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경기 장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한국배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일요신문] 불법 스포츠토토의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실제 스포츠 경기장 관중석까지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침투해 우려를 낳고 있다. 불법 스포츠토토의 규모는 지난 2015년 기준 약 22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법을 피해 은밀하게 이뤄지는 불법 도박의 특성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더하면 드러난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불법 토토 이용자가 경기장까지 나타나 관람 분위기를 해치고 선수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스포츠 선수 팬클럽 카페나 기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스포츠 경기장에서 불법 토토 이용자가 분위기를 흐린다”는 내용이 종종 화두가 된다. 일부 스포츠팬들 사이에서 “토토에 목숨 건 사람들이 부진한 선수를 향해 욕설을 하고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복귀 차량에 탈 때를 기다렸다가 비난을 퍼붓는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많은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특히 여자배구와 농구가 상황이 심각하다. 남자 종목에 비해 관중이 적고 불법 토토 이용자의 대부분인 남성들이 여성 선수들을 쉽게 보기 때문이다. 경기력에 대한 질타와 동시에 성차별적 발언이 이어지기도 한다.
실태 파악을 위해 12월 6일부터 8일까지 치러진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3경기 현장을 찾았다. 실제 둘러본 경기장에서 불법 토토 이용자들의 ‘추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관중석 곳곳에서 불법 토토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관중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경기가 진행되는 중에도 수시로 휴대폰 화면을 들어다 봤다. 또한 이들의 대화중에 ‘핸디, 언더, 오버’ 등의 토토 용어와 베팅 금액 등이 끊임없이 오갔다.
특정 선수를 좋아해 경기장을 자주 찾는다는 관중 A 씨는 “나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선수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다”며 “선수가 욕을 듣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운 적도 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올림픽 이후 여자 배구 인기가 높아져서 관중이 늘어나 최근에는 그런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경기장은 평일 5시임에도 경기를 즐기는 팬들이 가득했다. 이들은 응원 단장의 몸짓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기도 하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팬들의 열기에 선수들에게 함부로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또한 많은 팬들이 경기를 마친 이후에도 구단 버스에 오르는 선수를 기다렸다가 사인을 요청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A 씨는 관중이 늘어남에 따라 달라지는 최근의 분위기도 전했다. 그는 “과거보다 체육관에 사람이 많아지면서 경기장에서 직접 그러는 이들은 크게 줄었지만 온라인이나 SNS를 통해 쪽지로 그런 욕을 보낸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에는 한 국가대표 여자배구 선수가 “돈 잃는 게 싫으면 걸지 말라”는 내용의 글을 개인 SNS에 올려 화제가 된 바 있다. A 씨는 “그 사건 이외에도 선수들이 인터넷 게시판 악플을 향한 글을 SNS에 올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여자배구 박정아 선수가 8강 탈락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SNS에서 ‘폭탄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V리그에서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일이라고 A 씨는 설명했다. 한 배구 전문기자도 “경기를 지는 날에는 선수 SNS에 격려보단 욕설이 주로 달리는 편”이라며 “배구 인기가 높아진 만큼 팬 문화도 성숙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자배구 경기를 즐기는 관중. 양적 발전을 이룬 만큼 질적 향상도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따른다.
또 다른 배구팬 B 씨는 선수 SNS에 몰리는 이들이 불법 토토 이용자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선수 SNS에 불법 토토 사이트를 홍보하는 댓글도 많이 달린다”며 “축구나 야구선수들은 더 많은 관심을 받아서 부담스러우니까 여자배구 선수들을 노리는 것 같다”고 했다. 인기 배구 선수들은 페이스북보다 인스타그램을 선호하고 있었다. 요즘 워낙 인스타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페이스북에서 불법 토토 사이트 광고가 더욱 활발히 이뤄지기 때문이다. 일부 선수들은 광고 댓글에 시달리다 계정을 비활성화시키거나 없앴다.
B 씨는 체육관이나 팀에 따라 ‘진상 관중’의 인원이 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접근성이 좋거나 대도시에서 열리는 경기는 관중도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나도 멀어서 자주 가보지 못한 경기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B 씨는 “지정석보다 입장료가 저렴한 자유석 위주로 운영되거나 무료로 경기를 볼 수 있는 방법이 많은 체육관도 그런 일이 더 많다”고 했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 경기장에 들어와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일부 체육관은 경로 우대로 무료입장이 가능하며 지역주민에게는 아주 저렴한 가격의 입장권을 제공하기도 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실수 하나만 해도 “쟤 생리한다”…여성 차별 댓글 난무 스포츠계에서 여자 선수들은 상대팀이나 선수 외에 악플과도 싸워야 한다. 스포츠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나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에는 여성 차별적 발언이 난무한다. 남자 선수 기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외모와 관련된 댓글은 기본이다. 외모와 몸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비판을 가하거나 신체 부위를 거론하며 성희롱적 댓글이 주를 이룬다.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포털사이트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남성 성향이 강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성희롱적 발언이 더 노골적이다. 한때 불법 토토를 즐기던 김 아무개 씨는 “불법 토토하는 사람들은 입이 더 거칠다”고 상황을 전했다. 김 씨는 “그들은 선수가 실수 하나만 해도 ‘쟤 생리한다’고 하는 사람들이다”라고 설명했다. 토토 이용자들 사이에서 여자배구, 여자농구는 여성의 음부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을 앞에 붙어 ‘XX배구’, ‘XX농구’로 불린다. 여기서 시작된 저속한 용어들은 최근 남자 종목으로도 옮겨 갔다. 악성 댓글에 대한 인식 변화, 스포츠 인기 상승 등으로 공개적인 공간만큼은 이러한 현상이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글을 남길 수 있는 공간도 늘어남에 따라 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상처도 깊어지고 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