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고위직에 대한 이례적 조기 인사에 대해 이철성 경찰청장은 조직 안정화 차원을 주장했지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서둘러 보은인사를 단행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정부는 지난 11월 28일, 경찰 고위직 승진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14만 경찰 조직에서 경찰청장 아래 단 6자리인 치안정감, 그 아래 치안감 등이 대상이었다. 일주일 뒤인 지난 12월 5일 오전엔 경무관 승진‧전보가, 오후엔 ‘경찰의 꽃’이라 불리는 총경 등 하위직 간부 승진 인사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그동안 경찰 안팎에선 올해 연말 정기 인사가 늦어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경찰공무원법상 경찰청 소속 총경 이상 경찰공무원은 경찰청장이 추천하고 행정자치부 장관이 제청하면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최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국정 혼란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인사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특히 경찰 관련 업무는 청와대 정무수석실 관할이지만, 경찰 고위 간부 인사 검증은 민정수석실이 맡고 있어 앞서의 관측에 힘이 실렸다. 지난 10월 30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경질된 이후 최재경 민정수석이 부임했지만 최 수석마저 지난 11월 22일 사직서를 제출했던 터라 체계적인 인사검증이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이 “경찰 고위직 인사를 주물렀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경찰 안팎에선 “정기 인사가 이뤄지기엔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번 인사가 ‘깜짝 인사’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번 경찰 정기 인사는 앞서의 예상을 깬 데다, 오히려 통상보다 빠른 11월 말에 단행됐다. 경찰 고위직 인사(치안정감, 치안감)의 과거 사례를 보면 보통 12월 초 중순, 빠르면 12월초에 이뤄졌다. 지난 2015년 고위직 인사는 12월 5일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11월 22일 청와대에 고위직 인사 추천명단을 청와대에 보냈고, 이후 최종 인사 대상자에 대해 조율했다.
경무관과 총경 승진 인사 시기는 고위직 인사 시기보다 더 빨랐다. 경무관 승진인사는 예년보다 10여 일이 당겨졌다. 지난해 경무관 승진 내정은 12월 23일, 2014년엔 12월 17일에 이뤄졌다. 특히 그동안 치안정감·치안감 인사 이후 경무관, 총경 인사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했지만, 올해는 경무관 승진인사와 총경 승진인사가 동시에 이뤄졌다. 총경 승진 임용은 예년보다 한 달 빨라지면서 올해 1월에 이어 1년 새 두 번이나 인사를 하는 셈이 됐다.
이례적인 조기 인사에 대해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조직을 빨리 안정시키는 게 좋다”며 “평소보다 경찰의 일이 많고 어려운 시국인데 인사라도 빨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어수선한 정국과 경찰의 업무 부담을 고려해 안정화 차원에서 빠르게 인사를 단행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 청장은 지난 11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늦어도 12월 중순까지 경무관 이상 인사를, 12월 말까지 총경 인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며 “올해 안에 총경까지 인사를 마쳐야 내년에 경정 이하 인사가 가능하다”라고 이번 깜짝 인사를 ‘예고’하기도 했다. 한 경찰청 관계자는 “당시 경찰 내부에선 ‘통상 새해 설 명절 전에는 인사가 이뤄져왔다. 내년 설 명절이 1월 말이라 1월 중순 안에 지방 전보 인사를 마쳐야 순리에 맞다’거나 ‘어린 자녀가 있는 직원들이 3월 학사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예년과 비슷한 시기에는 인사가 마무리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며 “꼭 이런 내용이 아니더라도 큰 틀이 흔들리지 않도록 (인사를)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뒷말이 나오는 이유는 일부 승진자에 있다. 최종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국회 발의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자리 챙기기 인사를 했다는 내용인데, 친박 핵심 인사 중 한 명인 서병수 부산시장의 동생 서범수 경기북부청장이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것이 이 때문이란 시각이다. 서 시장은 새누리당 소속으로 박근혜 정권 창출에 큰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서범수 신임 경찰대학장(치안정감)은 1993년 행정고시(33회) 특채로 경찰이 됐다. 총경 승진 이후 부산지방경찰청 교통과장과 수사과장, 제1부장 등 부산에서 오래 근무해서 경찰 내 PK(부산·경남) 출신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지난 9월 이철성 경찰청장 취임 후 첫 고위직 인사 때 유력한 서울지방경찰청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김정훈 현 청장(경찰대 2기)에게 밀렸다. 서 신임 경찰대학장은 또 다음 인사에서 승진을 기약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치안감 3년 차로, 내년까지 승진을 하지 못하면 계급정년(4년)에 걸리게 된다.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내년에는 다음 정권이 경찰 고위직 인사를 담당하게 돼 있다.
이상철 신임 대전경찰청장도 뒷말이 나오는 승진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서울청 경비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의무경찰로 복무 중이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을 자신의 차량 운전병으로 근무하게 한 ‘꽃보직 특혜’ 논란을 일으켰다. 이 내정자는 지난해 12월 치안감으로 승진하면서 지방 근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서울청 차장으로 승진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평택 쌍용차 사태 당시 변호사를 불법 체포한 혐의로 기소돼 1,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경찰 간부가 총경 승진자로 내정되기도 했다. 경기남부청 소속 유 아무개 경정(경찰대 4기)은 2009년 6월 쌍용차 평택공장 시위 당시 권영국 변호사(53)를 불법 체포한 혐의로 피소됐다. 재판에서 1심과 항소심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고,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만약 확정 판결이 내려지게 되면 유 내정자는 경찰공무원법에 따라 당연퇴직 처리된다. 또 다른 총경 승진 내정자인 울산지방경찰청 소속 안 아무개 경정은 2009년 음주사고로 중징계인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은 이력이 있다. 음주운전 징계 이력은 7년이 지나면 소멸된다.
치안정감 자리에 오른 김양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과 치안감으로서 경기북부지역지방경찰 총수자리에 앉은 이승철 경기북부지방경찰청장은 모두 경찰 내에서 경비통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청장은 지난해 11월 고(故)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이후 같은해 12월 경찰청 경비국장으로 발령 났다. 최근 퇴임한 한 경찰 고위 관계자는 “대부분 조직 내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뒷말이 나오던 이들이 승진했다”며 “특히 촛불 집회가 한 달 넘게 이어지는 과정에서 승진자 대부분이 경비 출신 인사들이라는 점을 볼 때, 아직도 대통령이 시국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비춰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승진 인사는 공정하게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 대해 업무 성과와 전문성, 도덕성 등에 대한 평가와 입직경로, 출신 지역 등을 고려했다”며 “개인의 경력과 능력 등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