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가 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청문회 등장한 ‘판도라’와 ‘재갈’…소신 발언부터 폭로까지
언론에 ‘최순실 국정농단’을 폭로해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인물”로 평가받은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는 연이은 폭로로 주목을 받았다. 고영태 씨는 ‘비선 실세’ 최순실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으며, 박 대통령에게 자신이 만든 브랜드 ‘빌로밀로’의 가방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 씨는 의원들의 질문에 “김종 전 차관과 만난 적 있다. 최순실이 바라보는 김 전 차관은 수행비서”, “최순실이 2년 전부터 모욕적인 말과 직원들을 사람 취급 안 하는 행위를 많이 했다”, “최순실이 대통령에게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순실이 박 대통령의 옷을 100벌 가까이 만들었다”고 답하며 거침없는 폭로를 이어나갔다.
그는 청문회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왜곡된 진실을 국민 앞에 이야기할 수 있어 마음이 편했다”고 답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에 온라인에서는 ‘고영태 팬 카페’가 등장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고 씨는 “최순실은 태블릿PC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증언한 내용이 JTBC 측의 보도와 상반되면서 위증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JTBC는 지난 10월 고 씨가 자신들과 만나 “최 씨가 태블릿PC를 끼고 다니면서 대통령의 연설문을 읽고 수정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증인으로 출석한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도 한결같은 소신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여 위원장은 차은택 씨의 후임으로 지난 4월 9일 문화창조융합본부 위원장으로 취임했으나 50여일 만인 5월 30일 사임한 바 있다. 여 위원장은 자신이 미래부 문화창조융합본부장에서 물러난 이유에 대해 “형식적으로는 사임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직명령이었으니 해임이다. 당시 김종덕 문화부 장관이 해임통보를 했다. 대통령이 아침에 전화해 나를 내려보내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하더라”고 밝혔다.
그는 최순실 측근 차은택 씨의 문화창조융합벨트 전횡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갔다. “나에게 주어진 짧은 영수증과 서류 등을 검토해봤을 때, 차은택 감독과 김 전 장관, 융합벨트 간부들, 송성각 전 콘텐츠진흥원장, 청와대 수석실 수석들이 한 팀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시스템인 것처럼 가장해 구조적으로 국고가 새어나가게 하고 그것을 방조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 그것이 가장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화창조융합벨트 본부가 해체되면 증거인멸이 된다. 반드시 고강도 회계감사와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재갈을 물려서 일을 못 하는 시스템은 그만돼야 한다. 이제 알아서 재갈을 뱉어도 될 시기가 아닌가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앞서 6일 열린 1차 청문회에서는 참고인으로 출석한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과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활약이 빛났다. 이들은 참고인으로 출석했으나 재벌 총수들을 향해 의원들보다 더 날카로운 일침을 가했다. 두 사람은 재벌 기업의 조직문화를 비판하는 ‘소신 발언’을 쏟아내 청문회의 주연으로 부상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 교수는 모르쇠로 일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향해 “오늘 회장님들께서 나와서 계속 ‘내 업무가 아니다’ ‘보고받지 못했다’고 답변하고 있는데, 이 답변은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룹의 총수가 모든 일을 다 보고받을 수는 없지만, 계속 ‘알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룹 내부 통제장치를 구축하지 못했거나, 구축하고서도 그것의 통제그룹 대상에서 벗어나는 비선조직의 활동을 방임했다고 본다. 이것이 형사적으로 어떤 결론이 날지 모르겠으나 오늘 답변은 주주 대표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 전 대표는 이날 청문회에서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반대의견을 밝혀 사퇴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재벌은 다 조직폭력배 운영 방식과 똑같아서 말을 거역하면 확실히 응징해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문회가 끝난 뒤 개인 SNS를 통해 “이번 청문회는 정경유착 청문회다. 국민들은 이들(재벌)을 최순실 게이트 공범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들은 공범이 아니고 주범이다. 정경유착의 토대가 있기 때문에 최순실도 가능한 것”이라며 “초법적인 재벌은 항시적 몸통이고 최순실은 지나가다 걸리는 파리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3무 입장’ 고수한 김기춘, ‘위증 논란’ 불거진 김종
핵심 증인들의 불출석으로 김빠진 상태에서 진행된 2차 청문회에서 특위 의원들의 상당수 질문은 김 전 실장을 향했다.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시 7시간 행적 논란을 포함한 각종 의혹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김 전 실장은 청문회 내내 줄곧 ‘모르겠다’, ‘사실이 아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과 박 대통령이 의료 진료를 받았냐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의) 공식적인 일은 알고 있지만 청와대 관저 내에서 일어나는 사사로운 일들에 관해선 모른다”고 답했다. 또 청문회 하루 전인 6일 불거진 대통령 ‘머리손질’ 의혹에 대해서도 “외부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경호실에서 관리해 비서실은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다.
김 전 실장은 청문회 내내 최순실에 대해서도 ‘알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않았고 통화도 안했다’는 ‘3무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김 전 실장은 청문회에서 최 씨를 언제 알았냐는 질문에 “이번에 태블릿 PC가 발견되고 알았다”고 주장했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갖고 온 (정윤회씨의 국정농단) 보고서에도 최순실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첫 문장에 최 씨의 이름이 나오는 문건을 제시하자 “착각을 했다”고 답했다. 이어 박 의원이 시민들의 제보를 받아 김 전 실장이 박근혜 캠프 법률자문위원장이던 2007년 최 씨 이름이 거론된 후보검증 청문회 영상이 공개되자 “죄송하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라며 “이제 최 씨의 이름을 못 들었다고는 할 수 없겠다”라고 했다. 12시간의 청문회에서 20차례 이상 ‘부끄럽고 죄송하다’ 했으나 이마저도 말뿐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김 전 실장이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했다면 김종 전 문화체육부 차관은 수시로 거짓말을 반복해 위증 논란을 불렀다.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은 김 전 차관이 누구를 통해 최 씨를 알았는지 알기 위해 파고들었다. 장 의원은 “김기춘 실장을 통해 최순실을 알게 됐다고 검찰 진술에서 했던 말을 이 자리에서 말한다면 위대한 진실을 말하는, 모든 죄의 반을 속죄할 수 있다”고 유도했지만 김 씨는 “와전된 것”이라고만 답했다. 또 김 전 차관은 정유라를 잘 봐주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 김 전 실장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자세한 말씀을 못 드려 죄송하다. 형사 재판 중이라 양해해달라”며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지난 2014년 정유라 씨의 승마대회 우승 특혜 의혹을 제기했을 당시 김 전 차관이 기자회견을 했을 때 누구의 지시였느냐는 질문에는 “새누리당에서 나왔던 이야기다. 몇몇 의원의 지시였다”고 답했다가 위증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안민석 의원은 “김 전 차관은 앞서 국정감사에서 제가 똑같은 질의를 했을 때 ‘우리 부’ 즉 문체부 결정으로 기자회견을 했다고 답했다”며 “국정감사 때 혹은 이 청문회에서 한 증언 둘 중 하나는 위증”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지적에 김 전 차관은 “국회 상임위 지적에 따라 (기자회견)을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당에서 결정했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황급히 말을 바꿨다.
김 전 차관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 원 모집 과정에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을 만났는지 여부를 두고 김재열 사장과 엇갈린 진술로 진실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김 사장은 “(후원금과 관련해) 김종 차관을 만날 때 다른 제일기획 사장과 만났다”면서 “차관 말씀에 부담을 가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전 차관은 당시 만난 사람이 제일기획 사장이 아닌 임원이라며 김 사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들의 엇갈린 주장에 장제원 의원은 “둘 중 하나는 위증을 하고 있다”고 이들을 압박하고 “반드시 위증한 사람을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 씨 일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만 7일 국정조사 청문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 씨는 애초에 건강상의 이유로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으나 국조특위가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면서 오후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장 씨는 대부분의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 그 책임을 최순실 씨에게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장 씨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최순실의 아이디어였다”고 말하는 한편, “최순실이 지시를 하면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이모인데다가 거스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금 횡령 의혹이나 자금 지원 과정에서 김 전 차관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는 “검찰조사 과정에서 다 말씀드렸다”고 답했고, 연세대학교 입학 과정에서 특혜의혹 질문에는 “누구도 도와준 적 없다”고 주장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ilyo.co.kr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