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7일 북한의 전승절 60돌 기념행사에서 합창공연을 펼치고 있는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사건에 연루된 예술단원들의 공개처형은 2013년 8월 20일에 있었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북한 전승절 60돌 행사(2013년 7월 27일)가 끝나고 나흘 뒤, 전격 체포됐고 약 3주 뒤 이 같은 일을 당했다. 공개처형이 진행된 평양시 순안구역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는 예술단을 직할하는 중앙당 조직지도부 관계자들은 물론 선전선동부 관계자, 내각 문화성 주요 관리들, 주요 문화예술 관련 조직들을 관할하는 당 조직 및 선전 관계자들, 공훈배우급 이상의 문화예술인들을 포함해 대략 2000여 명이 참석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의 처형은 당일 오후 4시부터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처형 이유는 이미 관련 보도에서 알려졌던 그대로다. 즉 ‘최고 존엄’ 리설주에 대한 적절치 못한 뒷말과 비아냥거린 것은 물론 음란 영상물을 촬영 및 금전 취득을 목적으로 이를 배포한 것이 기본 죄목이었다. 당시 중앙재판소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인간답지 않은 사람들이 감히 혁명의 최고 수뇌부에 대해 운운하며 유언비어들을 퍼뜨리고 개 같은 부와 타락한 행위들을 일삼았다”고 적시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모두 10명으로 확인된다. 이들 중 처형된 사형수는 모두 9명이었다. 은하수관현악단과 왕재산예술단 2개 단체 단원들이었다. 여기에는 은하수관현악단 1호 바이올리니스트 정선영(여·당시 32세)을 비롯해 남성 가수 5명, 왕재산예술단의 색소폰 연주자 김형일 외 남성 2명과 30대 여성 무용수 한 명이 포함됐다. 처형된 9명 중 여성은 2명이었고, 남성은 모두 7명이었다.
두 예술단은 북한을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단체다. 은하수관현악단은 2009년 5월경 당시 후계자 신분이었던 김정은이 주도적으로 창단했다. 알려졌다시피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이곳서 초기 가수로 활동했으며 처형설 루머가 있었던 현송월도 이곳 가수 출신이다. 1983년 결성된 왕재산예술단(구 왕재산경음악단) 역시 북한을 대표하는 전자음악단으로 초기 김광숙, 전혜영 등 유명한 가수들을 배출한 최고급 예술단체다.
사건에 연루된 바이올리니스트 정선영은 북한에서도 내로라하는 미모의 연주자였다. 그의 공연을 본 해외의 한 유명 지휘자는 그를 이탈리아에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을 정도다. 여기에 은하수관현악단의 유명가수 문명삼, 김경호, 리춘일, 강정훈이 이번 사건의 핵심에 연루됐다.
가수 김경호는 북한의 공훈배후인 김기영의 아들이다. 김기영은 김정일 생존 당시 “아주 쓸 만하고 실력이 출중한 배우”로 치켜세우던 인재로서 바리톤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기영은 다른 처형된 가족들이 정치범수용소로 수감된 이후 김정은의 ‘배려’로 석 달 만에 평양으로 복귀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사건에 연루된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 왼쪽에서부터 리춘일, 강정훈, 문명삼, 김경호, 정선영. 사진출처=조선중앙TV
은하수관현악단의 정선영과 문명삼(30대 후반)을 제외하고는 모두 30세 미만의 쟁쟁한 가수들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들의 엽기적인 행위는 고참급에 속하는 정선영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처형된 왕재산예술단 소속 단원들과는 합동공연 시 얼굴을 텄던 것으로 확인된다.
왕재산예술단 소속의 30대 여성 무용수는 선전선동부의 한 부부장급 인사의 내연녀로 알려졌다. 이 무용수는 함께 처형된 예술단 내 3명의 색소폰 연주자들과 오랜 기간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무용수와 내연관계에 있었던 앞서의 부부장급 인사는 사건 종료 이후 곧 출당 조치됐다.
주요 죄목으로 알려진 음란동영상 촬영 및 배포 등 엽기행위는 두 예술단 내부에서 오래전부터 은밀히 이뤄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두 단체 단원들이 서로 협력하여 문란행위를 함께한 것은 북한 예술단 내부 환경과 관계가 깊다. 앞서 범죄에 연루된 은하수관현악단은 김정일이 자주 보는 1호 공연을 주도하는 북한 내 핵심 예술조직이다.
1호 공연이란 북한 최고지도자가 직접 참관하는 공연을 의미한다. 당시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깨어난 김정일은 2009년 5월경 창설된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을 한 주에 많게는 2~3번 볼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최고지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각 예술단체들은 합동공연에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1호 공연을 앞둔 각 예술단들은 장기간 훈련을 거친다. 이 훈련이 이뤄지는 곳은 다름 아닌 정주영체육관이었다. 2003년 현대아산이 건립한 정주영체육관은 평양 보통강구역 류경호텔 바로 옆 보통강변에 위치한다. 남한 자본과 기술에 의해 건립된 정주영체육관은 북한 내에서 가장 시설 좋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각종 운동경기는 물론 예술 공연도 자주 펼쳐지기도 한다. 체육관 내부에는 예술단원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조를 이뤄 훈련할 수 있는 폐쇄적인 방 수십 개가 들어서 있다. 물론 각 방은 방음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1호 공연을 앞두고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젊은 남녀들은 이 공간을 서로 공유하게 된다. 여기에 혹독한 훈련을 견디기 위해 단원들은 향정신성약품을 다수 복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환경에서 자연스레 앞서의 불상사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여기서 촬영된 음란 동영상은 높은 값을 받고 외부로 팔려나갔다.
예술단원들의 범죄사실과 관련해 꼬리가 잡힌 계기는 공개처형보다 훨씬 앞선 2013년 4월의 일이었다.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 바로 이 사건에 연루된 은하수관현악단 단원 6명 중 한 명인 리춘일이었다. 범죄에 연루된 리춘일은 오랜 기간 무서움과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한 때 처형설이 나돌았던 현송월은 모란봉악단의 단장으로 소개되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위부는 이때 즉시 단원들을 처형하지 않았다. 추가적인 정황 포착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당장 7월에 예정된 1호 행사가 문제였다. 2013년 7월 27일은 북한 정권의 전승절 60돌이 되는 해였다. 꺾인 해를 중시하는 북한 특유의 문화 탓에 그 해 전승절 1호 행사는 더욱 중요했다. 이들 유명 배우 및 연주자들이 빠지면 행사에 큰 차질이 예상됐다.
리춘일의 자수에 힘입어 이러한 불법 행위들의 1차적인 범죄사실을 인지한 보위부는 이후 범죄 연루 단원들의 행위에 대한 도청을 꾀했고, 동영상 기록물(USB) 등 여러 증거들을 확보해 나갔다. 그런데 이 시기 앞서의 범죄와는 전혀 관계없는 추가적인 범죄가 포착됐다.
범죄에 연루된 예술단원 중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이 김정은의 아내 리설주를 두고 비하하는 발언을 내뱉었고, 이것이 곧바로 보위부 도청라인에 포착된 것이었다. 내용인 즉, 김정일이 무용수 고영희와 혼인했고 이어 아들 김정은이 가수 출신인 리설주와 혼인한 것을 비하한 것이다.
당시 포착된 발언을 살펴보면 ‘아버지가 띤따라쟁이 출신인 고영희와 결혼하니, 또 그놈의 아들(김정은)도 띤따라쟁이 리설주와 결혼했다’는 내용이었다. 띤따라쟁이는 한국에서 연예인을 ‘딴따라’로 비하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다. 무엇보다 자신들과 함께 활동했던 가수 리설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더욱 얕잡아봤다는 후문이다. 대로한 김정은은 이들의 처형을 결정했다.
리춘일의 자수로 범죄사실이 이미 발각됐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연루 단원들은 정상적으로 전승절 60돌 1호 기념 공연을 준비했고, 임무를 성과적으로 완수했다. 공연 직후 이들은 보위부에 즉각 체포됐고, 앞서의 죄목으로 공개 처형됐다. 처형된 단원들의 가족들은 앞서 석 달 만에 복귀했다고 언급한 김경호의 부친 김기영을 제외하곤 모두 혁명화 지역으로 보내졌다. 애초 범죄사실을 자수한 리춘일은 목숨을 건진 것으로 확인된다. 다만 사건에 직접 연루된 탓에 아직까지 공개적인 공연에 오르진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후 은하수관현악단은 2014년 초 해체됐다. 현송월과 함께 처형설이 돌기도 했던 은하수관현악단 단장 문명진은 앞서의 일을 책임지고 혁명화 교육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