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박근혜의 53년이 일반인들과는 확연히 달랐다는 것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박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18년에 달하는 은둔생활에 대한 고찰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1차 은둔은 박정희 사망 이후 1989년까지의 10년간이다. 박근혜는 큰 충격에 빠졌지만 83년부터 육영재단 일을 맡아보면서 세상에 조금씩 다가간다. 3년의 깊은 공백끝에 세상과 타협을 시도한 것이다. 충격에 더 깊이 빠지는 게 두려워 관성적으로 부모와 관련된 일을 찾으면서 우울증 탈출을 시도한 때이다.”
“박 대표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일단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어려움을 박근혜는 잘 극복해냈다. …박근혜는 살아온 과정과 심리상태로 볼 때 정치할 가능성이 컸다.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의 최대 장점은 신념이었다. 일단 대의가 세워지면 무서운 고집이 되는 것이다…박 대표의 정치적인 고집은 여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언젠가 “아버지가 선배이자 스승이며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라고 규정한 바 있다. 모두 전 대통령의 딸로서 버릴 수 없는 책임감과 고통,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박 대표의 결혼 미수사건도 박 대표의 목소리로 소개되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결혼은 단념한 게 아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결혼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학 졸업시기(1974년 2월 졸업)에 어머니가 내 결혼을 생각하시고 추진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갑자기 돌아가신 이후 퍼스트레이디 대역을 하면서 바쁜 공적 생활을 하고, 5년 후에는 다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너무 충격이 크니까 이런저런 생각없이 육영재단, 기념사업 등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박 대표를 둘러싼 각종 소문과 구설도 빼놓지 않았다. 육영재단의 이사장직을 놓고 1990년대 초 갈등을 빚었던 동생 서영과의 불화 문제는 ‘어쩌면 박 대표를 정치인으로 탈바꿈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해석되고 있다.
그녀에게 최초의 스캔들을 안겨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나 그녀의 재산, 삼성동 자택에 얽힌 사연, 자택을 방문한 기자들에게 건네주었다는 ‘가득차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의 계영배 얘기 등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