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9일 육영수 여사 숭모제가 열린 옥천관성회관 앞에서 진보단체 회원들과 보수단체 회원들이 충돌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숭모제가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이미 회관 밖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박해모(박 대통령을 사랑하는 해병대 모임)와 진보단체의 충돌로 한바탕 소란을 빚고 있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고 외치는 진보단체 회원들을 향해 빨간 조끼를 맞춰 입은 박사모와 군복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박해모 회원들은 ‘저거 다 빨갱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자칫 큰 몸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 욕설과 고성이 이어졌다.
회관 밖의 소란에도 행사는 예정대로 오전 11시 정각에 시작되었다. 육영수 여사의 약력 소개 뒤에 제례와 육 여사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 감상, 그리고 헌화가 이어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40여 분에 걸쳐 진행된 이번 행사에 문화공연은 생략되었다.
‘최순실 게이트’의 영향으로 인해 이번 숭모제에는 문화행사가 생략되었다. 사진=고성준 기자
간소화된 식순만큼이나 참석자들도 다른 해에 비해 눈에 띄게 적어 좌석의 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이번 숭모제에 참석한 사람은 대략 200여 명. 이들 중 대부분은 박사모와 박해모 회원이었고 나머지는 시민, 육영수 생가 복원위원회 관계자 정도가 전부였다. 박 대통령을 포함한 박근령, 박지만 씨는 물론 매년 참여하던 국회의원과 지역 기관 단체장들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행사장에는 남유진 구미시장, 김관용 경상북도 도지사가 보낸 화환이 눈에 띄었다. 현재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임원을 맡은 남 시장과 김 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일가의 관련된 행사에 대부분 주도적으로 참여해왔다. 특히 남 시장은 지난 2013년 11월 14일 ‘박정희 전 대통령 96회 탄신제’ 기념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표현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선글라스에 군복을 입은 박해모 회원들이 숭모제가 끝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비즈한국DB
박사모의 한 임원은 “박근령 씨는 원래 꾸준히 오다가 지난해와 올해는 안 왔다. 육영수 여사 가족분들도 이번엔 참석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런데 오겠나”라고 말했다. 자신을 청주 지역 학교의 전 교장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육영수 여사는) 야당 사람도 욕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박사모도 아니지만 육 여사에 대한 순수한 팬심으로 숭모제에 참여했다”며 “기관장들은 다들 눈치를 보느라 안 온 거다. 기회주의자들이다”라고 일갈했다.
행사가 마무리된 후에도 회관 앞에는 보수단체 회원과 진보단체 회원들 간의 고성과 작은 몸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게 20여 분간의 대치가 끝나고 진보단체 회원들이 먼저 자리를 뜨면서 충돌은 마무리되었다.
한편 숭모제를 주최한 옥천군은 이번 행사에 700만 원의 예산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옥천군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20년 넘게 숭모제를 지원해 왔는데 지난해에는 600만 원, 올해는 700만 원이 배정되었다”며 “지금 상황이 애매해지긴 했지만 영부인 중에서는 평가가 좋으신 편이고 군 차원에서는 육영수 여사 생가 복원 사업과 함께 역사 인물 마케팅 차원으로 진행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충북 옥천=박혜리 비즈한국 기자 ssssch333@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