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승부조작과 불법 스포츠도박 혐의를 받았던 전창진 전 안양KGC 감독은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 난 이후에도 자신의 생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말한다. 무혐의 처분만 받으면 그 즉시 농구 코트로 복귀할 거란 기대는 아예 하지도 않았지만 너무 주위가 조용하다 보니 이러다 영원히 잊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세상은 그에 대한 ‘의혹’만으로도 뜨겁게 반응했었다. 그러다 ‘혐의 없음’이란 결과가 나오자 언론의 관심은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그 식어버린 관심에 오히려 섭섭한 감정이 생길 정도라고 한다.
특별한 증거 없이 정보와 의혹만으로 무리하게 수사를 강행했던 경찰과 경찰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을 1년 2개월 동안 들여다보기만 했던 검찰. 양측 모두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은 없는 걸까.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하는 전창진 전 감독. 모든 혐의를 벗었지만 좀처럼 그늘진 표정을 풀지 않았다.
지난 11월 30일,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오랜만에 기자와 마주 앉은 전창진 전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모든 혐의를 벗고 홀가분한 상태가 됐을 법도 한데 그는 좀처럼 그늘진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검찰은 무혐의로 발표하고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전 전 감독의 인생은 1년 2개월 전으로 돌아가지도,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이다.
“검찰에서 무혐의라고 발표하면 뭐 하나. 난 이미 모든 걸 다 잃었는데. 무혐의라고 해서 나한테 다시 농구 감독 자리를, 명예를 원상 복귀시켜주는 건 아니지 않나. 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떳떳했다. 어떤 질문에도 매번 똑같은, 그리고 정확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은 어떻게 했나. 기자들은 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날 범죄자 취급했다. 내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하소연해도 의례적인 변명으로 치부했다. 그로 인해 난 직장을 나와야 했고, 농구 코트를 떠나야만 했다. 농구인이 코트에 설 수 없는 건 육체적인 체벌보다 더 심한 벌이다. 농구가 보고 싶어 경기장을 찾아도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을 찾아 앉는다. 죄 지은 것도 없이 어느 순간부터 난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한때 농구 코트의 명장으로 꼽히던 전 전 감독은 경찰과 검찰의 허무한 강공 드라이브에 인생 전체를 헌납해야만 했다.
코트에서 농구 선수들을 지도해야 할 감독이 경찰의 피의사실 공표 이후 농구장 대신 경찰서를 드나들었고, 제보에만 입각한 수사가 지속되다보니 구속 영장을 청구하는 데만 2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더욱이 경찰의 구속 영장 청구는 검찰에 의해 기각되고 말았다. 경찰은 결국 전 전 감독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이런 저런 핑계로 수사를 미루다 1년 2개월 만에 무혐의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전 전 감독이 경찰, 검찰보다 더 배신감을 느끼는 조직이 있다. 바로 농구인을 보호하고 대변해줘야 할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이다. 전 전 감독은 작년 8월 5일 안양 KGC 감독직을 사퇴한 이후 KBL의 재정위원회로부터 ‘무기한 KBL 등록 자격 불허’라는 조치를 받았다. 사실상의 퇴출 명령이었다. KBL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창진 전 감독은 경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며 농구계의 명예실추와 막대한 불이익을 초래한 점과 KBL 재임기간 중 다수의 불성실한 경기 운영을 포함해 KBL 규칙 위반 및 질서 문란 행위로 개인 최다 벌금을 납부한 점,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사회적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주변 관리 및 행위(불법 스포츠도박 연루자와 친분 및 불법 차명 핸드폰 사용) 등으로 향후 KBL 구성원으로 자격이 부적격하다.’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나를 가장 믿고 감싸줘야 할 KBL이 경찰의 수사 발표가 나기도 전에 먼저 날 정리했다. 이건 말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KBL 재임기간 중 다수의 불성실한 경기 운영을 포함해 KBL 규칙 위반 및 질서 문란 행위로 개인 최다 벌금을 납부한 게 영구제명 사유가 되나. 경기 중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바람에 재정위원회에 회부돼 벌금까지 냈던 이력이, 또 개인 최다 벌금을 납부했다고 해서 퇴출시키는 게 맞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을 잘못 사귀는 바람에 이런 일에 연루됐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나머지의 일들을 모두 내 책임으로 몰아가는 건 억울하다. 거기에 KBL이 앞장섰다.”
전창진 전 감독은 새삼 사회의 냉정함,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한때 코트에서 동료, 선후배로 지냈던 농구인들의 외면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도 받았다.
“날 찾아와서 따뜻한 설렁탕 한 그릇 사준 사람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내게 ‘넌 그럴 사람이 아니야. 걱정마’라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지도 않았다. 지도자 생활하면서 나름 베풀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손을 내밀 때는 아무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은 것이다. 정말 서글펐다. 변호사 사무실을 오가며 혼자 국밥집에 들어가 식사할 때마다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 매일 숙소 또는 특급 호텔에서 지내고, 훌륭한 시설의 식당에서 잘 차려진 밥상만 받던 내가 감독 타이틀을 떼고 세상 속으로 내려오니 내 존재 자체가 보잘 것이 없었다.”
전 전 감독은 코트 위에서 카리스마로 무장된 고집스런 지도 방식을 보이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내보인 탓에 그를 따르는 농구인들이 꽤 많았다. 선수들도 전 전 감독과 한 번 인연을 맺으면 그 인연을 거두지 못하고 팀을 옮기거나 변한 환경 속에서도 전 전 감독을 끝까지 챙겼다. 그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감이 대단했던 전 전 감독으로선 하루 아침에 변한 농구인들의 분위기에 정신줄을 놓을 뻔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날 믿고 따르는 선수들이 있었다. 그중 선수 A(행여 선수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실명을 밝히지 못한다고 말하는 전 전 감독)는 내가 죽을 때까지 다 갚아도 A가 보여준 믿음과 도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A는 나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 부분이 정말 고마웠다. 후배 B도 항상 그 자리에서 날 지지해줬다. 경제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는데 차차 갚아 나가야 한다. 한때는 경찰, 검찰, 언론들과 목숨을 내놓고 싸우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게 부질없는 생각들이었다. 싸워서 내가 되찾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KBL 김영기 총재는 전창진 전 감독의 영구 제명과 관련해서 “전창진 감독을 선임한 구단이 KBL에 정식 감독으로 등록할 경우 재정위원회를 열어 재논의할 수 있지만 아직 아무런 재심 요청이 없는 상황이라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전 전 감독은 단호한 목소리로 재심 청구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재심 청구? 전혀 하고 싶지 않다. 지금 이런 상황의 날 껴안을 구단이 어디 있겠나. 어려운 일이다. 물론 농구 코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 전 감독은 자신이 주변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결국 그런 부분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후회스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관리, 돈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 그 영향으로 한때 나쁜 생각도 했었다. 차마 행동으론 옮기진 못했지만 말이다. 가장이 무너지면서 가족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내가 농구 코트로 돌아가지 못한 것보다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 부분이 너무 괴로웠다. 그러나 전창진이 이렇게 무너지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내 발로 다시 일어설 것이다.”
항상 감독 전창진으로 만났고, 인터뷰를 했었다. 그러나 이젠 그를 ‘전 전 감독’이라고 표현한다. 그가 ‘전 감독’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