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노경필)는 이날 살인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한 최씨가 청구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준영 변호사(왼쪽에서 두번째)와 최 씨를 비롯한 사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노경필)는 17일 2000년 8월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으로 살인과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년을 받았던 최 아무개 씨(32)의 재심에서 살인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최 씨의 도로교통법 위반은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최 씨는 선고 뒤 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살인범이라는 억울한 꼬리표 때문에 삶이 힘들었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최 씨는 16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었지만, 사건의 변호를 맡은 변호인은 “그동안 고통을 겪어온 피고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재판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이날 “검찰이 확보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충분하지 않다”는 짧은 설명 외에 무죄를 판결하게 된 구체적 이유는 언급하지 않고 선고를 내렸다.
이어 “10여 년 전 이뤄진 재판에서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재판에 임했을 것이나 결과적으로 재심 청구인이 한 자백의 신빙성에 대해 의심하고 좀 더 세심한 배려와 충분한 숙고가 필요했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재심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당시 수사 경찰관이 소중한 목숨을 버리는 안타까운 일까지 벌어진 점에 대해서도 유감의 뜻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사건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상식 밖의 비겁한 재판부”라며 “무죄 선고를 내렸다고 무조건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 아니다. 당사자와 검찰의 핑계만 대면서 판결했다”고 말했다. 이어 “10년 동안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한 피고인의 고통에 대한 배려가 우선 돼야 하지 않는가”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박 변호사는 또 재판부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경찰을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도 “경찰관의 안타까운 선택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살해 당한 피해자 유가족에 대해선 어떠한 위로의 말 한 마디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사건 발생 직후 내려진 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라 억울한 누명을 쓴 최 씨에 대한 사과, 피해자 가족에 대한 위로가 우선돼야 하는데, 재판부가 이를 모두 간과한 채 재판을 마무리했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또한 대입수능시험 당일 오전 9시 45분부터 오후까지 선고 일정이 계획된 것에 대해 일부 피고인과 방청객들은 “수험생 배려를 위해 대부분 출근시간을 늦췄는데 법원은 예외인 것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재판부는 법정에 들어선 이후 수능 시험을 언급하며 이른 선고 시각에 대한 사과의 말과 함께 재판을 시작했다.
한편, 최 씨는 15살이던 지난 2000년 8월 10일 오전 2시께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 오거리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가 택시기사 유 아무개 씨(당시 42세)와 시비 끝에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 됐다.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됐고, 9년 7개월 간 수감생활을 한 뒤 특사로 2010년 만기 출소했다.
그러나 판결 확정 이후에도 유 씨를 살해한 진범과 관련한 첩보가 경찰에 입수되는 등 초동 수사가 부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2003년에는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김 아무개 씨가 경찰에서 범행을 자백하기도 했지만 범행에 사용한 흉기 등 체적인 물증이 발견되지 않은 데다, 김 씨와 그의 친구가 진술을 번복하면서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최 씨는 출소 이후 지난 2013년 재심을 청구했으며 광주고법에서는 최 씨가 불법 체포·감금 등 가혹행위를 당한 점, 새로운 증거가 확보된 점 등을 들어 재심을 결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재심결정에 재항고했고 대법원은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 재심이 열렸다. 재심과정에서는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올해 8월 9일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8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형사소송법 개정안태완이법) 시행으로 공소시효 적용에서 배제돼, 재수사를 통해 진범을 검거할 여지가 남아있다.
광주=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