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곤경에 빠져 있는 박 대통령에게 검찰의 움직임은 치명적이다. 검찰은 김수남 검찰총장 지휘 아래 박 대통령 뇌물죄를 입증하기 위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박 대통령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최재경 민정수석이 사표를 던졌다.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전락한 초유의 상황에서 핵심 사정 라인마저 붕괴된 것이다.
최재경 민정수석, 연합뉴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이 특정 수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이 공범으로 적시된 사건이다. 대통령 법무참모인 장관으로선 적어도 수사 결과 정도는 사전에 보고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검찰이 워낙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사표의 원인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최재경 민정수석 사표는 김 장관보다 훨씬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김 장관의 경우 최순실 수사 초반부터 어느 정도 배제돼 왔었고, 조만간 사표를 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런데 최 수석의 경우 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지 5일 만에 사의 표명을 했을 정도로 갑작스러웠다. 최 수석을 통해 검찰 수사에 대응하려던 박 대통령 측 전략에 차질을 빚은 것이다. 한 친박계 원로 인사의 말이다.
“최 수석 임명 배경에 대해선 여러 설들이 있지만 어찌됐건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만큼은 확실하다. 전임인 우병우 못지않게 검찰을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또 친박과도 의사소통이 원활했다.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고 했던 것 역시 최 수석에 대한 믿음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후 상황이 달라졌다. 최 수석 사표는 사전에 전혀 몰랐고,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최 수석은 김 장관과는 달리 검찰 공소장에 포함돼 있는 내용뿐 아니라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은 수사 파일까지 인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법무부→청와대로 이어지는 보고체계가 작동되지 않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 수석과 검찰 간 별도의 ‘핫라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이는 애초에 친박 핵심부가 최 수석에게 바랐던 시나리오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 수석은 친정인 검찰 조직이 처한 사정, 김수남 총장을 비롯한 수사팀 의지 등을 충분히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측이 그렸던 그림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최 수석은 취임 후 대면수사의 필요성을 박 대통령에게 여러 번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검찰 출신인 최 수석은 수사 상황을 전해 듣고 이를 아예 무마하긴 힘들다고 판단했다. 버틸 경우 박 대통령 내상이 더욱 심할 것으로 봤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최 수석이) 한광옥 실장 등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대면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대면수사만 수용하면 자신이 검찰을 상대로 일정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본인이 검찰 앞에 면이 서지 않아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다는 얘기였다. 최 수석도 지금의 검찰을 컨트롤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최 수석의 이러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앞서의 친박 원로 인사도 비슷한 말을 들려줬다. 그는 “최 수석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우 수석처럼 검찰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검찰 수사에 대한 대응 등은 최 수석 영역이 아니었다. 대통령 사생활 등 민감한 사안이 많은데 뭘 믿고 최 수석에게 맡기겠느냐. 박 대통령이 아끼는 유영하를 변호사로 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 수석도 이러한 점들에 대해 상당한 좌절감을 느꼈다고 전해 들었다”고 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현재 최순실 정국에서 박 대통령은 또 다시 공식 체계가 아닌 비선에 의해 조언을 받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정수석조차 무기력감을 호소하며 사표를 던졌을 정도니 말이다. 실제로 친박 핵심부 주변에선 특정인사가 박 대통령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검찰 수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검찰 수사를 정면 거부한 것도 그의 ‘작품’이라는 말이 뒤를 잇는다. 현재 변호사로 근무 중인 최 수석 지인의 말이다.
“최 수석도 무너져가는 정부의 청와대로 들어가고 싶었겠나. 그는 정부나 검찰이 최대 위기에 빠졌다고 보고 책임감 때문에 수석 직을 수락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대면조사 수용) 보고가 박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가지 않는다고도 했다. 비선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것인데 또 비선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소연했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없지 않느냐. 후배들이 비장한 각오를 갖고 수사하는데 이를 막는 일은 본인의 성향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사표를 결심한 것이다. 살도 빠졌고, 담배도 늘었다.”
박 대통령 측이 검찰 수사를 피하고 특검을 택한 데엔 여러 정치적 계산이 담겨 있다는 관측이다. 시간과 장소 등 여러 제약이 있고, 정치적으로 변수가 많은 특검 조사를 받는 게 더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김 장관과 최 수석의 사직서는 여기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요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의 후속 이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고, 내부 갈등 역시 더욱 증폭될 조짐을 보인다. 특히 또 다른 비선이 가동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향후 탄핵 정국 및 박 대통령 거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