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 데미 로바토 등과 함께 미국 팝 뮤직을 이끌어가는 20대 여가수를 꼽는다면 아리아나 그란데가 있을 것이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하이 톤을 뽑아내는 그란데는 안티도 많지만 팬도 많은 스타로 최근엔 저스틴 비버와 연인이 되면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의 ‘그 일’만큼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일은 없을 것이다. 바로 ‘도넛게이트(Donutgate)’, 생각하면 할수록 황당한 사건이었다. 사실 아주 사소한 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그란데의 잘못된 대응으로 일이 더 커져버려 결국 ‘게이트’가 되고 말았다.
아리아나 그란데는 도넛 가게에서 도넛에 침을 뱉는 등 이상행동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2015년 7월 4일이었다. 미국의 239번째 독립기념일이었던 이 날, 그란데는 자신의 백업 댄서이자 당시 남자친구였던 리키 알바레즈와 함께 캘리포니아의 레이크 엘시노어에 있는 ‘울피 도넛’이라는 가게에 갔다. 아마도 두 사람은 ‘진실 혹은 대담’ 게임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종의 진실 게임으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려면 상대방이 시키는 짓궂은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그란데는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진열대에 있는 파우더 젤리 도넛을 혀로 핥았다. CCTV에 담긴 동영상만으로는 실제로 그란데의 혀가 도넛에 닿았는지 명확하진 않지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다른 손님들의 증언에 의하면 ‘매우 근접한’ 상태였다.
여기서 끝났다면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었다. 자리를 비웠던 종업원이 나타나자 그란데는 새로 구운 도넛을 달라고 요구했다. 직원은 주방으로 들어갔고, 그란데는 다시 도넛에 다가가 살짝 핥기도 하고 침도 뱉었다. 일행들도 그런 행동에 동참했다. 새로 나온 도넛을 본 그란데는 갑자기 불평을 늘어놓았고, 갑자기 “나는 미국이 싫어!”라고 이야기했다. 독립기념일에 할 말은 아니었다. 매장 직원은 다소 황당했지만 설마 그란데가 전시된 도넛에 침을 묻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나중에 그 도넛들을 판매했다.
이 장면이 담긴 영상은 인터넷에 유출되었고, 그란데는 7월 8일에 공식 사과를 한다. 하지만 차라리 하지 말아야 했을 사과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난 미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항상 미국을 사랑한다고 말해왔다. 그때 했던 말은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발췌되어 인용된 것이며,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난 건강한 식사 습관을 지지한다. 음식은 내게 중요하고, 난 미국인들이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자유롭게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아동 비만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도 나에겐 불만이다. 과식이 얼마나 위험하며, 우리가 스스로에게 독과 같은 음식을 몸속에 넣고 있다는 사실을 교육해야 한다. 식품 업계도 각성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신중해야 했다. 이젠 공인으로서 책임감을 지니게 되었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겠다. 내 잘못된 표현에 기분이 상한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문제의 도넛게이트 사건 당시 CCTV에 포착된 모습.
도넛에 침을 뱉고 혀로 핥은 행동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미국을 사랑하며 단어 선택에 신중하지 못했다는, 그러면서 미국인의 식습관을 지적하는 그란데의 글은 두서도 없었고 진정성도 없었다.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일은 그렇게 게이트가 되었고, 저널에선 ‘도넛게이트’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게임 쇼에 등장하기로 했지만 데미 로탈보로 교체되었고, 그란데는 이 일에 대해 “입 안에 문제가 생겨 응급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게다가 불똥은 ‘울피 도넛’으로 튀었고, 위생 기관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7월 9일, 급기야 ‘도넛게이트’는 폭스TV의 뉴스 시간에 다뤄졌다. 진행자 로라 잉그램은 “미국에서 태어났기에 엄청난 혜택을 받은, 버르장머리 없는 팝계의 공주”라고 그란데를 표현한 후 “그녀는 미국을 싫어한다. 미국인들은 모두 뚱뚱하고, 유기농 음식을 먹지 않고, 맥도널드 치즈버거나 테이크아웃 누들 같은 것만 먹기 때문”이라며 빈정댔다. 그리곤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이 당신이 부르는 멍청한 노래를 듣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 당신은 자신이 번 돈을 젤리 도넛을 좋아하는 그 사람들에게 모두 돌려줘야 한다.” 뉴스 코멘트라기보다는 독설에 가까운 이야기였고, 아리아나 그란데는 동영상을 통해 다시 사과의 뜻을 내비쳤지만 역시 대중은 외면했고 비난은 쏟아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울피 도넛’ 측에서 법적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는 것. 하지만 그란데의 행동은 캘리포니아 위생국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고, 그녀는 연말에 그 해 최악의 셀러브리티로 선정되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