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시장에 나온 왼손 에시스 양현종과 김광현. 일요신문 DB
# 원 소속구단 우선협상기한 폐지의 이유
올해 FA 시장에는 그 어느 해보다 큰 변화가 생겼다. 원 소속구단 우선 협상 기한이 폐지됐다. 이전까지는 FA 선수가 원래 소속됐던 팀이 먼저 독점 협상권을 갖는 게 원칙이었다. FA 시장이 열린 첫날부터 일주일간 원 소속구단과 계약을 우선 논의하고, 이때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다시 일주일 동안 원 소속구단을 제외한 다른 팀들과 협상할 수 있었다. 이 기간이 모두 지난 뒤에야 비로소 원 소속팀과 다른 팀을 가리지 않고 모든 팀과 협상할 수 있는 진짜 FA의 문이 열렸다.
그러나 유명무실한 우선협상기한의 문제점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차마 공식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탬퍼링(사전 접촉)이 매년 난무했다.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 선수가 어느 구단과 이미 합의까지 마쳤다”는 소문이 떠돌곤 했다. 일부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현실이 된 얘기도 꽤 많았다.
최근 몇 년간은 아예 탬퍼링이 야구 규약상 ‘불법’이라는 데 대한 경각심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제시하지 않더라도, 시즌 중반 대어급 FA들에게 슬쩍 다가가 “내년에는 한솥밥을 먹을 수도 있겠다” “지금 소속팀이 얼마를 부르든 무조건 그것보다는 많이 주겠다”는 얘기를 툭툭 던지는 구단 관계자들이 많았다. 일부 대형 FA들의 휴대전화에는 타 구단 몇몇 운영팀장들의 번호가 저장돼 있었을 정도다.
상황이 이러니 원 소속구단과의 협상 때 아예 선수가 구단의 제시액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일이 종종 생겼다. 이미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으니, 빨리 일주일이 지나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협상 관계자가 “아예 얘기를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협상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분통을 터트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이적 후에도 실제 몸값을 축소 발표하는 일이 잦았다. 애꿎은 원 소속구단이 “저 정도 돈을 안 써서 프랜차이즈 스타를 놓쳤다”고 욕을 먹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 때문에 대형 내부 FA와 협상이 결렬된 일부 구단들은 “우리가 얼마를 제시했는데 거절했다”고 아예 구체적인 액수를 공개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당한’ 구단들이 반대로 다른 팀 FA를 데려올 때는 똑같이 사전 접촉의 위험을 감수했다. 피해자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물고 물린 것이다. 구단들의 입장도 “어쩔 수 없다”였다. 규약을 지키겠다고 가만히 손을 놓고 있다가는 꼭 필요한 FA를 다른 구단에 빼앗길 수밖에 없다. 다른 구단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한 선수들, 그리고 그 선수가 자칫 원 소속구단 우선협상기한에 사인을 해 버릴까봐 마음이 급한 구단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탬퍼링은 점점 알고도 눈감을 수밖에 없는 하나의 현상이 돼갔다. 동시에 FA 우선협상기한이 지난해를 끝으로 사라지는 계가가 됐다. 물론 일부 구단은 “우선협상기한이 그나마 탬퍼링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 급변한 현실을 받아 들여야 했다.
# FA 100억 시대가 열렸다
제도 도입 첫 해인 1999년 FA를 신청하고 계약한 선수는 총 5명. 몸값 총액은 24억 5000만 원이었다. 당시 야구계가 난리가 났다. ‘천문학적 금액’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렇게 돈을 쓰다 다 망한다”고 했다. 1년 뒤 홈런 타자 김기태가 쌍방울에서 삼성으로 옮기면서 4년 18억 원을 받았다. “야구판 전체가 공멸한다”는 걱정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2005년에는 아예 야구계의 ‘돈 난리’를 비판하는 기사가 연일 쏟아졌다. 삼성이 현대에서 심정수(4년 60억 원)와 박진만(4년 39억 원)을 데려오기 위해 100억 원 가까운 돈을 쏟아 부었다. 한동안 ‘돈성’이라는 별명으로 야구팬들의 놀림을 받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야구는 망하지 않았고, 선수들의 몸값은 더 올라갔다. 이제 각 팀에서 ‘야구 좀 하는’ 선수들의 몸값은 4년 50억 원에서 ‘출발’한다. 예전에는 초특급 FA들도 받기 어려웠던 금액이다. 2011년 넥센이 외야수 이택근과 이 금액에 사인하면서 FA 몸값의 새 장이 열렸다. 특히 지난해에는 국내에서 FA 계약을 한 선수 21명의 몸값 총액이 766억 2000만 원에 달했다. 최대어 중 한 명이었던 김현수가 메이저리그 볼티모어로 떠나면서 이 안에 포함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한화는 내부 FA 김태균과 외부 FA 정우람에게 각각 4년 84억 원을 안기는 투자까지 감행했을 정도였다. 2014년의 FA 총액 523억 5000만 원도 ‘거품’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1년이 지나자 오히려 규모는 더 커졌다. 동시에 FA 역대 최고액 기록도 새로 탄생했다. 내야수 박석민이 삼성에서 NC로 이적하면서 4년 96억 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올해는 무조건 ‘100억’의 벽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이미 100억 돌파까지 4억 원만 남은 상황에서 김광현과 양현종처럼 전 구단이 탐낼 만한 20대 왼손 에이스들이 시장에 나왔으니 더 그랬다. 올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경쟁을 펼친 거포 최형우도 일찌감치 몸값 100억 원 돌파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그 결과 최형우는 실제로 최초의 100억 원대 계약의 주인공이 됐다.
물론 그동안 공식적으로 발표된 금액과 별개로 이미 100억의 벽은 무너졌다는 소문이 야구계에 파다하다. 해외 리그에서 뛰다 돌아온 A 선수, 지방 구단에서 수도권 구단으로 이적한 B 선수, FA 자격을 얻기도 전부터 원 소속팀이 잔류에 총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진 C 선수, 은퇴할 때까지 뛸 것 같았던 고향팀을 떠나 유니폼을 갈아입은 D 선수 등이 몇 년 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진 ‘100억’ 소문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시장을 어지럽힌 상징적 인물’로 역사에 남거나 손가락질을 받는 게 부담스러웠던 구단과 선수가 공식 발표 금액을 축소했다는 ‘설’이다.
# FA를 잡으려면? 돈과 정성이 필요하다
어쨌든 FA의 몸값은 그 돈을 지급해야 할 구단과 시장 상황이 결정한다. 밖에서는 아무리 “몸값이 너무 높아졌다”고 비난을 해도, 그 돈을 쓰겠다고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구단들이다. 선수가 더 높은 몸값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국내 리그를 주름잡던 전국구 스타플레이어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 나가면서 한국에 남는 스타급 선수들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자연스럽게 몇몇 대어급 선수를 잡기 위한 구단들의 애정 공세도 거세진다. 과거에는 실제로 FA 선수의 집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렸다가 원 소속구단 우선협상기한 마지막 날 자정이 지나자마자 초인종을 누르고 계약서를 들이 미는 일이 많았다. 선수가 친구들과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지방의 한 리조트까지 차를 몰고 달려간 운영팀장도 있었다. 지방 A 구단 단장은 해외 리그 생활을 접고 돌아오는 한 선수가 친정팀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급히 한밤중에 한강 둔치에서 비밀 접선까지 했다. 단장이 직접 FA 선수와 친한 팀 선배를 섭외한 뒤 새벽까지 술집 문까지 닫고 설득해 도장을 찍은 사례도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구단의 정성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선수들의 계약 소감이 반은 틀리지만 반은 맞기도 한 셈이다.
무엇보다 요즘 계약서에는 예전에 없던 조항들이 많이 생겼다. 그냥 계약금과 연봉만 보장하는 게 아니라 생활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한다. 한 선수는 “계약기간 내 결혼을 하면 구단이 가전제품 일체를 바꿔준다”는 약속을 받았고, 또 다른 선수는 “원정 경기 시 룸메이트 없이 독방을 쓴다”는 내용을 삽입했다. FA 이적 때문에 이사가 불가피해진 한 선수는 구단이 아예 아파트 전세금까지 내줬다. 이렇게 부수적인 옵션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오히려 성적을 반영하는 옵션들은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추세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제1호’ 송진우 당시 천문학적인 7억에 사인 올해는 한국 프로야구에 FA(Free Agent) 제도가 도입된 지 18년째 되는 해다. 1999년에 처음으로 생겼다. FA는 말 그대로 모든 구단과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는 선수를 말한다. 한국 프로야구 FA 1호 송진우.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역대 FA 1호 계약 선수는 도입 첫해 11월에 탄생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유일한 200승 투수로 남아 있는 한화 송진우다. 1989년 데뷔한 송진우는 데뷔 11년째인 1999년 말 3년 총액 7억 원에 사인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 연일 한화와 송진우 사이의 협상 과정과 내용이 언론을 통해 생중계됐을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1호 FA 이적 선수도 탄생했다. 원 소속구단 해태와 협상이 결렬된 언더핸드 투수 이강철이 3년 총액 8억 원을 받기로 하고 삼성으로 이적했다. 이강철은 역대 언더 핸드 최다승 투수다. 한국 프로야구에 역사를 남긴 레전드 투수들이 FA 역사에도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셈이다. 유서 깊은 메이저리그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먼저 FA 제도가 생겼다. 1975년 12월 처음으로 FA 제도 도입이 승인됐다. 1970년 세인트루이스 외야수 커트 플러드가 필라델피아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플러드는 가족과 함께 살았던 세인트루이스를 갑작스럽게 떠날 수 없다는 이유로 트레이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1922년 이후로 구단의 독과점을 인정하고 선수의 자유 이적을 금지해온 상황이었다. 플러드는 결국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주장하면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에는 플러드가 패소했다. 현역 선수들은 불이익을 우려해 법정에서 플러드의 편을 들지 않았다. 연방대법원도 구단과 사무국의 손을 들어줬다. 플러드는 결국 1971년 13경기만 뛰고 은퇴했다. 그러나 1975년 선수노조 위원장 마빈 밀러가 팔을 걷어붙였다. 불합리한 법을 바꾸는 데 앞장섰다. 그 결과 1976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6시즌을 뛴 선수는 FA가 돼 자유롭게 다른 팀과도 계약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됐다. 이후 제도는 진화해왔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FA 자격을 얻으려면, 25인 로스터에 한 시즌 172일 이상 등록돼 총 6년의 서비스 타임을 소화해야 한다. 부상자 명단이나 출전정지 명단에 등재되더라도, 마이너리그에 내려가지 않는 한 서비스 타임은 인정된다. 메이저리그에는 이 외에도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있다. 경력이 3시즌 이상 되면 연봉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게 대표적이다. 일본 프로야구는 1993년부터 FA 제도가 시작됐다. 스위치히터로 이름을 날렸던 내야수 마쓰나가 히로미가 최초로 FA를 선언해 한신에서 후쿠오카로 이적한 게 첫 사례였다. 총 8년(한 시즌 1군 등록일수 145일 기준)을 뛰면 일본 내 구단 이적이 가능한 국내 FA 자격을 얻을 수 있다. 2007년 이후 입단한 4년제 대졸 혹은 사회인 야구 출신 선수에 한해서는 7년 이후에도 가능하다. 다만 해외 이적이 가능한 FA 권리는 전원 9시즌이 지나야 취득할 수 있다. 일본 FA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팀 내 연봉 순위에 따라 FA 선수 보상 규정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팀 내 연봉 3위 이내인 A등급 선수를 다른 구단이 데려가려면 보상 선수 1인과 그 해 연봉의 50%, 혹은 보상 선수 없이 연봉의 80%를 내줘야 한다. 4위부터 10위까지인 B등급 선수가 이적할 때는 선수 1인과 연봉의 40%, 혹은 연봉의 60%를 상대팀에 보상한다. 대신 11위부터 시작되는 C등급 선수를 영입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나 조건이 없다. 보상 선수에 대한 부담 탓에 이적 기회를 찾지 못하는 베테랑이나 백업 출신 FA 선수들에게는 천금 같은 조항이다. 대어급 선수들의 몸값 경쟁만 치열해진 한국 야구계에서도 끊임없이 “일본처럼 FA 등급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