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탄핵정국으로 돌입한 가운데 벌써부터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에 대해 어떤 판정을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 제65조 제2항에 따르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국회 재적의원 300명 중 200명 이상의 찬성이 나와야 탄핵 소추가 가능하다. 현재 무소속을 포함한 야권 의석이 172석인 점을 감안하면 새누리당에서 28명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 소추가 가능한 상황이다. 현재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30여 명 이상이 탄핵 찬성의 뜻을 밝힌 만큼 국회에서 탄핵안 가결이 어렵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문제는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소추안을 넘겨받게 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헌재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지난 2004년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을 집행한 바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2004년 2월 노 전 대통령은 방송기자클럽 초청 대통령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당시 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발언과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발언해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3월 9일 한나라당 의원 108명, 새천년민주당 의원 51명이 서명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 됐고, 12일 국회는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 이유는 ‘선거중립 의무 위반’이었다. 공직선거법 제9조에는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돼 있다. 그 결과 노 전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고,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탄핵소추안 가결이었다.
국회를 통과한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심판을 시작했다. 소추위원 측과 피청구인 측 변호사, 그리고 그들이 요청한 증인들을 출석시켜 모두 7차례 변론을 진행했다. 그 결과,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했으나 그 위반 정도가 탄핵의 사유가 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고 판단하고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헌법 제65조 제1항에는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는 탄핵 요건이 명시돼 있다. 또 헌법재판소법 제53조 1항은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을 해당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지난 2004년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에서 “직무행위로 인한 모든 사소한 법 위반을 이유로 파면을 해야 한다면 법익형량의 원칙에 위반된다”며 “모든 법 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 있어야 한다”고 탄핵 결정의 기준을 설명한 바 있다.
이는 대통령 등 헌법에 정한 공직자가 직무 집행 중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경우 정해진 절차만 지킨다면 언제든지 탄핵소추안의 발의는 가능하지만 최종적인 파면 선고는 ‘이유 있는 경우’ 즉 중대한 법 위반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정국은 어떻게 흘러갈까. 일단 탄핵 요건은 충분히 갖췄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탄핵 관련 긴급 토론회에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 정립된 탄핵 결정의 기준으로 모든 법 위반이 아니라 단지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라면서 “검찰 수사 발표와 언론의 의혹 제기 수준으로도 탄핵 요건을 갖추는 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날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도 “그동안의 언론보도, 검찰수사 공소장에 나타난 내용, 향후 특검에서 추가로 밝혀질 내용,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에서 추가될 내용으로 (탄핵) 사유는 충분하다고 본다”면서 “이보다 더한 탄핵 사유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겠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는 확실히 다른 상황”이라며 “노 전 대통령 탄핵 때는 대통령의 문제 발언, 즉 위법 사실을 인정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박 대통령은 범죄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또 검찰이 피의자로 규정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가 (노 전 대통령 발언처럼 객관적으로) 명확히 밝혀진 게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두고 공방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회에서 탄핵안이 소추된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절차는 재판절차와 같다. 형사소송법을 준용하게 돼 있다. 법률 위반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사실 인정이 먼저 전제돼야 한다. 그 다음에 그것이 대통령직을 상실할 정도로 ‘중대한 범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라며 “현재는 그런 절차 없이 검찰수사 결과만 있는 것 아니냐. 박 대통령을 피고인으로 해서 어디까지 법률위반 사실이 인정되는 건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검찰 공소장만 갖고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박근혜 탄핵정국 또 다른 변수는 ‘재판관 임기 만료’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는 내년 1월 31일에 만료된다. 사진제공=헌법재판소 법사위원장은 헌재 탄핵심판 과정에서 일종의 검사 역할인 탄핵소추위원을 맡는다. 현재 국회 법사위원장은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다. 권 의원은 비박계 의원으로 분류되지만 지난 17일 정치적 중립성 위반을 이유로 ‘최순실 특검법’ 처리에 반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여당 소추위원이 과연 박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헌재가 소추의결서를 받으면 180일 이내에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2항에 따르면 9명의 재판관 중 7명 이상의 출석과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탄핵이 가능하다. 따라서 박한철 현 헌법재판소장과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임기 만료가 중요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박한철 소장은 내년 1월 31일, 이정미 재판관은 내년 3월 14일 각각 임기가 만료된다. 특히 내년 1월에 퇴임하는 박 소장의 후임 인선 문제로 시간이 지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로 재판관으로 임명된 후 다시 소장으로 임명되는 과정을 밟으면 되지만, 소장 임명을 두고 정치적 공방이 벌어질 경우 탄핵심판 절차가 사실상 정지될 수 있다. 헌재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고, 재판관 임명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최악의 경우 7명의 재판관만으로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7명의 재판관 중 2명만 반대해도 탄핵은 불발될 수 있다. 김종철 교수는 이에 대해 “재판관 6인이 탄핵을 찬성해야 하지만 박 소장과 이 재판관의 임기가 종료된 후 후임 인선 전에 판결을 내려야 할 경우에는 공석은 탄핵 반대로 처리된다”며 “7명의 재판관이 탄핵절차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고 2명만 기각을 하면 탄핵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9명에서 6명 찬성하는 것과 7명에서 6명 찬성하는 것은 극과 극”이라며 “헌재소장은 대통령 임명 권한인데 ‘시간 끌기’ 전략으로 하면 (탄핵) 반대할 만한 사람으로 지명할 수도 있지 않겠나. 국회에서 ‘이 사람 된다 안 된다’ 하다 보면 또 시간이 지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서 탄핵 등 법적절차에 따르겠다는 말은 이런 변수까지 생각한 그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