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운 내에서는 이번 인수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 배경에는 M&A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 온 우오현 회장에 대한 신뢰가 있다. 우 회장과 SM그룹의 역사는 M&A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1988년 삼라건설을 창업해 경영활동을 시작한 우 회장은 2004년 건설사 진덕산업(현 우방산업)을 비롯해 2005년 벡셀, 2006년 경남모직, 2007년 남선알미늄, 2008년 동국무역(현 TK케미칼), 2011년 우방건설산업 등을 인수했다.
우오현 SM그룹 회장
대한해운도 우 회장의 M&A 성공작 중 하나다. 우 회장은 지난 2013년 9월 법정관리 중인 대한해운을 2150억 원에 인수했다. 대한해운은 해운업계가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2014년 이후 매분기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법정관리 당시 고비용의 외국 용선계약이 모두 해지돼 부담이 줄어들은 것도 한 요인이다.
비록 ‘M&A의 귀재’인 우 회장이지만 이번 한진해운 미주노선 인수에 대해서는 우려의 의견이 적지 않다. 불황인 해운업계에 투자하다가 자칫 그룹 전체에 부담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진해운의 미주노선은 컨테이너선만 취급하지만 SM그룹은 컨테이너선 운영 경험이 없는 것이 지적된다. 벌크선은 대부분 배에 물량을 가득 채워 출항하지만 컨테이너선은 배에 화물이 가득 차지 않아도 출항한다. 벌크선은 배 한 척이 한 철강회사와 전임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컨테이너선은 배 한 척이 여러 업체와 계약한다. 따라서 세계 경기가 좋지 않아 무역량이 줄어들면 벌크선보다 컨테이너선이 더 큰 손해를 본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해운업계 특성상 초기 투자비용이 수천억 원 필요한데 대한해운의 연간 영업이익이 수백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너무 무리하는 것 같다”며 “글로벌 선사들은 얼라이언스에 가입해 노선을 공유하지만 사실상 제로베이스인 대한해운이 얼라이언스 가입이 쉽지 않아 독자적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그러면 노선과 투입 선박에도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반면 대한해운 관계자는 “한진해운 미주노선은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며 “한진해운의 영업망을 승계해 서비스를 재개하는 차원이라 대한해운의 실적과 경험을 두고 향후 실적을 판단할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SM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는 필수로 보인다. 대한해운의 유동성자산은 2000억 원 수준이다. 주요 계열사인 우방과 우방건설산업은 각각 2000억 원, 2400억 원의 유동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진해운의 6500TEU급 컨테이너선 5척의 매매가격은 600억 원 수준이다. 법정관리 직전에 한진해운이 보유했던 컨테이너선이 97척임을 감안하면 SM그룹도 최소 수십 척의 배를 구입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안정적으로 일감을 확보하려면 국내뿐 아니라 미국 항만터미널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사실상 우 회장이 해운산업에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만일 컨테이너선 사업에서 실적을 내지 못한다면 SM그룹에 타격이 갈 수밖에 없다.
실제 한진해운 미주노선도 SM그룹의 지원을 받아 인수했다. NICE신용평가는 지난 22일 대한해운 수시평가서를 통해 “한진해운은 지난 8월 31일 기업회생절차가 개시되면서 소속돼 있던 해운동맹(CKYHE)에서 퇴출되는 등 사업기반이 상당 수준 훼손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한진해운이 최근 수년간 원양 컨테이너 사업에서 저조한 수익성을 지속해오고 추가적인 선대 확보 등의 투자부담을 감안하면 향후 대한해운의 재무 위험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우 회장이 미주노선 인수에 나선 것은 일종의 출혈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을 매각하면서 버티고 있지만 버티지 못한 한진해운은 지난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앞의 해운업계 관계자는 “세계 1, 2위 해운사인 머스크와 MSC가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낮은 운임에 들어가 치킨게임을 주도하고 있다”며 “해운산업이 없어질 수는 없는 산업이라 지금 점유율을 확보한 해운사만 살아남고 세계 6~20위 수준의 해운사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전했다.
대한해운은 2014년 이후 매년 흑자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흑자폭이 줄어들고 있는 건 불안 요소다. 대한해운의 2014년 영업이익은 983억 원이었으나 2015년 860억 원으로 줄었고, 올해 1~3분기 영업이익은 282억 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우 회장은 한진해운 미주노선을 인수해 컨테이너선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다행히 2018년 이후로는 세계 해운업계가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IBK경제연구소는 지난 4월 보고서 <국내 해운업 위기 원인과 향후 전망>을 통해 “2018년 이후 선박 공급과잉이 해소돼 해운시장이 회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 해운업계 불황이 언제 해소될지는 알 수 없다. 또 자국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해운업계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우 회장으로서는 무엇보다 해운업계가 불황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그렇지 못하면 우 회장의 M&A 신화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한진해운은 올해 1~3분기 6500억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본 만큼 미주노선 영업망이 아무리 조건이 좋다 해도 단순 사업 승계만으로 과연 수익 창출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대한해운만의 특별한 경쟁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한해운은 나름의 방향을 찾아서 경쟁력을 만들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그 방향과 투자액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 대한해운 관계자는 “실질적인 운영은 내년 1분기부터 할 계획인데 투자계획이나 생존 여부를 지금 판단하긴 이르다”며 “실적이 나와야 판단이 가능하기에 아직은 지켜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롱비치터미널도 인수? 우선매수청구권 보유한 MSC가 변수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6부는 한진해운의 6500TEU급 컨테이너선 5척과 미국 롱비치터미널을 운영하는 법인 TTI의 지분 54%에 대해서도 대한해운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서부에 위치한 롱비치터미널은 컨테이너선만 취급한다. TTI의 예상 매각가는 1000억~1500억 원 수준이다. 대한해운 관계자는 “아직 TTI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가지 않아 인수 의사를 밝히기 어렵다”며 “우선협상권을 내년 1월 5일까지 행사할 수 있어 서두르지 않는다”고 전했다. 우오현 SM그룹 회장이 TTI 인수를 포기하면 최근 인수한 한진해운 미주노선 활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롱비치터미널은 미국 서부 물동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기지다. 대한해운이 컨테이너선 사업 진출을 선언한 이상 롱비치터미널을 손에 넣지 않고서는 물류거점과 원가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다. 미국 롱비치터미널. 사진출처=TTI 홈페이지 대한해운이 인수 의사가 있더라도 넘어야 할 장벽은 또 있다. TTI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스위스 해운사 MSC다. 대한해운의 TTI 인수가 MSC의 의사에 달려 있는 셈이다. 현대상선도 TTI를 노리고 있다. MSC와 대한해운이 모두 인수를 포기해야 기회가 오는 만큼 TTI가 현대상선에 넘어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MSC도 TTI가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길 원하기에 컨테이너선 경험이 풍부한 해운사를 원할 수 있다”며 “MSC가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해 TTI를 인수한 후 지분 49%를 다른 해운사에 매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현재 TTI의 지분은 한진해운이 54%, MSC가 46%를 보유하고 있다. 롱비치터미널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산가치가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TTI는 지난해 매출 6447억 원에 448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올해 1~3분기도 114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다만 3분기 기준 TTI의 부채가 6243억 원인 데다 자본은 마이너스(-) 3659억 원으로 자본잠식 상태다. 앞의 현대상선 관계자는 “해운업계가 좋지 않아도 터미널이 적자를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TTI는 한진해운 사태로 재무 상태가 나빠졌지만 대규모 터미널은 대부분 알짜 자산으로 평가받아 살 수 있을 때 사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한해운 관계자는 “TTI가 대한해운에 맞는 매물이고 적당한 가격인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라며 “필요하면 터미널에 대한 이용료를 내면 되기에 TTI 인수가 필수적이진 않다”고 전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