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열린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는 ‘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미용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 규명을 위한 질의가 이어졌다. 이선우 청와대 의무실장은 미용 목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주사를 시술하지 않았다고 언급하다 밤 11시경 “3종의 미용주사가 박 대통령에게 처방된 것이 맞느냐”는 계속된 추궁에 “처방에 포함돼 있는 부분이 맞다”고 시인했다. 다만 그는 당초 박 대통령에게 미용주사를 시술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위증이라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 “(태반·백옥·감초주사가) 미용 목적에만 사용되지 않는다. 미용 목적으로 쓰인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애초 박 대통령에게 미용주사를 시술하지 않았다던 청와대 측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박 대통령 약물 의혹’ 논란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해당 의혹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이 미용시술과 함께 프로포폴과 같은 향정품을 시술받았으며, 때문에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했음에도 7시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 골자다. 이와 관련해 국정조사에서 ‘보안손님’으로 청와대를 제약 없이 출입한 사실이 밝혀진 최순실 씨가 ‘의료 비선’과 동행해 시술을 진행했다는 의혹은 더욱 짙어질 전망이다.
지난 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기관보고에서 이선우 청와대 의무실장이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소하 정의당 의원실이 청와대 경호실로부터 입수한 마약류 재산대장에 따르면 청와대는 기존에 직접 구매한 의약품 목록에서 확인된 자낙스, 할시온, 스틸녹스 향정품 외에도 △아티반 △리제(클로티아제팜) △발륨(디아제팜) △미다졸람 △디에타민 등 6종의 향정품과 △코데인 △IR코돈 △모르핀 △옥시코돈·날록손 복합제 △페치딘 △펜타닐 등 6종의 의료용 마약을 보유하고 사용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리제, IR코돈, 옥시코돈·날록손 복합제 3종의 경우 박근혜 정부 들어 새롭게 보유하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2013년 3월 12일 의약품 공급처가 아닌 세브란스 병원으로부터 IR코돈 10정을 처방받은 뒤 4월 4일 관내에서 사용했으며, 옥시코돈·날록손 복합제는 2015년 10월 12일 56정을 처음 구매해 현재 28정이 남아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청와대가 새롭게 보유한 약품 3종) 리제와 IR코돈, 옥시코돈 등은 의약용 마약류 중에서도 ‘마약’으로 분류된다. 옥시코돈은 진통효과가 굉장히 강한 마약이다. 보통 암환자들이 끝에 가서 강한 통증으로 쇼크를 입을 때 가장 마지막에 사용된다. 이렇게 강한 약품이 28정이나 사용된 것은 굉장히 많이 사용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마약을 많이 쓰게 되면 중독에 걸리게 되는데, 이때 마약 해독제로 쓰이는 약품이 날록손이다. 마약중독에 걸렸을 때 마약 중독자들이 이를 벗어나기 위해 사용하거나, 안면신경마비 등에 주로 쓴다. 옥시코돈은 마약제고 날록손은 마약 해독제다. 옥시코돈의 경우 주사제와 정제 두 가지가 있으나, 날록손의 경우 경구로 사용되기보다는 주로 주사제(정맥 주사)로만 쓰인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마약류 재산대장에 따르면 가장 많은 양이 사용된 약품은 향정품인 스틸녹스(졸피뎀)다. 청와대는 기존 328정에 960정을 더 수령해 1115정을 불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많은 양을 불출한 약품은 마약류인 코데인이다. 청와대는 기존 재고 130정에 추가로 500정을 수령하고 563정을 불출했다. 세 번째로 많은 양을 불출한 자낙스는 향정품으로, 210정 재고에 800정을 추가 수령, 537정을 불출했다.
청와대가 지난 3년간 1115정을 불출한 스틸녹스(졸피뎀)는 과거 방송인 에이미 씨가 과다 복용한 혐의로 처벌받으며 유명세를 탄 약품으로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린다. 작용발현이 빨라 취침 바로 직전에 경구 투여해야 하며 일어나 다시 활동하기 전까지 7~8시간의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을 경우에만 복용하도록 권장되는 약품이다.
청와대가 마약류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양을 불출한 것으로 알려진 향정신성약품 자낙스는 ‘국정농단’ 파문의 핵심인물 최순실 씨가 차움의원에서 처방받았던 약물이다. 공황장애나 불안장애의 치료에 사용되며, 장기간 투여 시 남용 및 의존성 위험이 증가한다. ‘비선 진료’ 의혹을 받는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는 자낙스가 평소 최순실 씨가 복용하던 약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자문의는 최 씨의 단골병원이었던 차움병원에서 근무할 당시 최 씨 자매 담당의였으며, 박 대통령 취임 전후 최 씨 자매 이름으로 주사제를 대리 처방한 바 있다.
최근 청와대의 약품구매 목록에 비아그라 등이 포함돼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청와대가 향정신의약품과 마약류 등을 대량 구매해 지속 처방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대한약사회 측은 청와대가 특히 많은 양을 사용한 마약류 3종과 관련해 “해당 약품들은 모두 상습적으로 복용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이중 코데인은 특히 심각한 마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틸녹스는 불면증에 사용하는 약이다. 습관성과 의존성이 있어 약을 먹지 않으면 잠자기가 어려워지고, 스스로 깨어나기 점점 힘들어진다. 프로포폴과는 다르나 의식이 없어지고 몽롱해지며, 기분이 좋아지는 점은 같다. 자낙스는 불안증에 사용하는 약이며, 이 약 또한 의존성을 일으킨다. 남용할 경우 환각에 빠질 수 있다. 코데인은 강력한 마약 진통제로, 습관성이 금방 나타나고 남용 시 환각에 빠질 수 있고 호흡곤란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청와대는 기존에 제출한 의약품 구매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의료용 마약이 등장함에 따라 ‘약물 논란’에 시달리고 있으나 끝내 마약류 및 향정품 관리대장 등의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다만 각종 의혹에 대해 “양식과 절차에 따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마약류 의약품을 누가, 어디에 사용했는지 떳떳하게 밝히지 못할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료를 제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청와대의 자료 미제출은 7시간의 행적과 이들 마약류의 연관성에 대한 의혹만 증폭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