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평론가는 “집권의 환경이 나아진 것은 박근혜 정권 비리에서 시작된 반사이익일 뿐이다. 이번 사태는 보수의 변혁과 동시에 야당에 대해서도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야당 지도자들이 깨달아야 한다”면서 “야당의 선택은 이제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민 평론가는 책을 통해 야당 36년사 중 본인이 겪었던 결정적 장면 3개를 꼽고 있다. 우선 첫 번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덕동 로터리 10분 정차’다. 대선 전날이던 2002년 12월 18일 당시 정몽준 후보는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 약속을 파기한다. 캠프의 많은 선대위원들이 노 후보에게 빨리 정 후보 집으로 가서 설득하라고 채근했고, 노 후보도 마지못해 정 후보 자택으로 향했다.
당시 정대철 선대위원장을 보좌하고 있던 민 평론가는 정 후보가 자택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노 후보에게 전했다. 이에 노 후보가 타고 있던 차량은 10분간 공덕동 로터리 부근에서 정차하게 된다. 노 후보가 도착했을 때 정 후보는 5분 앞서 집으로 들어간 상태였고,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 장면은 TV를 통해 그대로 보도됐고, 노 후보에 대한 동정론이 거세게 일며 승리의 요인이 됐다.
민 평론가는 “만약 노 후보가 공덕동에서 10분을 지체하지 않았다면 자택 앞에서 둘은 불편한 장면을 연출했을 것이고, 노 후보 또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쳐졌을 것이다. 아슬아슬한 10분 공덕동 지체가 대선결과를 돌려놓는 데 하나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민 평론가가 꼽은 두 번째 장면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미관이다. 참여 정부 인수위 시절 정대철 전 의원은 미국 특사 방문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과 혜화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런데 정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미국 관련 언급에 대해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다음은 정 전 의원이 민 평론가에게 털어놓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게 나라입니까. 1994년 미국은 북한 영변 핵시설을 폭격한다는 계획을 우리나라한테는 일체 얘기나 통보도 없이 몰래 진행했습니다. 자주 주권국가인 우리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 이게 나라입니까. 이렇게 무시당하고 살아야 합니까.”
민 평론가가 꼽은 마지막 장면은 고건 전 총리의 대권 도전 중도하차다. 민 평론가는 고건 캠프 공보팀장을 맡은 바 있다. 민 평론가는 고 전 총리가 대선 불출마를 하기 일주일 전 불출마 의사를 감지했다. 어느 날 고 전 총리가 갑자기 술을 마시자고 했고, 그 자리에서 고 전 총리는 시종 건강이 좋지 않은 말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이에 민 평론가는 고 전 총리가 대선 출마 뜻을 접은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확인해 보니 고 전 총리는 그보다 앞서 DJ를 예방하고 난 뒤 핵심 측근들에게 직접 불출마를 밝혔었다고 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