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검찰은 삼성이 최순실 씨 등을 통해 청와대 등에 영향력을 행사해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게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사건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3자 뇌물공여죄를 적용할지 여부가 달려 있다. 삼성 측은 “국민연금에 대해 주주 설명 차원의 과정을 거쳤을 뿐 불법적인 로비 사실은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최순실-국민연금 커넥션 의혹이 제기되면서 삼성그룹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검찰, 확증 굳혔나
검찰은 이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소환조사했다. 그런데도 지난 19일 최순실-안종범-정호성 등을 기소하면서 삼성을 뺐다. 동시에 범죄 피의자로 박 대통령을 적시하면서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소 이후 삼성·국민연금·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삼성과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들을 잇달아 소환조사했다. 총수와 그룹 수뇌부는 물론 국민연금과 청와대, 정부 부처까지 동시에 이뤄지는 대대적인 수사는 삼성 창사 이후 최대 규모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의 행보를 보면 향후 재판 과정에서 추가기소를 통해 ‘삼성-최순실·박근혜-국민연금’의 3각 뇌물 관계를 입증해 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는 점을 나름 확인한 것 같다. 뇌물죄는 형이 가장 무겁다.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고 검찰의 신뢰 문제가 걸려 있는 만큼 수사 의지가 상당히 강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엄격해질듯
이번 사태로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절차의 문제점이 다시금 드러났다. 뇌물죄 성립 여부를 떠나 향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상당히 매서워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삼성이 무리한 합병을 진행했던 불똥이 재계 전체로 튀는 셈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주요 대기업에서 국민연금은 최대주주 다음이거나 최대주주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최근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태도를 보여왔는데, 이번 사태로 앞으로는 더욱 엄격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 등으로 대관업무도 위축된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른바 경제민주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돼 해외 상황도 어렵다. 설상가상에 사면초가다”라고 우려했다.
펀드업계 관계자도 “자본시장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절차를 강화한다면 다른 펀드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특히 펀드들은 수익자들의 소송 위협에도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박은숙 기자
그동안 대기업들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주식맞교환과 합병 등을 활용했다. 특히 합병법인과 피합병법인이 모두 상장사일 경우에는 총수일가가 직접 지배하는 회사의 기업가치가 훨씬 높은 시점을 택해왔다. 하지만 삼성물산 사태로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이 같은 시점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다면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승계하는 데 상당한 애로가 예상된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이미 서울고법에서 삼성물산 주주이던 일성신약 등 소액주주들이 요구한 매수청구가격 상향 청구가 받아들여졌다. 최순실 사태로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이 판결을 확정한다면 향후 상장사 간 합병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정시점의 주가가 아니라 기업의 실질가치를 반영한 매수청구가를 인정하면 합병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지난 5월 서울고법 민사35부는 “합병 결의 무렵 삼성물산의 시장주가가 회사의 객관적 가치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5만 7234원이던 기존 보통주 매수가를 합병설이 나오기 전인 2014년 12월 18일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산출한 6만 6602원으로 새로 정했다. 삼성물산은 당시의 회사 주가 등을 바탕으로 1주당 5만 7234원을 제시했다.
서울고법이 삼성물산 주가는 낮게, 제일모직 주가가 높게 형성돼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일가가 합병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사정을 고려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는 “합병 발표를 앞둔 삼성물산이 그룹 일감을 다른 계열사에 넘기고, 해외사업 수주도 뒤늦게 공개했다”며 “실적 부진이 삼성가의 이익을 위해 의도됐을 수 있다고 의심할 수 있다”고까지 강조했다.
법원은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 주식을 꾸준히 팔아 주가를 낮춘 국민연금에 대해서도 “이 같은 매도가 정당한 투자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국민연금의 주식 매도가 그와 같은 주가 형성을 목표로 의도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들도 다수 있다”고 지적했다.
#롯데, 최대 피해자 되나
롯데는 지난 비자금 사건 수사에서 신동빈 회장이 구속되지 않으면서 한숨을 돌렸다. 검찰이 비자금과 관련한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신 회장은 또 다시 위기를 맞게 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난 비자금 사건의 핵심은 횡령·배임 혐의를 입증하느냐였다. 하지만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검찰이 확증을 잡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뇌물죄다. 신 회장이 박 대통령을 독대한 후 롯데가 최 씨 측에 돈을 건넸고 검찰 압수수색 직전 이를 돌려받았다는 점이 미묘하다. 만약 신 회장 본인의 구명을 위해 회사 돈을 건넨 게 되면 배임혐의 적용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횡령은 최대 5년, 배임은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이다.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이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뇌물공여죄도 최대 5년 이상 징역이다.
#삼성-한화, 사이 틀어지나
돈독했던 삼성과 한화 총수 일가 사이도 이번 사태로 금이 가게 생겼다. 지난해 초 두 그룹이 방산과 화학 부문 ‘빅딜’을 하면서 한화가 맡던 승마협회가 삼성으로 넘어갔다. 삼성이 최순실의 존재를 미리 알았든 알지 못했든 결국 승마협회가 매개가 돼 삼성과 최순실․정유라 모녀가 이어진 셈이다. 다만 한화 측은 승마협회가 최 씨 및 정 씨와 연결된 점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입장에서는 굳이 승마협회를 맡은 데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클 수 있다. 특히 이번 사태가 그룹 지배구조는 물론 그룹 이미지에 미치는 타격이 큰 만큼 한화가 골칫거리를 떠넘겼다고 원망할 수도 있다. 심지어 한화증권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비판적인 보고서를 낸 일도 있어서 더욱 감정이 상할 수 있다고 보인다”고 풀이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삼성과 현대차그룹도 최근 이재용 부회장이 현대차그룹과 경쟁적인 구도로 자동차 사업을 확장하면서 다소 소원해진 것으로 안다. 이번 승마협회 건의 경우 그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는 만큼 삼성-한화 사이가 앞으로 아주 돈독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