대명칭은 7월 27일 북한 정권의 소위 한국전쟁 ‘전승기념일’에서 따왔다. 727사단은 5군단의 핵심 정예부대로서 기계화보병사단으로서 공격부대다. 그 전신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4사 부대’다. 애초 창립초기 독립혼성여단 급이었던 ‘4사’는 한국전쟁 당시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전승을 기록했다는 전설의 부대로 회자된다.
이후 리영길이 현재 공식 확인된 제1부총참모장으로 복귀한 것은 올여름 정도로 파악된다. 리영길은 이와 함께 작전총국장이란 직책을 겸하게 됐다. 작전총국장은 기존의 작전국이 개편 확장되어 등장한 직책이다. 리영길의 좌천 이후 중앙무대 복귀와 그것을 둘러싼 북한 군부에서 있었던 일련의 특이한 움직임은 김정은의 군 장악력에 있어서 분명 큰 오점으로 남았음이 확실하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리영길 숙청 시도 뒤 ‘김원홍-황병서’ 물밑싸움 있었나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왼쪽)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연합뉴스 리영길 부총참모장의 숙청 시도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 뒤에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정확한 직책은 국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물밑 싸움이 있다는 설이 북한 내부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서 리영길의 지난 1월 1사단 환대와 관련해 김정은에 보고를 넣은 것은 도당 보위부였다. 즉 김원홍 부장의 보위부 라인을 통해 일이 시작된 것이다. 반대로 리영길 숙청의 반대 의사를 담은 군단장급 이상의 지휘관 연판장을 김정은에 보고한 것은 황병서의 총정치국 라인이었다. 물론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리영길 숙청 반대 연판장의 단순한 전달자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적극성이 투영됐을지는 좀 더 살펴볼 대목이지만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 실제 김원홍과 황병서는 김정은 1인 독재체제의 안보를 둘러싼 포지션에서 결을 달리하며 서로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원홍은 2010년경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시절부터 군부 내 비리를 김정은에게 보고해 힘을 키워왔다. 훗날 2012년 4월 국가안전보위부장에 오른 후에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스스로 군부를 통제함에 있어서 국가안전보위부를 통해 관리를 꾀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원홍은 악역을 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군 내부에서 핵심 고위간부들 치고 김원홍을 좋게 볼 수는 없는 이유다. 군부 1인자라 할 수 있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당 조직지도부 군사부문 담당 제1부부장 출신으로서 역시 군 서열상 당연히 김원홍보다 앞선다. 황병서 입장에서 기분 나쁜 것은 군 내부의 보안기관이었던 군 보위사령부가 김정은시대 들어 보위총국과 보위국으로 차례차례 강등됐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군 보위국은 김원홍의 국가안전보위부 지휘를 받게 됐다. 불만이 없을 리 없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며 물밑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