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욱 새누리당 캠프 관계자들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경찰은 봐주기 수사 의혹을 받았다. 박은숙 기자
경찰은 그동안 ‘지 의원 선거 캠프 관계자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봐주기 수사’ 의혹을 받고 있었다. 지난 3월 초, 경찰이 지 의원 캠프 관계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한 당원의 상세한 진술을 확보했으면서도 금품 제공자들에 대한 수사를 총선이 끝난 뒤에야 뒤늦게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금품을 받은 당원의 진술로 범죄 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양쪽의 통신‧계좌 내역을 조회하는 등 사실관계 확인과 증거 확보가 돼야 했지만 경찰은 당원에 대한 통신‧계좌 등 내역만 확인했다. 금품 살포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는 총선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이뤄졌고, 캠프 관계자들의 통신‧계좌 조회 영장은 5월 중순에야 신청됐다.
그런데 이미 선거 사무실이 폐쇄된 이후라 압수수색 등 캠프 자체에 대한 수사는 불가능했다. 결국 금품 살포가 선거 캠프 차원에서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선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경찰은 지난 6월 “캠프와는 관련 없다”며 혐의가 확인된 캠프 관계자 3명만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검찰 수사를 거쳐 지난 10월 13일 재판에 넘겨졌다.
이 때문에 지난 10월 14일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이 도마에 올랐다. 경찰의 ‘늑장 수사’에 대한 의원들의 각종 질의가 쏟아졌다. 그런데 이날 사건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 남대문경찰서 수사과 소속 차윤주 경위가 증인으로 참석해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취지로 답변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차 경위는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의 “올해 3월초 진술을 확보했는데 왜 검찰에 선거범죄 게시통보를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선거 사건은 공소시효가 제한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수사를 하려 했다. 하지만 경찰은 계급사회이고 상부 지시명령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선거사건은 실무자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상급자와 논의해서 한다”고 답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팀장, 과장이) 뭐 때문에 ‘하지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나?” 물었고, 차 경위는 “그 부분은 명확히 없었다”고 했다. “그냥 ‘하지마라’는 것이었나”라는 거듭된 질문에 “네”라고 말했다.
이후 ‘외압’ 논란이 증폭되자 경찰청은 지난 10월 17일 수사국 내에 수사기획과장을 팀장으로 진상조사팀을 꾸려 사실 확인에 나섰다. 조사는 지난 10월 31일 마무리됐다. 경찰청은 “관련 회의나 수사 방법, 지휘 등의 과정에서 서로 간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며 “외압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고, 국감에서 증언한 차 경위에 대해서는 별도의 후속조치 없이 조사를 마무리했다.
국감에서 수사 외압을 주장한 경찰관에 대해 남대문경찰서가 보복성 처분을 했다는 주장이 경찰 내부에서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차 경위를 잘 알고 있는 일부 전‧현직 경찰 관계자들은 “차 경위가 보복성 처분을 당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전직 경찰 관계자는 “차 경위가 첩보를 입수해 수사하려던 사건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중단됐으며, 별다른 통보 없이 업무 담당자가 교체됐다”고 주장했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차 경위가 입수한 첩보는 대학총장, 공무원, 정치인 부인 등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전직 부장판사 부인 관련 사건이었다. 지난 2012년 검거된 100억 원 대 보석 투자 사기 등의 사건 피의자 유 아무개 씨(여‧당시 48)는 재판을 받던 도중 “지병으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법원으로부터 한 달간 구속집행정지 허가를 받은 뒤 종적을 감췄다.
문제는 차 경위가 입수한 첩보 내용이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차 경위는 유 씨가 잠적한 상황에서 또 다른 사기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는 “차 경위가 최근 유 씨와 접촉한 피해자들을 찾은 뒤 추적하려고 했다”면서도 “그런데 남대문경찰서 관할 사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사가 중단됐다. 수배자 검거 사건이고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데도 관할을 따진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여기에 그동안 차 경위가 맡고 있던 서무 업무도 별도의 통보 없이 새로운 담당자에게 옮겨갔다. 특히 업무 담당자 교체는 차 경위가 지난 11월 초 이틀간 외부 기관에 교육을 다녀온 사이 이뤄졌다. 이를 두고 앞서의 경찰 관계자들은 “내부 고발자를 대상으로 업무를 빼앗는 전형적인 ‘책상 빼기’ 아니냐”고 지적했다. <일요신문>은 차 경위에게 직접 관련 내용을 수차례 질문했으나 그는 “답변하기 어렵다”고만 말했다.
반면 남대문서 수사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신문>과 만나 “수사 중단은 3개월째 피해자 확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 동의하에 중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 자체도 우리(남대문서) 관할이 아니다. 피의자에 대해선 수배를 내린 서초경찰서와 검찰에서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서무 업무와 관련해 수사과장은 “업무 효율 차원에서 담당자를 교체한 것”이라며 “차 경위가 맡았던 모든 업무를 배제하거나 교체하지 않았다. 담당하던 업무 가운데 일부만 조정‧분담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과장은 또 “앞서의 외압 관련 사건도 금품 수수자의 진술이 불분명한 점, 선거를 앞두고 음해성 첩보일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토대로 신중하게 판단하자는 차원에서 결정을 내렸던 것”이라며 “수사는 절차대로 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차 경위가 속한 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편이다. 본인만 원한다면 다른 부서 등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차 경위는 최근 한 언론사를 상대로 청구한 정정‧반론보도‧손해배상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앞서의 언론사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경찰의 무리한 압수·수색으로 수술받던 환자가 코를 절개한 채 8분 동안 방치됐으며, 보험사 직원이 경찰을 사칭하고 압수수색을 주도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 제13민사부는 앞서의 내용 대부분이 허위라고 판단해 언론사에게 정정보도를 하고 7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앞서의 언론사의 보도 이후 차 경위는 관련 수사에서 배제된 뒤 다른 경찰서로 인사 조치되고, 상급 부서의 조사로 고통을 받았으며 전국의사총연합으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다. 고발 건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됐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