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19 신고 전화 연결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잇따라 발생했다.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부족한 교환원 숫자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1월 30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일부 전화가 자동응답으로 넘어가 상인이 불안에 떠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결과 대구 지역의 경우 지역 인구 248만여 명을 상시근무인원 기준 119 수보대(교환원)는 단 5명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11월 26일 오후 1시 50분쯤 전남 목포의 한 결혼식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결혼식장에서 기념 사진 촬영이 이뤄지고 있는데 갑자기 신부가 쓰러진 것. 신랑 측 가족 강 아무개 씨(26)는 다급한 마음에 119에 전화를 걸었다. 다섯 번 가까이 119에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 연결 자체가 잘 되지 않았다. 전화는 자동응답으로 넘어가자마자 그냥 끊겼다. 마냥 119에 의지할 수 없었던 강 씨와 측근 등은 신부를 뉘이고 의상은 느슨하게 하는 등 응급조치를 취했다. 다행히 신부가 정신을 차렸고 사진 촬영을 중단한 채 서둘러 결혼식을 마쳤다.
강 씨는 분개한 마음에 얼마 뒤 119에 전화를 걸어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따졌다. 전남 119 교환원은 “전남 시군 22곳 전체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10명이 받고 있어서 연결 안 될 때가 많다”고 답했다. 강 씨는 “그럼 이렇게 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은 뒤 돌아오는 답변을 듣고 질려버렸다. 교환원은 “될 때까지 시도하세요”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지난 10월 6일 전북 전주시 중화산동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6일 새벽쯤 A 씨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자신의 아이가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바로 119에 전화를 걸었지만 수차례 시도해도 연결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A 씨는 남편을 깨워 아이를 택시에 태우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아이의 목숨을 간신히 살릴 수 있었으나 A 씨는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악몽의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전국 119 신고전화 교환원 근무인력 현황에 따르면 상시근무자 기준, 교환원 1인 당 평균 시민 16만 8816명의 신고전화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와 세종 등 특별 자치 행정구역을 제외하면 교환원 1인이 담당해야 할 시민은 18만 1707명에 이른다.
미국 교통부(Department of Transportation)가 지난해 밝힌 통계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긴급 신고전화 교환원 근무인력만 총 29만 2570명에 육박한다. 인구 3억 2399만 명으로 계산하면 1인 당 1107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물론 미국의 경우 911로 경찰과 소방을 합한 숫자이긴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 소방과 경찰의 긴급신고 교환원 숫자는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단순 계산으로도 경찰과 소방 합쳐 교환원 1인 당 담당해야 할 시민은 미국의 80배가 넘는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음성 신고전화에 국한된 신고 체계를 넘어 차세대 긴급신고 체계 구축에 나섰다. 현재 긴급 신고는 음성 통화에 의존하지만 차세대 긴급신고 체계는 음성, 문자, 동영상 등 통신 장치로 전송 가능한 모든 정보를 이용해 신고가 접수될 수 있도록 개선될 예정이다. 인터넷 기반으로 위치 파악이 가능한 체계가 완비될 경우 특히 전화가 몰리는 상황이 발생해도 각 사고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차량 역시 사고 발생 알림 기능을 각 제조사와 보험사 등 긴급신고 서비스와 연계해 빠른 대처가 가능토록 계획 중에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수차례 대형 사고를 겪고도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특히 2003년 지하철 참사와 2006년 서문시장 화재 등을 주기적으로 큰 사고를 자주 겪었던 대구조차 현재 119 종합상황실 교환원 상시 근무 인원은 고작 5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1인 당 49만 명을 담당해야 하는데 이는 전국 평균의 3배에 육박한다. 이런 인력으로는 대형 화재나 인명 피해를 막기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11월 30일 새벽 대구 서문시장에서 발생한 화재에서도 “119 전화는 계속 먹통이었다”는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대형 화재로 폐허로 변한 대구 서문시장. “119 전화는 불통이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영남일보> 보도에 따르면 30일 새벽 대구 서문시장에서 발생한 화재를 처음 목격한 사람은 경비업체 직원 A 씨였다. A 씨는 “오전 2시5분쯤 동료가 순찰을 돌고 경비실로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는데 1~2분 뒤 갑자기 도난·화재 경보 알림벨이 울렸다”며 “곧장 CCTV 모니터를 보니 4지구 쪽에 환한 불빛이 보여 화재가 났다고 판단, 동료가 먼저 소화기를 들고 현장으로 나갔고 난 119에 전화를 세 번 했는데 통화가 안 돼 소화기 2개를 들고 곧장 동료를 따라갔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1일 즉각 설명자료를 내고 “최초 신고 전화는 모두 정상 접수됐다”며 ”다만 접수 이후 4지구 상가번영회가 건 전화 2통은 모든 회선이 통화 중으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대구시가 ”화재 발생을 인지하고 긴급히 출동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지만 이는 대형 사고에 적절한 발언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서문시장 화재처럼 규모가 큰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정확한 사고 지역과 부상자 위치 등 제보 전화가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대구 시민 상당수는 하루 속히 긴급 신고 교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 시민 B 씨는 ”이번 화재가 새벽에 일어나서 다행이지 만약 방문객이 많은 낮에 발생했다면 정말 난리가 났을 것“이라며 ”어느 점포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갇혔는지 파악해야 빨리 구하는데 5명으로 전화 응대가 됐겠나. 최소한 전국 평균 수준까지는 교환원 인원을 확충해야 하는 게 맞다“고 했다.
긴급 신고전화 인력이 부족에 대해 국민안전처는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정해진 회선이 있는데 지진이나 태풍이 오면 문의 전화가 폭주해 이따금 연결이 지연될 때가 있다. 지난 지진 때도 수천 건이 몰리다 보니 자동응답으로 전환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전화 연결이 계속 되지 않거나 교환원이 받지 않는 등 그런 사례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결혼식 도중 신부가 쓰러졌던 지난달 26일 전남 목포와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 응급 상황이 벌어졌던 지난 10월 6일 전북 전주에서는 전화 폭주가 발생할 별다른 상황이 없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