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지난 20일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으로 적시했다. 검찰은 이날 발표를 통해 “최순실과 정호성이 연루된 청와대 문건 유출 의혹 등을 확인했다”며 “피고인 정호성은 180건의 문건을 이메일과 인편 등을 통해 최순실에게 유출했고, 그중 사전에 일반에 공개돼서는 안되는 ‘장·차관급 인선 관련 검토자료’ 등 47건의 공무상 비밀이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에 대해 현재까지 확보된 제반 증거자료를 근거로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범죄사실과 관련해 상당 부분이 공모관계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면서도 “헌법 제84조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 때문에 기소할 수 없다”고 전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지난 4월까지 최 씨에게 180건의 청와대 기밀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마저 거짓으로 드러난 셈이다. 사진제공=청와대
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대국민 사과에서 “최순실 씨는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 홍보 분야에서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 있으나, 청와대 및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검찰조사 결과 정호성 전 비서관은 지난 2013년 1월 박 대통령 취임 전인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올해 4월까지 최 씨에게 180개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박 대통령이 진솔하게 말씀드린다던 대국민사과마저 거짓으로 드러난 셈이다.
정 전 비서관에 의해 최 씨에게 유출된 47개 기밀 문건에는 외교부 3급 기밀로 지정된 ‘한미 정상회담·해외순방 추진안’을 비롯한 대통령 일정안부터 국정 전반의 주요 기밀까지 담겨 있다. 최 씨는 △일본 총리 △중국 국가주석 △유엔 사무총장 △북핵 문제 관련 고위 관계자 등 주요 인사들과 박 대통령 간의 통화 및 면담, 접촉 내용까지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 씨에게 유출된 기밀 문건 중에는 ‘국무총리·감사원·국정원 행정 각부 장관 후보안’을 비롯한 정부 인사 관련 자료 13건이 포함됐다. 정부 요직의 인사가 단행되기 전에 최 씨가 미리 인선 내용을 검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최 씨가 인사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최 씨는 2013년 1월 15일 ‘중국 특사단 추천 의원, 중국 특사단 인선 기준 및 대상자’ 관련 문건을 전달받았다. 최 씨가 문건을 전달받은 다음 날인 16일 박 대통령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심윤조 전 새누리당 의원,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 한석희 연세대 교수 등 4인을 중국 특사로 파견한다고 밝혔다. 이들 특사 가운데 조원진 의원은 최근 특검법안 및 국조요구안 서명에 불참하면서 ‘A급 최순실 부역자 리스트’와 보수시민단체의 ‘병신친박오적(丙申親朴五賊)’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에도 최 씨는 박근혜 정부 출범 당일인 2013년 2월 25일부터 4월 5일까지 국무총리부터 기관장 및 차관, 국정원 2차장까지 주요 공직 인선 내용을 건네받았다. 박 대통령은 장관 인선에 철통 보안을 유지했으나, 부실검증 등의 이유로 직접 인사한 후보자 중 12명이 줄이어 사퇴·낙마하는 인사 참사를 겪으며 ‘밀실·폐쇄인사’ ‘불통·수첩 인사’라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당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김종훈 미래부 장관 후보자는 이중국적 논란에 시달리다 자진 사퇴했다. 김학의 법무부 차관은 ‘성접대 동영상’ 의혹으로 취임한 지 6일 만에 사퇴했으며,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와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는 각각 ‘천안함 골프’ 논란과 탈세 의혹 등으로 낙마했다.
최 씨는 2013년 2월 25일 정부 조직도와 함께 ‘국무총리 감사원 국정원 행정 각부 장관 후보안’을 건네받았고, 2월 28일에는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과 청년위원장의 인선 내용’을, 3월 1일에는 ‘국정원장과 국무총리실장, 금융위원장 인선 발표안’을 받았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와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각각 최 씨가 국무총리 후보안을 확인한 다음 날인 26일과 한 달 뒤인 3월 22일 임명됐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교체설이 흘러나온 양건 전 감사원장은 1년 7개월의 임기를 남겨두고 2013년 8월 사퇴했고, 최 씨가 후보안을 확인한 5달 뒤 황찬현 감사원장으로 교체됐다. 황 감사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야당 의원들의 감사 촉구에 대해 “사실관계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해 질타를 받은 바 있다.
3월 13일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비롯해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경찰청장, 감사원장 등 기관장 25명, 차관급 인사 21명 등 40여 명의 인사 관련 문건이 최 씨에게 넘어갔다. 청와대는 최 씨에게 문건이 넘어간 당일 20명의 차관 인선을 발표했으며, 다음날인 14일과 15일에는 채동욱 검찰총장과 김덕중 국세청장, 이성한 경찰청장 등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인 24일에는 기재부와 미래부, 국방부, 해양수산부 등 7명의 차관급 추가 인선을 발표했으며, 같은 날 친박계 중진 이경재 전 새누리당 의원을 방송통신위원장에 내정했다.
당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미래부와 해수부의 차관 임명이 장관 임명보다 먼저 이뤄진 것에 대해 “청문회 등을 거치려면 상당 기간이 소요돼 부처의 조기 출범을 위해 임명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4월에 내정된 최문기 전 미래부 장관과 윤진숙 전 해수부 장관은 부실검증 논란에 휩싸이며 인사청문경과보고서도 채택되지 못했다. 행정 경험이 없었던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의 경우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으로 경질됐다.
지난 4일 오전 참여연대 회원들이 최순실씨 등의 국정논란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 고발장 접수를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고성준 기자.
2013년 4월 5일에는 국정원 2차장과 기획조정실장 인선안이 최 씨에게 넘어갔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4월 12일 서천호 2차장과 이헌수 기조실장의 임명이 이뤄졌다. 이 밖에도 최 씨는 예술의 전당 이사장 인선안과 청와대 비서진 교체 내용 등도 받아본 것으로 드러났다.
최 씨의 측근이자 ‘문화계 비선 실세’로 지목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지난 11일 검찰 조사에서 최 씨에게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은사인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을 청탁한 사실을 진술했다. 김 전 수석은 차 씨의 외삼촌으로, 국정교과서를 추진한 핵심 인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차 씨의 홍익대 대학원 은사로, 취임 이후 조직 개편을 통해 전체 조직과 예산의 70%를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실세로 꼽히는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에게 집중시킨 바 있다. 더불어 평창올림픽 사업을 최 씨 소유의 더블루K와 업무 제휴를 맺은 회사에 맡기는 것을 반대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사퇴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편, 최 씨와 각 부처는 인사개입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최 씨가 자주 찾았던 무속인 A 씨가 “최 씨가 신당에 찾아와 어떤 사람을 장관 자리에 앉히는 게 좋은지 물어본 적 있다”고 폭로해 최 씨의 ‘인사 개입’ 의혹은 국정농단 사건을 달구는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최순실 공천 개입’ 의혹 재부상 실명 뜨기도 전에 강력 부인…제 발 저리나? 최근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로 최순실 씨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으로부터 정부의 요직 인사안을 포함한 청와대 자료 180건을 넘겨받아 ‘컨펌’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에 최 씨가 국정 인사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미 한 차례 논란이 된 바 있는 ‘최순실 공천 개입’ 의혹도 수면위로 재부상하고 있다. ‘최순실 공천 개입’ 의혹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등 새누리당 내부 핵심 인사들에 의해 언급된 바 있다. 여기에 최근 박범계 민주당 의원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의혹을 부추겼다. 박 의원은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순실이 20대 공천과 관련해 새누리당의 현역 비례대표 세 사람에 대한 공천에 관여했다는 구체적인 제보가 들어왔다. 당장 이름을 댈 수도 있다”고 폭로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공천에서 탈락한 제보자가 봉투를 들고 신사동으로 최 씨를 찾아갔으나, 최 씨는 봉투를 열어보곤 다시 내밀며 ‘돌아가라’고 말했다. 박 의원의 폭로 이후 온라인 및 SNS에서는 일부 의원의 이름이 담긴 찌라시(미확인 사설 정보)가 돌았다. ‘공천 최순실 라인’ 찌라시에 이름을 올린 당사자들은 문자메시지를 돌리거나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의혹을 강력 부인하고 나섰다. 20대 총선에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당선자 17명 가운데 비례대표 1번이었던 송희경 의원은 “허위사실에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강경 대응했다. 이밖에도 비례대표 8번이었던 김성태 의원과 10번 김종석 의원, 12번 유민봉 의원도 최순실 씨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이들 의원의 이름이 찌라시에 오르내린 이유는 과거 역임했던 직책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송 의원은 평창동계올림픽 지원사업단장을 역임한 바 있고, 유 의원은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 수석비서관으로 일한 바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경우 최순실 씨와 그의 조카 장시호 씨가 이권을 챙기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고, 청와대 비서실의 경우 ‘최순실 사단’ 등이 최 씨의 국정농단에 조력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