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노인이 늘어난 만큼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다. 화장장이 부족해 일주일 이상 대기해야 하는 사태가 빚어지자 시신호텔이 등장했다. 2014년 10월 가와사키시에 문을 연 시신호텔 ‘소우소우’. 사진출처=소우소우 홈페이지
일본 가와사키시에 있는 한 건물. 은색과 파란색 투톤으로 꾸며진 외관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간판이 없다. 얼핏 보면 창고 같기도 하고 대체 뭐하는 곳일까. 일본 경제지 <닛케이비즈니스>에 의하면, 이곳은 바로 시신호텔이다.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화장터에 대기자가 몰리자 대안으로 생겨났다. 사정 때문에 집에서 안치할 수 없는 시신들을 임시로 보관해준다.
2014년 10월 문을 연 시신호텔의 이름은 ‘소우소우’. 일본어로 장송(葬送)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완공까지 우여곡절이 참으로 많았다. “엄숙한 죽음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게 괘씸하다” “시신호텔이라는 혐오시설이 우리 마을에 들어선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쁘다” 등 인근 주민의 반대가 거셌던 것이다. ‘시신호텔 설립 절대 반대’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배치되며 험악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총 5차례 주민설명회가 열렸지만 그때마다 찬반논쟁이 격렬했다. “법률적으로 전혀 문제없는 시설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여러분도 이런 시설이 필요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며 업체 측은 팽팽히 맞섰다. 의견 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상당수의 언론 매체들 역시 “어려운 문제”라고 마무리 지을 뿐이었다.
결국 간판을 내걸지 않고, 시신 반입 시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파티션을 설치하는 등 주민들과 타협점을 찾아 영업을 시작했다.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호텔 대표 다케기시 히사오 씨는 “우려가 많았으나 매달 이용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가와사키시는 인구수가 150만 명에 가까운 도시인 데 반해, 화장장이 2곳밖에 없다. 도쿄도와 맞닿아 있어 도시 내 이용객도 상당하다. 이것이 다케기시 대표가 가와사키시를 시신호텔 설립 장소로 택한 이유다.
그렇다면 시신호텔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닛케이비즈니스>는 “흡사 비즈니스 호텔을 보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먼저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체크인 카운터가 있고, 컨시어지(안내인)가 항시 대기 중이다. 객실명은 알파벳에서 따왔으며 총 11실을 갖췄다. 아울러 로비에는 소파와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시신 보관소라는 사실을 모르고 방문한다면 일반 호텔로 착각할 정도다.
시신호텔 소우소우 내부. 사진출처=소우소우 홈페이지
다만, 객실 문을 열면 일반 호텔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시신 안치실의 넓이는 다다미 10장(약 5평) 크기. 제법 커 보이는 관과 유족이 앉을 의자, 그리고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다. 세간에서는 시신호텔로 불리나 여관업법상 호텔로 인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숙박에 필요한 침대 및 배수시설은 구비돼 있지 않다. 대신 유족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 라운지를 2층에 마련했다.
흔히 영화에 등장하는 시신 보관소는 스테인리스 침대에 시신을 안치한 후 벽면에 수납하는 냉장식이다. 그러나 이 호텔방에는 냉장기능이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장의사 직원이 확인하며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드라이아이스로 보충한다. 요금은 하루(24시간)당 9000엔.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9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다.
다케기시 대표는 “뜻밖의 사고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그 사실을 곧바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잠시나마 시간을 갖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시신호텔을 이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 호텔 객실 이용률은 73%. 요즘에는 한 달에 200구가 넘는 시신이 운반된다. 이에 대해, 다케기시 대표는 “화장터 증설이 절실하지만 자리가 없다보니 앞으로 시신호텔 이용자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노인이 늘어난 만큼 사망자가 많아지자 ‘다사(多死)시대’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사망자수는 130만 명으로 향후 25년간 그 수치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47년부터 1949년생, 이른바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90대가 되는 2040년대에는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처럼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는데, 화장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건설 부지가 마땅치 않을뿐더러 화장장을 설립하려고 해도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는 경우도 많다. 수도권은 상황이 심각해 화장을 하려면 무려 7일 이상 기다리는 일도 빈번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 시간 동안 시신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싶은 유족들의 요구와 맞아떨어진 것이 시신호텔이다. 앞서 언급한 ‘소우소우’ 외에도 일본에는 요코하마의 ‘라스텔’, 오사카의 ‘호텔 릴레이션’ 등 비슷한 시설들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시설은 점점 진화돼 냉장기능 관에 시신을 안치할 수 있고, 저렴하게 장례식을 치는 것도 가능해 이목을 집중시킨다.
과거엔 사망 후 화장까지 시신을 안치하는 장소가 대부분 고인이 살던 집이었다. 하지만 도시의 경우 아파트 생활가구가 많아 거주공간에서 장례 절차를 치르기 어렵다. 게다가 도시의 고층 아파트는 관리조합의 규약에 의해 ‘시신을 건물 내로 운반해서는 안 된다’는 곳도 많다.
여기에 최근 몇 년 사이 “장례를 간소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져 장례의식을 생략한 채 바로 화장하는 직접장이 늘어난 것도 시신호텔이 번창하는 이유로 꼽힌다. 직접장이라곤 하지만 병원 등지에서 바로 화장장으로 직행하는 건 드물다. 현행 묘지매장법에는 사후 24시간 이내 화장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시간 동안 어딘가에 시신을 보관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화장장의 시신 보냉고를 이용하면 되지만,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어 유족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이와 관련, 호텔 릴레이션 측은 “다사 시대를 염두에 두고 영안 비즈니스에 진출하게 됐다”고 밝히면서 “시신호텔은 언제든지 유족들이 원할 때 접견이 가능하다. 비용이 저렴한 것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