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역점 기조인 ‘창조경제’ 관련 사업 역시 대기업 모금 창구로 전락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제공=청와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는 2014년 3월 7일 제1차 창조경제민관협의회 회의를 개최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 구축·운영 방안’을 의결했다. 당시 미래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창조경제 관련 사업은 ‘기존 자원의 연계를 통한 지역 경제 혁신’ ‘지역 특화 전략 산업 분야 기업 육성’ ‘중소·중견기업 성장 통합 지원 체계구축 운영’으로 표현됐다. 애초 정부의 사업 구상 주요 대상은 ‘지역’과 ‘중소기업’이었다는 얘기다.
2014년 3월 26일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전국 처음으로 개소식을 개최했는데 센터장은 카이스트 교수가 임명됐고 참석자는 국무총리, 미래부 장관과 중소기업 대표들이었다. 같은 해 4월 28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출범할 때도 센터장은 대구지역 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이 맡았다. 참석자는 미래부 장관, 대구 시장, 대구지역 창업 동아리 회원 등이었다.
그런데 2014년 6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발탁된 뒤 돌연 사업 중심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같은 해 9월 2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전국 17개 시도별로 주요 대기업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1대 1로 매칭시켜 전담 지원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대통령은 특정 기업을 거론하며 지역별로 대기업을 할당했다. 박 대통령은 “삼성은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맡고 SKT는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전담해 지원한다”는 등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광주 북구갑)은 “정권 초부터 2014년 8월까지 창조경제에 대기업은 없었는데 2014년 9월 2일 대통령이 갑자기 대기업을 언급하면서 사실상 ‘최순실 게이트’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창조경제 사업 주무부처인 미래부조차 사전에 대기업 할당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미래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국무회의 자리에서 처음 들었다. 사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바뀌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또 지역과 중소벤처기업 중심의 창조경제 사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바뀌는 것은 2014년 미래부의 연두 업무계획에도 없던 내용이었다.
대통령 지시 후 미래부는 대기업 중심 창조경제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9월 4일 이석준 당시 미래부 제1차관(현재 국무조정실장, 장관급)은 전경련 회관에서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 대기업 관계자들과 함께 ‘대기업이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참여한 후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최병석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 부사장, 박광식 현대자동차 부사장, 이형희 당시 SK텔레콤 부문장 등 15명의 대기업 임원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9월 12일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지자체-대기업 합동 간담회’가 개최됐는데 최양희 미래부 장관과 이승철 부회장을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문화체육관광부·중소기업청 등 관계부처 관계자, 전경련 소속 15개 참여 기업 임원, 17개 시·도 부단체장 등이 참석했다.
2014년 9월 16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다시 개소식을 성대하게 개최했다. 이 자리엔 박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참석했고 센터장은 테크노파크 본부장에서 삼성전자 출신으로 변경됐다. 같은 해 10월 10일엔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 또한 다시 개소식을 열었고 이 자리에도 박 대통령과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이 참석했다. 1차 개소식과는 다른 풍경이다.
이에 대해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 관계자는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원래 카이스트 부설기관이었는데 대기업과 같이 연계하면서 센터가 별도의 비영리재단법인으로 확대·출범했다. 오히려 대기업과 되면서 지역에 있는 벤처 창업들은 대기업들의 마케팅, 해외 진출 노하우 등을 전수 받을 수 있고 자금 일부도 지원 받을 수도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안 전 수석은 경제수석에서 정책조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대통령 훈령을 바꾸면서까지 창조경제민관협의회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수석은 지난 5월 승진을 했는데 다음 달인 6월 21일 대통령령 제27230호 창조경제 민관협의회 등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제18조(운영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가 개정됐다. 이 규정엔 ‘정책조정을 보좌하는 수석비서관이 새롭게 위원에 추가됐다.
대기업들은 지난해 이후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총 7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기부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지금까지 삼성이 120억 원, 현대차가 116억 원, KT가 133억 원, 한화 62억 원, LG 76억 원을 기부했다.
김 의원은 “창조경제 민관협의회가 대기업 자금 모금 창구 역할을 한 정황은 2015년 7월 24일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대기업 회장과의 간담회 회의 직후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 부회장 등 대기업 회장과 독대를 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금과 같이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기부금에 대해서도 자금의 출처와 조성경위, 대가성 여부에 대해서도 특검에서 철저히 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