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행을 원하는 북한이탈주민 김련희 씨는 인터뷰 과정에서 가족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눈물을 보였다.
북한이탈주민 김련희 씨(여‧46)는 지난 2011년 9월 16일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그가 남한에 오게 된 건 실수에 가까웠다. 중국에 살고 있는 친척을 방문하러 갔다가 이 과정에서 만난 브로커에 속아 입국했다. 김 씨는 즉시 국정원에 송환을 요청했으나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특이한 탈북자’가 됐다. 국정원은 그를 ‘언제든 북으로 탈출할 수 있는 신원특이자’로 분류했고 지금까지 여권발급을 거부하고 있다. 김 씨는 한국에 들어온 이후 단식과 자살 시도부터 강제 추방을 당하기 위해 두 차례 간첩을 ‘사칭’했다. 지난 2013년 “북한의 지령을 받고 탈북자 명단을 넘겼다”며 하지도 않은 범행을 주장했다가 검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하자, 일부 탈북자 전화번호를 휴대전화에 저장한 뒤 스스로 증거물로 제출했다.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지만 추방 대신 처벌만 받았다. 현재 김 씨는 국내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처음으로 공개 북한 송환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김 씨가 또 다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경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번에는 김 씨가 자처한 게 아니다. 경북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지난 10월 29일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김 씨의 자택에서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날 경찰은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신은미 저), <서울동무, 평양친구>(황선 저) 등 책 두 권, 인쇄한 통일 관련 뉴스 2건을 압수하고, 데이터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김 씨의 스마트폰을 확보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김 씨가 메모한 영장 내용을 보면, 경찰은 김 씨가 △자신을 북한으로 송환해달라는 기자회견 등을 하면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양심수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등 ‘이적단체’와 어울렸고 △2016년 9월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인 양심수 면회 △창원, 광주 등에서 북 찬양 발언 △2015년 7월 4일 한겨레 보도에서 북한 찬양 발언 △베트남 대사관을 통한 망명 신청(잠입·탈출)으로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씨와 그를 돕고 있는 장경욱 변호사와 관련 시민단체 등은 지난 11월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 중단과 사과를 촉구했다. 특히 김 씨는 “경찰 수사를 이해하기 어렵다”며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보다는 나의 전국 순회 강연과 관련 단체의 활동 등을 막으려는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경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부터 의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김 씨에 따르면 압수수색 당일 경찰 20여 명은 그의 자택을 샅샅이 조사하면서도 USB 2개와 봉투에 넣어둔 달러는 압수하지 않았다. 경찰이 김 씨의 집에서 압수한 물품은 앞서의 책 두 권과 인터넷 뉴스 2건뿐이다. 김 씨는 “압수수색을 하면 USB를 가장 먼저 챙겨간다는 건 북한에 살던 나도 잘 알고 있다”며 “그런데 옷장에 걸려있던 외투 주머니부터 가방까지 다 확인을 했으면서도, 가방 안에 넣어둔 USB는 그대로 두고 갔다”고 말했다. 이어 “베트남 대사관 망명 신청이 문제라면서 그때 쓰려고 바꿔둔 달러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9일 경북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가 김 씨의 집을 압수수색 했다. 김 씨는 USB가 가방에 있었지만 경찰은 관심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베트남 대사관을 통해 북으로 잠입‧탈출을 시도했다는 혐의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 씨는 지난 3월 베트남 대사관에 들어가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하고 북한 송환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베트남 대사관 측은 “남‧북 관계 등 고려할 사항이 상당히 많다”며 “한국의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라”며 의사를 밝혔다. 김 씨가 “그래도 대사관을 나갈 수 없다”고 버티자, 대사관 측은 경찰을 불러 그를 내보내는 대신 “무단 침입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 씨는 “지난 4월 대사관 퇴거 거부로 경찰에서 1차 조사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번 압수수색이 시작된 것”이라며 “한국이 북송을 거부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3국의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것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건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씨는 SNS나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찬양 발언을 했다는 내용도 위반 소지가 되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한다. 김 씨는 “‘나는 뼛속까지 평양 사람’이라는 내용이나 ‘김일성 수령님’이라는 표현은 썼지만 그동안 북한에서 어떻게 살아 왔는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을 뿐”이라며 “TV에 나오는 새터민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른 이야기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경찰이 문제 삼은 언론 기사는 한겨레 신문의 “나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지난 2015년 7월 보도)이다. 이 기사는 지난해 11월 국제엠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했다. 김 씨는 “경찰의 수사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소환조사를 거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의 김 씨 주장들에 대해 경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라 현재로선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씨는 대립이 첨예한 한반도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남과 북 어느 곳에서 속하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김 씨가 입국 즉시 요청한 북송이 받아들여졌다면 그가 개인적으로 제3국 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하거나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수사 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김련희 씨를 돕고 있는 장경욱 변호사는 “지난 2013년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듯, 김 씨는 처음부터 남한에 체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이는 보호가 아니라 억류”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국가보안법상 ‘탈출’을 시도한 게 아니라 ‘귀향’하려던 것이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김 씨 북송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 씨 사연이 알려진 이후 통일부는 “김 씨가 북으로 돌아가면 체제 선전에 이용 될 수 있으며,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탈북자들이 조금씩 늘고 있는 상황에서 선례를 만들 수 없다”고 밝혀왔다.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 11월 24일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도 “기존 입장과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입장은 기준도 없고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1월 24일 통일부는 류미영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의 아들 최인국 씨의 방북을 승인했다. 류 위원장은 1986년 자녀(2남 3녀)들을 남기고 남편인 최덕신 씨와 함께 월북해 북한 영주권을 취득하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최덕신 씨는 5·16쿠데타를 주도한 인물 중 하나로 외무부장관과 통일원고문을 역임했으며 천도교 교령을 지냈다.
이날 통일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방북을 승인했다”며 “지난 19일 차남의 방북을 승인했으며 지금은 평양에 있는 것으로 안다. 정확히 언제 북한에 들어가서 언제 돌아오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현재 외신을 통해 공개적으로 가족과 교류하고 있다. 국내 언론은 그를 ‘다방 간첩’으로만 표현하지만 현재 뉴욕타임스, CNN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외신들은 심각한 인권문제로 보고 김 씨 관련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보도하고 있다. 김 씨는 이 과정에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북한에 있는 가족도 같은 방법으로 소식을 전한다. 김 씨는 “체제도 이념도 그게 어떻든 나는 상관 없다. 내가 북송을 요구하는 이유는 내가 40년을 살던 집, 부모와 남편 그리고 아이가 보고 싶기 때문이다. 가족이 그립다. 그 이유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