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사건에 대해 사과를 하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여기에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와 가격이 좀 더 저렴하지만 같은 효능의 복제약 팔팔정까지 청와대가 대량으로 구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도를 접한 국민들의 반응은 분노를 넘어서 경악에 이르렀다. 다른 용도를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비아그라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해 언론보도는 점점 과열돼 갔고, ‘발기부전 치료제를 구입했다’는 사실에 살을 덧붙인 추문도 날개를 단 듯 퍼져나갔다. 이에 직접 청와대 대변인이 의혹이 제기된 약품들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본래 용도 외의 사용방법’을 해명했지만 전문가들은 앞 다퉈 “의학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입을 모아 반박에 나섰다.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 11월 22일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경기 부천 소사구)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청와대 의약품 구입현황 자료를 공개하면서부터였다. 김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월부터 올 8월까지 청와대는 764건의 의약품을 구매했으며, 여기서 가장 큰 문제로 부상한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정(50밀리그램 60개, 37만 5000원), 팔팔정(50밀리그램 304개 45만 6000원)을 모두 364개 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구입처는 대통령 경호실로 표기돼 있었고 2015년 12월에 일괄적으로 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용도가 불분명한 발기부전 치료제가 대통령 경호실의 명의로 구입됐다는 사실이 논란을 빚자,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지난 23일 직접 기자들을 만나 “올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앞두고 수행단의 고산병 대비를 위해 구입한 것이고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아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해명했다. 애초에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됐던 비아그라는 혈관 확장의 효능이 있어 해발 2000~3000m의 고지대에서 혈관 속 산소 부족으로 발생하는 고산병에도 효과가 있다는 속설이 있어왔다.
이런 청와대의 해명에 의학계는 콧방귀를 뀌는 분위기다. 대한약사회 학술위원회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아프리카 고산지대에 간다고 비아그라를 챙겨준 의사가 있다면 그건 약을 아예 모르는 의사거나 의사 자격을 내팽겨치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서 비아그라를 사용한다면 혈관만 확장될 뿐 체내 산소 공급은 이뤄지지 않아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 이 때문에 실제 의학계에서는 비아그라 사용을 권장하지 않고,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고산병 치료제인 다이아막스(아세타졸아마이드 성분)만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청와대는 비아그라와 팔팔정을 구매한 시기인 2015년 12월에 고산병 치료제 아세타졸정 250밀리그램도 200개(1만 8040원)가량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더 큰 논란을 낳고 있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확실한 효능이 보증된 의약품이 시중에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데 굳이 부작용 가능성이 더 높고 의사들도 추천하지 않는 발기부전 치료제를 고산병 치료제로 구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 청와대가 국소 마취제인 리도카인염산염수화물 주사도 함께 구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 큰 파문을 낳고 있는 상황이다. 리도카인은 일명 ‘칙칙이’로 불리는, 피부에 뿌려 감각을 둔화시키는 사정 지연제 ‘리도카인 스프레이’의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서 청와대 이선우 의무실장은 “열상 같은 외상을 처치할 때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한 국소 마취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에 대한 의견이 또 다시 전문가와 청와대 사이에서 갈리고 있다. 대한약사회 측은 “리도카인의 경우 주사 앰플에서 빼내 피부에 바르는 것으로 ‘리도카인 스프레이’와 똑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며 “옛날 미군들이 성관계를 할 때 리도카인과 비아그라를 함께 이용하면서 이 두 의약품을 ‘해피 드러그(Happy Drug·인생을 즐기는 약)’라고 불렀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 의약품들이 같은 달에 함께 구입됐다는 것에 대해서는 “청와대에 왜 이런 의약품들이 들어가야 하는지 의문”이라고도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마취를 위해 구입한 것이라는 청와대의 해명에 대해서는 “만일 청와대 측 주장대로 마취 등의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리도카인 단일이 아니라 에피네프린도 반드시 함께 구입해야 했을 것인데 목록을 살펴본 결과 리도카인을 구입한 달에 에피네프린을 함께 구입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와대는 2014년 3월, 8월, 11월, 12월 등 4차례, 2015년 8월, 11월 등 2차례, 2016년 3월에 2차례 등 에피네프린 주사액을 소량 구입했다. 그러나 리도카인과 비아그라, 팔팔정 등을 함께 구입한 2015년 12월의 구입목록에 에피네프린은 찾을 수 없었다.
청와대가 ‘제2의 프로포폴’로 알려진 마취제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를 구입한 사실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전신 마취제로 분류되는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는 수면 내시경, 성형외과 수술 등의 특수목적 용도로 사용되며 프로포폴과 유사한 효과를 지닌다. 다량으로 사용할 경우 환각상태에 빠질 수 있으며 중독성이 있어 사용 빈도가 높다면 의존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것이 의약계의 설명이다. 프로포폴이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구분된 만큼 유사한 효능을 가진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 역시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다.
청와대 의무실 측은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는 자발적 호흡이 불가능한 응급상황에서 기관삽관술을 할 때 진정제와 근이완제로 쓰이며 응급 상황에 신속하게 처치할 수 있도록 구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발생하는 응급상황을 위해 구비한 것으로 보기에는 과도한 양이 문제가 됐다. 2014년 11월과 2015년 11월 대통령 경호실 명의로 각각 10밀리리터 20개(8만 7880원), 10개(4만 3940원)가 구입됐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의 해명은 의문을 해소했다기보다는 또 다른 논란만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청와대의 용도가 불분명한 의약품 구입에 대한 의혹이 지속 제기되면서 국회의 청와대 예산 삭감 움직임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11월 23일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국민의 요구와 달리 국익을 훼손하고 국격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는 ‘대통령의 업무 수행’ 관련 직간접 예산을 전액 삭감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 의원에 따르면 2017년 대통령비서실의 업무추진비, 특수활동비 등 대통령 업무수행 직접 예산은 302억 4200만 원으로 책정됐으며, 해외 순방 및 정상회담 등을 지원하기 위한 간접 예산은 205억 9300만 원에 달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그 많은 미용·영양 주사는 또 왜…“길라임은 응답하라” 청와대가 구입한 약품 가운데에는 주사제가 가장 많았다. 일명 ‘태반주사’로 불리는 라이넥주가 2015년 4월과 11월 대통령 경호실 명의로 각각 50개씩 총 49만 5000원어치, 멜스몬주가 2014년 6월 같은 명의로 50개(52만 원) 구입됐다. 그 외에는 ‘감초주사’로 불리는 히시파겐씨주가 2015년 4월과 지난 6월 총 100개(35만 6400원), ‘마늘주사’로 불리는 푸르설타민주가 2014년 11월에 50개(27만 5000원), ‘백옥주사’로 불리는 루치온주가 2015년 4월, 8월, 12월, 2016년 6월에 60개(60만 원) 등으로 확인됐다. 그외 비타민 주사제 1080개까지 합치면 청와대가 구입한 미용·영양 주사제는 총 1500여 개를 훌쩍 넘는다. 이 가운데 라이넥주와 멜스몬주는 태반을 원료로 해 혈액과 호르몬을 제거한 뒤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완전히 분해한 태반약제를 주사하는 것으로, 간 기능 개선과 중년 여성의 갱년기 증상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부 탄력과 미백, 보습 등에도 효과가 있어 영양 주사보다 미용 주사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비타민 치료 방법 중 하나로 꼽히는 루치온주는 멜라닌 색소 생성을 저하시켜 피부색을 밝게 하거나 피부 노화 방지 등의 효능이 있어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는 피부 미용 주사다. ‘마늘주사’로 알려진 푸르설타민주는 비타민 B1이 결합돼 피로회복, 체력 증진 등 스태미나를 증진시키는 종합 영양제 주사로 알려져 있다. ‘감초주사’ 히시파겐씨주 역시 피로회복, 간 기능 개선에 효과적인 영양 주사다. 그 외 청와대가 구입한 비타민 칵테일(혼합) 주사 역시 피로 회복과 영양 공급을 목적으로 개발된 주사제들이다. 청와대의 의약품 구입은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서 이뤄진 것이라고는 해도, 미용이나 단순한 영양 공급을 위한 주사제의 구입이 다수를 차지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게 각계의 중론이다. 더욱이 이 미용·영양주사제와 비아그라 등 문제가 된 의약품은 모두 서울대병원 서창석 원장이 대통령 주치의로 재임하던 기간에 구입한 것으로 확인돼 그 구입 배경에 대한 더 큰 논란이 점쳐지고 있다. 서 원장은 초대 주치의였던 세브란스 병원 이병석 원장 재임 기간에 비해 2배가량 더 많은 의약품을 구입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이병석 초대 주치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취임 초기 태반주사 등 영양 주사를 놔달라고 먼저 요구했으나 (효능의) 의학적 근거가 부족해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태반주사 등 영양주사 구입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없다”라고 답했다. 한편 청와대 측은 비아그라, 국소마취제, 제2의 프로포폴에 대한 의약품 구입에 대해서는 해명했지만 미용·영양 주사 구입에 대해서는 “청와대 의무실에는 미용시술을 할 수술실도 없다”는 정도로만 언급했을 뿐 적극적인 해명은 피했다. [원] |
최순실 단골 병원장, ‘그날’ 포폴 처방 왜 거짓말했나 ‘매주 수요일은 정기휴진’이라며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업무를 보지 않았다는 ‘비선실세’ 최순실 씨(60·개명 후 최서원)의 단골 병원 김영재의원이 최근 3년 동안 수요일 정기휴진일에도 70여 차례에 걸쳐 프로로폴 처방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김영재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동안의 행적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인물로 그간 주목을 받아온 바 있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김영재의원의 ‘향정신성 의약품 관리대장’에는 2014년 1월부터 지난 10월까지 수요일에 총 75차례의 프로포폴 처방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프로포폴을 처방했다는 의혹 제기에 대해 김영재의원의 김영재 원장은 “그날은 정기휴진일이라 골프를 하러 나갔다”고 해명했던 바 있다. 그는 인천 청라 베어즈베스트 골프장에서 지인 3명과 함께 골프를 즐겼다며 당시 인천공항 고속도로 하이패스와 그린피 결제카드도 함께 공개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수요일에 프로포폴 1병(20밀리리터)를 사용하고 5밀리리터를 폐기했다는 기록이 밝혀지자 “이날 김영재 원장의 장모가 오전 9시 경 혈소판풍부혈장(PRP)시술을 받으면서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김영재의원 측의 해명에 일부 거짓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정기휴진일에도 프로포폴을 사용한 진료가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영재의원과 박근혜 대통령 사이의 연결고리 의혹이 또 다시 짙어지고 있다. 최순실 씨가 또 다른 단골병원인 차움병원에서 대리 처방 받은 미용·영양주사제도 청와대로 흘러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김영재의원의 정기휴진일 프로포폴 진료 처방도 청와대와의 관계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 한편 김영재의원은 최순실 씨가 2013년 10월부터 올 8월까지 136차례 진료를 받은 단골병원으로 현 정부 들어 청와대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의혹이 불거져 왔던 바 있다. 올초 산업부는 청와대의 요청을 받고 김영재의원 봉합실 개발 과제에 15억 원을 지원했으며, 김영재 원장의 서울대병원 외래진료교수 위촉은 2014년 9월부터 지난 2월까지 청와대 주치의로 근무한 서울대병원 서창석 원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가능성도 제기돼 왔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