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최태민의 묘. 연합뉴스
23일 용인시에 따르면, 최태민 씨의 묘지는 장사관련법 및 산지관리법을 위반했다. 이에 용인시는 처인구 유방동 산 81-3에 설치된 최 씨 묘지를 관련 법령에 따라 이전명령과 함께 원상복구를 취하기로 했다.
가족묘지를 설치할 경우 ‘장사 등에 관한 법률 14조3항’에 따라 신고를 하도록 돼 있는데 최 씨 가족은 이곳에 가족묘 2기의 합장묘를 설치했는데도 이를 이행치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신고를 하지 않았을 경우 이전명령 대상이 된다. 또한, 가족묘지의 면적은 100m² 이하, 봉분의 높이는 지면으로부터 1m 이하여야 하는 ‘장사법 시행령 15조’의 가족묘 설치 기준도 초과 위반했다.
이밖에도 산지에 묘지를 설치할 경우 ‘산지관리법 14조’에 따라 전용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어긴 것으로 확인돼 용인시는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원상복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사정당국에 고발조치된다. 장사법 위반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 산지관리법 위반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용인시 관계자는 최 씨 가족에게 행정조치를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최순실 씨와 조카 장시호 씨가 검찰에 구속 기소된 상태라 이전명령과 원상복구는 최태민 씨의 다른 딸들이나 이복 가족들이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 지연될 경우 최 씨 일가가 아버지의 묘지 문제로 경찰에 고발당할 수도 있다.
묘지와 그 주변 임야 6500여m²는 최순실 씨가 15%, 큰언니인 최순영 씨가 15%의 지분을 갖고 있다. 나머지 70%는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인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부인과 동서가 공동 소유자로 올라 있다. 1990년 이 땅을 매입했던 원 소유주 김 아무개 씨는 김 전 회장의 친인척이다. 최 씨 자매는 매매 예약만 해놓은 상태에서 원 소유주인 김 씨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청구권 가등기 및 근저당을 설정했다.
최태민 씨는 생전에 사이비종교를 만드는 등 풍수와 무속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묘 주변 지역도 풍수지리가 뛰어나 예로부터 권세가들이 많이 찾는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다.
최태민 씨의 불법 묘지 이야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로 자연스레 옮겨진다. 최 씨는 박근혜 대통령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 책임을 일부 시인하면서도 사교(邪敎)에는 결단코 빠지지 않았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최 씨에 대해 자신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은 좋은 분이었다고 강조한 만큼 최 씨 일가의 무속, 굿, 풍수 등에 대한 정보와 의견이 오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부터 최근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에 대한 풍수 재정비를 토로하는 의견들이 풍수학자나 이른바 도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언급된 바 있다. 일부 풍수학자나 무속인이 여러 통로를 통해 청와대 및 정치권 등 대통령 측근들에게 고언했다는 증언도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이러한 풍수 의견에 박 대통령 역시 신경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박 대통령은 아버지와 조부의 묘에 대한 풍수정보 등에 대해 자문을 전달받았다고 관계자들은 주장한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위치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 일요신문DB
나아가 ‘비선실세’인 최순실 씨가 박 전 대통령의 묘까지 관리해 왔다는 의혹이 제기돼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아버지 (최태민)의 능력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최순실 씨가 직접 한 것이 아닌 자신과 친한 무속인과 풍수학자의 도움을 받아왔다는 제보들이었다. 무속인들 사이에서는 최 씨가 영애(박근혜)도 모자라 아버지(박정희)까지 독차지하는 등 욕심이 대단해 자칫 잘못된 풍수 판단에 대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마저 있었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지난해 풍수술사 황 아무개 씨가 박 전 대통령 묘를 재정비한 것으로 확인됐다. 황 씨는 자칭 ‘국장(國葬)을 두 번이나 주관한 사람’으로 지난해 말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 묘 정비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씨가 박 전 대통령 묘 정비 과정에서 돌을 빼거나 무덤에 바람이 들게 하는 등 묘의 풍수를 오히려 망친 게 아니냐는 비난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묘역 정비에 술사를 동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풍수학자 A 씨는 “묘역 정비 과정에서 금기사항 등이 외부로 공개되면 풍수에 부정적인 영향이 올 수밖에 없다”면서 “풍수지리는 조상신에 대한 후세인들의 정성이자 기원이기 때문에 오히려 외부에 알리기보다는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부 관련업 종사자들은 황 씨가 박 전 대통령 묘를 재정비하는 과정에 최순실 씨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엔 더욱 그런 눈치들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일요신문DB
한편, 풍수술사가 전직 대통령 묘를 정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박 전 대통령의 묘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전직 대통령 묘역 정비 등 관리는 현충원에서 도맡고 있다. 설사 안장된 고인의 가족들이 묘역 정비 등을 희망할 경우도 현충원에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시기와 여부를 통보하고 진행해야 한다.
현충원 실무팀과 대외협력부서인 선양팀에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질의하지 “금시초문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답변뿐이었다. 현충원 측은 “전직 대통령 묘는 물론 현충원 내 모든 묘에 대한 관리는 현충원이 담당하고 묘역 관리 계획에 의해 진행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가족 등 개개인에 의해 관리가 이뤄질 수 없으며, 만약 모르게 그랬다면 명백한 위반 행위라고 못 박았다. 다만 구체적인 묘역 정비 계획 등의 자료에 대해선 윗선 보고, 실무조율 등의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