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채권자비상대책위가 보낸 내용증명에 이혜경 전 부회장이 친필로 답변한 확인서. 사진=동양그룹채권자비상대책위 제공
동양그룹채권자비상대책위원회(동양비대위)가 보낸 11월 2일자 내용증명에 대해 이 전 부회장은 11월 9일자 친필 확인서로 답변했다. 이를 보면 이양구 회장의 아이팩 차명 인수, 주식 실질 보유 여부에 대해 이 전 부회장은 “(부친이) 실질적으로 보유했었다”고 답했다. 당시 아이팩 지분을 박 아무개 씨 등이 차명으로 보유한 사실 여부에 대해선 “박 씨 차명으로 보유했고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양구 회장 타계 후 상속인들이 실명 전환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당시 실명전환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2008년부터 2012년 사이 차명 보유 지분이 Prime Link International Investment(PLI)와 담 회장에게 전부 이전됐는데 상속인으로서 동의 여부와 관련해 “(담 회장이) 본인에게 물어본 적도 없고 동의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이런 이 전 부회장 입장은 동양 기업어음(CP) 사기행각 등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남편 현재현 전 동양 회장과 그를 공범으로 고소할 경우를 대비해 은닉재산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현 전 회장은 징역 7년형을 확정 받아 수감 중이다. 동양그룹 CP 사기행각으로 인한 피해규모는 1조 7000억 원, 피해자 수는 4만여 명에 달한다.
시민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약탈반대)과 동양비대위에 따르면 이양구 회장은 1983년 부도 상태인 옛 신영화성공업을 차명 인수했고 그 후 신농, 아이팩으로 사명을 바꿨다. 인수 당시 포장지 제조업은 중소기업고유업종이어서 이 회장 이름으로 주식을 보유할 수 없었던 탓이다.
1989년 이 회장 사후 부인 이관희 오리온재단 명예이사장, 이혜경 전 부회장, 이화경 부회장이 박 씨 차명 아이팩 지분 47.67%를 상속했고 담 회장이 관리를 맡았다. 이화경 부회장 몫을 제외한 아이팩 주식가치는 1000억 원 이상으로 전해졌다. 중소기업고유업종 해제 후 상속자들은 아이팩 주식을 20년 넘게 실명전환하지 않았는데 상속세 납부를 회피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담 회장은 박 씨 소유 차명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한푼도 치르지 않았다.
약탈반대 운영위원 이민석 변호사는 “아이팩은 오리온에 합병되기 전까지 위장계열사로서 매해 300억 원대 ‘일감 몰아주기’ 특혜를 누렸다”며 “담 회장이 아이팩 최대주주가 된 2011년과 2013년 평균 2000%대 배당을 통해 담 회장에게 350억 원의 배당금을 안겼다. 2014년 오리온은 담 회장이 보유하던 아이팩 지분을 145억 원에 취득하는 등 총수 배만 불렸다”라고 꼬집었다. 약탈반대와 동양비대위는 11월 29일 담 회장과 아들 담서원 씨를 횡령과 조세포탈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위),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왼쪽), 부인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 부부. 사진=비즈한국DB
이에 대한 오리온의 해명이 매일 달라져 의혹을 증폭시킨다. 오리온 홍보실은 11월 28일 ‘비즈한국’에 이 부회장과 담 회장 부부가 제과와 아이팩 차명지분을 이양구 선대회장으로부터 상속받았다고 했다. 하루 뒤인 29일엔 담 회장이 1989년 거래처인 삼보에이팩이란 회사를 통해 아이팩을 인수했고 이양구 회장이 아이팩을 차명 소유했거나 상속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 2011년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담 회장은 아이팩이 이양구 회장 자녀에게 상속된 사실을 시인했다. 당시 그는 “이양구 회장께서 (생전) 아이팩의 전신인 신영화성공업을 인수한 후 오리온에 재직하던 박 씨에게 대표이사를 맡기고 박 씨를 비롯한 임직원들에게 명의신탁하는 형식으로 차명보유했다”며 “이 회장 사후 딸 이혜경, 이화경에게 상속됐고 2001년 옛 동양그룹이 동양과 오리온으로 계열분리하면서 제과에 속하는 아이팩은 오리온 측에 귀속했다”고 밝혔다.
그 해 담 회장은 아이팩 등 위장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과 회사 돈 300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받았으나 2012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석방됐다.
오리온 관계자는 “해명이 바뀐 이유는 워낙 오래된 일이라 그룹 내부에서 혼선을 빚었기 때문”이라며 “1989년쯤 담 회장이 당사와 거래처인 삼보에이팩이라는 회사를 통해 자회사나 사업부문으로 아는 아이팩을 인수했다”고 했다. 하지만 삼보에이팩과 아이팩, 두 회사의 회사소개와 연혁을 보면 모자회사 관계가 아닌 별개 회사로 보인다. 삼보에이팩은 1942년 설립된 오리온 주요 포장지 납품 거래처다.
오리온 관계자는 “2001년 옛 동양그룹이 동양과 오리온으로 분리되면서 아이팩과 관련해 총수일가 간 논의가 있었다고 본다”며 “이 전 부회장이 아이팩 존재를 처음부터 알았고 상속자라면 수차례 배당을 실시했는데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전 부회장도 아이팩을 담 회장 소유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성 동양비대위 수석대표는 “이 전 부회장 상속재산 아이팩은 동양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오리온 입장대로 선대 회장의 아이팩과 관련해 명확한 유언장을 가지고 있거나 상속자들이 도장을 찍은 서류가 없다면 발뺌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민석 변호사도 “담 회장이 2012년 아이팩에 지분을 실명 전환할 때 상속인인 이 전 부회장에게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할 사안이었지만 안했다”며 “이 전 부회장 입장에선 상속재산을 침해당했다. 소송을 통해 아이팩 차명지분 가치를 돌려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익창 비즈한국 기자 sanbada@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