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진출 계획을 묻는 질문으로 인터뷰 포문을 열었다. 전원책 변호사는 서너 번 정도 정계 진출 제의를 받은 사실을 털어놓으며 모두 일언지하 거절했다고 밝혔다. 전 변호사는 “내가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이 돼봐야 정치 집단 속 한 사람이 될 뿐”이라고 말했다.
전원책 변호사는 정계 진출 거절 이유로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과두정’의 한국 정치 형태를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 정당은 정당 안에서조차 민주주의가 없다. 한두 사람 중심의 개인 정당일 뿐이며 늘 정권과 함께 소멸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해서 새누리당이 무너지고 있고 열린우리당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가 시들해졌을 때 와해됐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도 마찬가지”라며 “이런 상태에서 멀쩡한 사람이 정치권으로 들어가면 인형처럼 있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 굳이 정치에 뛰어들기 싫다”고 일렀다.
이어 전 변호사는 “정당 안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이념과 정책으로 뭉쳐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늘 특정인에게 집중했다. 이념과 정책이 중심으로 자리잡아야 한두 명에게 좌지우지되지 않는 ‘정당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며 “이념과 정책으로 정당이 구성됐다면 특정인의 잘못으로 정당이 무너지거나 와해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권과 대선 주자 사이에서 이번 박근혜 대통령 사태를 가지고 ‘민주주의 틀을 깼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모두 어불성설”이라며 “본인들 스스로가 정당 안에서조차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정치판”이라고 전했다.
사진=전원책 변호사 제공
전원책 변호사는 보수당 자체가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새로운 보수정당의 등장 가능성조차 낮게 내다봤다. 그는 “보수당이라고 불리는 새누리당이 위기에 처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 지”라는 기자의 질문을 중간에 자르며 “새누리당은 보수당이 아니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꿀 때 김종인 의원이 ‘우리당에서 이제 보수라는 단어를 빼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뒤 ‘보수를 혁신하겠습니다’라고 자꾸 말했는데 표가 필요해서 그렇게 떠들었던 것일 뿐”이라고 했다.
“보수를 혁신하겠다며 내건 정책이란 게 보편적 복지였다. 이 자체가 난센스”라는 전 변호사는 “새누리당을 해체한 뒤 당명 바꾼다고 새로운 보수정당이 되는 게 아니다. 새로운 보수정당을 건설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정계 개편은 필수”라며 “정책과 강령을 전부 손봐 문자 그대로 보수정당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전원책 변호사 기준에서 한국 정치권에는 보수정당이 없었다. 그는 “한국적 보수와 한국적 진보를 따로 구분하자던데 그래도 현재 보수정당은 없다”며 “옛날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신민당 같은 정당을 보수당이라고 볼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이철승 전 의원 등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을 때의 신민당을 보수정당 야당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전 변호사는 신민당을 뿌리로 둔다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한민당에서 시작해 신민당을 거쳤다’고 하는데 코미디 같은 소리다. 그 당시 신민당 강령을 보면 지금 더불어민주당 전체가 기절할 것”이라고 일렀다.
오히려 전 변호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민주공화당을 진보정당으로 봤다. 그는 “새마을운동과 국민교육헌장, 그린 벨트, 의료보험 도입 등 보면 모두 진보적인 정책이다. 게다가 경제개발 5년 계획은 관치 그 자체여서 진보정당의 정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민주공화당을 보수정당이라고들 하는데 그때는 야당이 보수정당이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보수정당에 걸맞은 인물은 현재 아무도 없다는 전 변호사는 “지금 논의되는 대통령 선거 주자 역시 모두 대통령 선거에 나오기 힘들며 나와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대선 주자 모두가 너무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다. 게다가 구체적인 정책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전 변호사는 지도자의 요건으로 지식과 정직, 용기, 결단력, 용인술을 꼽으며 “차기 지도자는 반드시 이 덕목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전 변호사는 “일단 무식하면 안 된다. 지식이 가장 먼저다. 지식이 있어야 지혜가 생긴다”며 “외교로 예를 들어 보자. 영어를 잘한다고 외교를 잘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과 놓는 패가 어떤 건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세상을 꾸리려면 어떤 패를 골라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게 외교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투명해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정직이 바로 2번째 덕목이며 용기와 결단력 역시 중요한 덕목”이라는 동시에 “확실한 자기 내공으로 가치판단을 할 때 결단력이 생긴다”고 전했다.
“정치가 잘 되고 고급스러우려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미래 세대를 배려하는 판단이 필수”라고 전원책 변호사는 밝혔다. 그는 “내가 대선 주자 모두를 폄훼하는 이유는 대선 주자 가운데 다음 세대를 고민하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대선 이기는 데에만 급급하다“며 ”정말 필요한 건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정책을 내고 고민하는 정치인이다. 정책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보수든 진보든 가장 중요한 건 정책적 방향이 다음 세대를 향하느냐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인터뷰를 마쳤다.
전원책 변호사의 바쁜 일정 탓에 인터뷰는 30분 정도만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대화가 계속 꼬리를 물자 그는 인터뷰 시간을 계속 연장해 줬다. 인터뷰 도중 걸려온 아내의 전화를 “좀 늦을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넘기면서까지 전 변호사는 한국 정치를 향한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그가 남긴 말은 보통 60세를 넘긴 ‘꼰대’에게 듣기 힘든 말이었다. “젊은이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근처 지나다 방에 불 켜있거든 언제나 소주 한 잔 하러 올라오세요.”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