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으로 국정감사에 참여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 사진=비즈한국DB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후보 시절 ‘일 안하는 국회의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의원 재직 중 대표발의한 법안 건수가 단 15개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14년간 국회에서 일한 5선 의원이었다. 국회의원의 꽃이자 가장 중요한 권한이 입법권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떨어지는 실적임은 분명하다. 19대 국회의원 4년간 1인당 평균 법안발의 건수인 46.5건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치다.
낮은 법안 발의 실적 속에서 지난 2009년 박 대통령은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제대혈은 탯줄의 조직에 있는 혈액으로 조혈 줄기 세포가 다량 함유돼 있다. 법안은 ‘제대혈의 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의학의 발전 및 국민보건의 향상에 이바지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이 법안을 통해 제대혈 치료, 제대혈 은행이 운영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지난 2009년부터 박 대통령이 줄기세포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박 대통령의 이 법안으로 수혜를 본 곳 중 하나가 차병원그룹이다. 차병원그룹은 박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 최순실 씨가 진료를 받은 사실이 알려진 차움의원을 소유하고 있는데, 법안이 통과되면서 제대혈 은행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제대혈 이식 의료기관으로 정해진 국내 약 48개 병원 중 한 곳이 차병원이 운영하는 제대혈 은행인 ‘아이코드’다. 박 대통령 측근과 차병원이 줄기세포를 매개로 엮이기 전에 이미 제대혈 법안을 통한 연결고리가 있었던 셈이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위치한 피엔폴루스 차움의원에 줄기세포은행이라고 적혀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물론 제대혈 은행은 줄기세포 ‘주사’와는 다르다. 의료계 관계자는 “제대혈은 배아줄기세포이고, 줄기세포 주사는 그것과는 좀 다른 성체줄기세포다. 배아줄기세포는 윤리적 문제가 커 성인 골수세포를 배양해 주사하는 게 요즘 말이 나오는 줄기세포 주사”라며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법안이 차병원에서 주력으로 연구하는 배아줄기세포 부분 규제를 풀어준 것은 맞다. 적절한 규제를 갖추고 차세대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법제화하는 게 맞지만 최근 보도를 봤을 때는 밀월관계로 볼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줄기세포 주사와는 종류가 다르지만 법안을 통해 차병원이 혜택을 봤다는 말이다.
줄기세포 이외에도 차병원그룹은 박근혜 정부 규제완화의 최대 수혜자였다. 지난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된 의료영리화 정책을 통한 규제완화로 차병원그룹이 어떤 혜택을 봤는지 분석한 보고서를 발행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차병원그룹은 성광의료재단을 중심으로 세포치료제 연구개발 및 제대혈 보관사업을 하는 차바이오텍을 중심으로 각종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를 통해 차병원그룹은 제대혈은행, 제약산업, 백신연구, 화장품, 기능식품, 해외병원 개발 투자 운영, 의료기관 시설관리 및 전산개발, 임상시험수탁업(CRO), 벤처캐피탈 투자업 등에 진출해 있다. 이들 계열사가 박근혜 정부 들어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의료영리화 정책의 직간접적인 수혜의 대상이었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주요 내용이다.
박 대통령이 차병원 소속 차움의원을 이용했고 최고 실세로 꼽힌 김기춘 전 비서실장, 최순실 씨까지 차움에서 줄기세포 치료까지 받았다. 이런 정황이 차병원이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쉽사리 지워버릴 수 없게 하고 있다.
한편 박 대통령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살펴보면 15건 중에서 문화재에 관련된 법안이 3분의 1인 5개를 차지한다. 문화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은 문화재 법안을 제출한 17, 18대 국회에서 관련 상임위인 교육문화관광위원회에 소속된 적이 없다.
김태현 비즈한국 기자 toyo@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