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은 지난 2013년 ‘유네스코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될 만큼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음식문화다. 뉴스뱅크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오른 김장의 공식 명칭은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다. 김치는 한국 고유의 향신료와 해산물로 양념하여 발효한 한국적 방식의 채소 저장 식품을 일컫는다. 채소를 생산하거나 보관하기 어려운 겨울에도 채소를 섭취할 수 있도록 소금물이나 장에 절여 저장한 ‘생존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라 할 수 있다.
학계에서는 한겨울을 나기 위해 채소를 소금물이나 장에 보관하는 풍습이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중엽의 학자 이규보(1168~1241)가 지은 시문집 <동국이상국집>에는 우리 문헌상 최초로 김치와 김장이 등장한다. ‘가포육영’이라는 글 중에 나오는 “무를 장에 담그면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여 겨울철에 대비한다”는 구절이 바로 그것. 여기서 장에 담근 무는 장아찌, 소금에 절인 무는 동치미를 지칭하는 것이다. 불교 국가로서 육식이 억제되던 고려 시대에는 채소를 이용한 음식 문화가 발달되었는데, 김치 역시 이런 영향으로 식생활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채소를 재배해 궁중에 공급하는 ‘침장고’(훗날 사포서)를 두었으며, 이곳에서 김장도 담당했다고 한다. ‘침장’(沈藏)이란 채소류를 소금물, 장 등에 담가 저장한다는 의미로, 김장의 어원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궁중의 제사음식으로 다양한 김치가 상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1419년 12월 7일)에는 산릉(국장하기 이전의 왕릉)의 개토 및 참토와 관련한 제사 의식을 담은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에 제사상에 올릴 4가지 종류의 김치가 등장한다. 달래김치, 무김치, 미나리김치, 죽순김치가 그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세조실록(1457년 7월 8일)에는 임금이 재상들에게 오이김치를 내려주는 장면도 나온다. 이런 점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는 다양한 채소로 담근 김치가 존재했으며,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치는 주로 채소를 소금이나 식초, 향신료와 장류로 담가 만들었다. 하지만, 조선 중엽 고추가 국내로 들어오면서 김치의 역사도 궤를 달리하게 된다. 고추를 사용하면서 김치에 들어가는 소금의 양이 크게 줄어들고, 생선류의 비린내를 줄여주는 고추의 매운맛 덕분에 젓갈을 활용한 김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특히 18세기 중엽에는 중국에서 통이 크고 속이 꽉 찬 ‘결구형 배추’가 유입돼 재배되면서 김치의 주재료가 오이나 무에서 배추로 바뀌게 된다. 배추 속에 여러 가지 양념과 채소, 해산물 등을 넣어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라고 할 수 있다.
김치는 한국인의 대표적인 ‘슬로푸드’다. 봄철이면 각 가정에서 새우·멸치 등의 해산물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고, 여름에는 천일염을 구입해 미리 쓴맛이 빠지도록 했다. 또한 늦여름에는 빨간 고추를 말려서 가루로 빻고, 늦가을에 날씨를 고려해 배추를 절이고 김장을 했다. 이처럼 긴 기간 동안 자연의 절기와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지는 독창적인 음식이 또 있을까.
김장은 한국인의 자연 환경에 대한 이해를 통합한 대표적인 음식문화라고 할 수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환경과 육지, 해안, 섬 등 지역 생태계를 반영해 지역마다 김치 담그는 법이 개발되었고, 한국인 특유의 ‘같이 담그고 함께 나누는’ 김장문화를 통해 이를 공유하고 계승,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특히 대다수의 한국인이 김장문화의 ‘예능보유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김치를 담그는 것’은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김장 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오르게 된 것도 이런 점들이 높이 평가됐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김치 사랑은 각별하지만, 김장 문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의 관심이 더욱 깊어질 필요가 있다. 시대의 변화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김장 문화 역시 큰 변화를 맞고 있는 까닭이다.
핵가족화와 이웃 간 단절 현상으로 가족이나 친지, 이웃이 함께 모여 김치를 담그고 나누어 먹던 전통적인 김장의 모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네 향수를 자극하던 김장독의 자리를 김치냉장고가 대신한 지도 이미 오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김장 적정 시기도 점차 늦춰지고 있다. 힘든 김장 대신 김치 제품을 선호하는 손길도 나날이 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김장 문화는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하게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김장 문화에 깃든 ‘공유’와 ‘나눔’의 지혜만큼은 우리가 온전히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료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