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대자루에 담긴 여성 시신이 유기된 인천 부평구 갈산동 굴포천 굴포3교 아래 유수지.
수사를 맡고 있는 인천 삼산경찰서는 지난 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부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숨진 피해 여성의 사인이 ‘미상’이라고 밝혔다. 부패가 심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외상으로 사인을 짐작하기 어렵다는 것. 경추와 늑골이 일부 골절된 사실은 밝혀졌지만 피해 여성을 사망에 이르게 한 부상인지, 아니면 자루에 집어넣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쓰레기를 치우는 미화원들에 의해 발견됐기 때문에 쓰레기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골절일 가능성도 간과하기 어렵다.
현재까지 밝혀진 시신의 특징은 키 150cm의 왜소한 체격, 머리가 긴 젊은 여성, 실내에서 잠옷으로 잘 입는 얇은 긴팔 티셔츠와 검은색 칠부 바지의 가벼운 옷차림, 양말은 착용했으나 신발은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이다. 비교적 오랜 기간 방치된 것인지 시신의 일부는 부패가 심해 뼈가 드러났으며, 일부는 검게 변색돼 미라화돼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시신의 치아 상태도 확인했지만 치료 흔적이 없어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시신의 신원 파악이 늦어지는 터라 범인의 추적이 한시라도 빨리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시신이 유기된 굴포3교 유수지 입구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인근의 굴포4교에는 설치돼 있지만 방향이 굴포3교와 정반대 방향이기 때문에 녹화된 영상에 큰 기대를 걸어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굴포4교 등 인근에 설치된 CCTV는 최대 저장 기간이 약 한 달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달 전에 유기된 시신이라면 영상이 이미 삭제돼 있을 수 있어 경찰의 수사가 또 한 번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 당초 최초 발견자는 경찰 조사에서 지난 11월 29일 굴포천 청소를 나갔다고 진술했으나, <일요신문> 확인결과 해당 청소업체는 10월 28일과 12월 2일 두 차례 굴포천을 청소했다.
최초 발견자 황 아무개 씨(67)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10월 28일 이전에는 그런 마대자루를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수사를 개시한 지난 8일부터 최대 한 달간 영상을 확보한다고 해도 10월 28일부터 11월 8일까지 약 11일간의 영상은 이미 삭제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기간에 시신이 유기된 것이라면 CCTV 영상을 통한 범인 추적은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4월 같은 부평구 청천동에서 발생했던 ‘공사장 백골사건’처럼 이번 사건도 범인은 물론 피해자의 신원도 밝혀내지 못한 채 미제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범인이 이처럼 CCTV 사각지대를 찾아 용의주도하게 범행할 정도로 계획적인 사람이라면, 또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왜 굴포3교를 유기 장소로 삼았느냐다. 굴포3교는 이번 사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삼산경찰서와 굴포천 인근 산책로를 이용하면 약 200m, 지상 도로를 이용하더라도 불과 500m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인근에 반월놀이공원, 굴포공원, 굴포먹거리타운 등이 위치해 있어 새벽까지 상당한 유동인구가 오간다. 시신을 유기하고자 했다면 인적이 드문 서운교나 천상교 등 굴포천 상류를 이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굳이 경찰서의 코 앞인 이곳을 유기 장소로 선택했다.
더욱이 대부분 하천에 시신을 유기한 범인들은 시신을 완전히 훼손한 뒤 일부 부위만 유기하거나, 물에 빠뜨려 발견을 늦추기 위해 깊이가 깊은 하천을 유기 장소로 삼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범인은 시신을 물속이 아닌 유수지 앞 콘크리트 바닥 위에 유기해 더 큰 의문을 낳고 있다. 애초에 시신이 발견된 굴포3교 하천은 하천의 깊이도 성인 남성의 무릎 정도에 불과하고, 최근 한 달간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하천에 유기됐던 시신이 떠내려 왔을 가능성도 없다. 따라서 범인이 철저히 계획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굴포천 주변 환경으로 인해 시신 발견이 늦어지면서 졸지에 ‘완전 범죄’가 됐을 수도 있다.
다만 경찰 수사 과정에서 시신이 들어있던 마대자루가 부평구청에서 지역 하천 정화 사업을 위해 2011~2012년 제작, 청소업체와 각 주민센터 등에 배포했던 것이라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범인을 특정지을 수 있을 만한 단서가 포착됐다. 이 마대자루는 시중에는 유통되지 않았고 부평구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도 2012년 8월 이후에는 배포가 중단됐다. 경찰은 2011~2012년 사이부터 현재까지 부평구에 거주했던 주민이 피해자, 또는 범인인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신원 파악이 우선적으로 돼야 하기 때문에 현재 인천 지역에서 가출, 실종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이번 주 안으로 DNA 대조를 통한 피해자의 신원 파악과 몽타주 작성에 힘쓰고, 수사 인력을 총동원해 범인 추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삼산경찰서 형사팀,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등 7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수사를 확대해가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