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서건창, 양의지, 김재호, 김재환, 최형우, 김주찬, 김태균, 최정. 1루수 부문을 차지한 테임즈와 투수 부문을 차지한 니퍼트는 이날 불참했다. 연합뉴스
골든글러브는 모든 프로야구 선수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상이다. 그만큼 많은 선수들이 부푼 기대감을 안고 시상식에 참석한다. 올해 골든글러브 투표 유효표는 총 345표였다. 정규시즌 최우수선수와 최우수신인선수를 뽑을 때보다 투표인단이 네 배 가까이 많다. 올 시즌 KBO리그를 담당한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야구 중계 담당 PD, 아나운서, 해설위원 등 미디어 관계자들이 각자 한 표씩 행사했다.
# 골든글러브 시상식 날짜는 왜 바뀌었을까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4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같은 날짜에 열리는 게 관례였다. 한국 프로야구 창립 기념일인 1981년 12월 11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 시상식을 매년 12월 11일에 개최해 KBO리그의 ‘생일’을 자축해왔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쭉 그랬다.
처음으로 시상식 날짜가 변동된 해는 1999년. 출범 18시즌 만에 처음으로 4일 늦은 12월 15일에 시상식을 진행했다. 이유는 다소 황당했다. 시상식 중계를 맡은 방송사가 자사 편의에 따라 날짜를 15일로 바꾼 것이다. 당시 KBO는 시상식 생중계를 통해 야구 붐을 일으키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중계권료를 받기는커녕 중계 비용까지 제공해가며 그 요구를 들어줬다. 그러나 방송사는 중계 시간마저 시청률이 낮은 오후 5시에 편성했다. 결국 전통도 잃고 실리도 잃었다. 야구인들과 취재진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 후 골든글러브 시상식 날짜는 다시 12월 11일로 고정됐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3년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2013년 4월 열린 KBO 이사회에서 결국 시상식 날짜 변경 안이 통과됐다. 12월 11일이 아닌 매년 12월 둘째 주 화요일에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날짜가 고정되는 대신 매번 요일이 바뀌면서 생기는 불편함이었다. 평일은 괜찮다 해도, 주말에 시상식이 잡히면 골치가 아파졌다. 일단 시상식을 보고 싶어 하는 야구팬들은 너무 많은데, 주말에는 방송 중계 편성이 쉽지 않다. 일요일에는 신문을 제작하지 않는 일간지들이 대부분이라 언론에도 시상식이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다. 또 12월의 주말은 프로야구 선수들의 결혼식이 하루에도 몇 건씩 잡혀 있다. 결혼식 후에는 신혼여행도 이어진다. 골든글러브 후보에 오르고도 시상식에 불참하는 선수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야구인들 역시 경조사를 비롯한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결국 KBO는 좀 더 성대하고 풍성한 잔치를 치르기 위해 전통을 포기했다. 달라진 환경과 높아진 인기를 반영한 변화다. 그 결과 2013년에는 처음으로 12월 10일에 시상식이 열렸고, 2014년에는 12월 9일, 2015년에는 12월 8일, 올해는 12월 13일이 각각 시상식 날짜로 정해졌다.
# 골든글러브 수상 기준 어떻게 변했나
한국의 골든글러브는 수비보다 공격 성적을 더 많이 반영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리그에는 수비 잘하는 선수에게 주는 상이 따로 있지만, 한국은 골든글러브 하나로 공수를 통합해 시상한다.
사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는 골든글러브가 최고의 수비수를 뽑는 상이었다. 투표도 하지 않고 오직 수비율 기록만으로 수상자를 정했다. 그렇게 선정된 초대 골든글러브 수상자들은 투수 황태환(OB), 포수 김용운(MBC), 1루수 김용달(MBC), 2루수 차영화(해태), 3루수 김용희(롯데), 유격수 오대석(삼성), 외야수 김성관(롯데·좌익수) 양승관(삼미·중견수) 김준환(해태·우익수)이었다. 수비상이라 지명타자 부문은 시상하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에는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한 선수들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1983년부터는 공격과 수비를 합쳐 그 포지션에서 가장 잘한 선수를 가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수상자도 투표를 통해 뽑게 됐다. 실책 개수에 따라 달라지는 ‘수비율’ 하나만으로는 수상자를 공정하게 가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유일한 시상식인 만큼, 프로야구의 간판선수들이 참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상의 기준이 ‘수비’에서 ‘종합 성적’으로 변경되자, 1983년 골든글러브 수상자들의 얼굴도 대거 달라졌다. 3루수 김용희를 제외한 전 부문 수상자가 바뀌었다. 1984년부터는 지명타자 부문도 신설됐다. 경기 도중 글러브를 사용할 일이 없는 포지션이지만, 골든글러브는 받게 됐다. 사실상 ‘베스트 10’ 시상식이라는 점을 공표한 셈이다. OB 양세종이 역대 첫 지명타자 수상자였다. 1986년부터는 외야수 부문에 변화를 줬다. 앞선 3년은 좌익수·중견수·우익수를 구분해 상을 줬지만, 그해부터는 위치 구분 없이 외야수 3명을 선정했다. 그 틀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 이적 선수의 소속팀은? ‘시상식 당일’ 기준
올해 최형우는 삼성 유니폼을 입고 138경기를 뛰면서 타율(0.376), 타점(144개), 최다안타(195개)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 결과 총 311표를 받아 전체 3위이자 외야수 부문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2011·2013·2014년에 이어 2년 만이자 통산 네 번째 골든글러브 수상. 그러나 이 골든글러브는 삼성이 아닌 KIA의 수상으로 기록됐다. 최형우가 시즌 종료 후 KIA와 FA 계약을 맺고 팀을 옮겼기 때문이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12월에 열리는 탓에 이런 장면은 이전에도 종종 나왔다. 역대 최초의 사례는 1993년 김광림과 한대화였다. 당시 OB 소속이었던 김광림은 시즌이 끝난 뒤인 11월 23일 쌍방울로 트레이드됐고, 12월 4일에는 해태 간판타자였던 한대화가 LG로 트레이드됐다. 그리고 그해 12월 11일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김광림은 외야수 부문 2위로 데뷔 첫 황금장갑을 꼈고, 한대화는 7년 연속 3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때 처음으로 이들의 수상을 어느 구단 소속으로 해석해야 하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소속팀 표기는 향후 프로야구 연감에 역사로 남는 것은 물론, 골든글러브 관련 각종 기록 집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후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의 기준도 마련해야 했다. 결국 ‘시상식 당일의 소속팀’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렇게 김광림은 쌍방울 소속, 한대화는 LG 소속으로 골든글러브를 가져가게 됐다.
이후에는 FA로 이적한 선수 7명이 같은 사례를 만들었다. 1999년 LG 포수 김동수가 삼성으로 이적해 황금장갑을 받았고, 2004년 현대에서 뛴 박진만도 삼성으로 이적한 뒤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2008년 지명타자 홍성흔은 두산에서 롯데로, 2013년 2루수 정근우는 SK에서 한화로 이적하면서 각각 새 팀에 골든글러브를 안겼다.
2015년에는 kt 외야수 유한준과 NC 3루수 박석민이 동시에 그랬다. 유한준은 넥센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뒤 kt로 이적했고, 박석민은 삼성의 정규시즌 우승에 힘을 보탠 뒤 NC로 향했다. 이들은 모두 수상 소감에서 정든 전 소속팀과 새로 만난 현 소속팀을 공히 언급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특히 유한준과 박석민은 불과 시상식 일주일 전에 계약을 마친 터라 새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촬영할 시간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kt와 NC는 유한준과 박석민이 전 소속구단에서 찍은 사진을 입수한 뒤 유니폼 부분을 지우고 현 소속팀의 유니폼을 덧입혔다. 이 합성 사진은 골든글러브 팸플릿에 당당하게 실렸다. 두 선수조차 “내가 언제 이런 사진을 찍었나 싶어 놀랐다”고 말할 정도로 감쪽같았다.
# 외국인 차별 논란, 더 이상은 없다
골든글러브 투표 결과에 대한 논란은 종종 벌어진다. 수백 명에 이르는 투표인단의 평가 기준이 서로 달라 벌어지는 일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뜨겁고 뿌리 깊은 화두는 바로 ‘외국인 선수 차별’과 관련된 비판이었다.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 성적에 비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외인이 많지 않았던 게 원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8년의 OB 타이론 우즈다. 우즈는 당시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우면서 정규시즌 MVP로 선정됐다. 그러나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투표에서 삼성 이승엽에게 밀려 상을 받지 못했다. 이전까지 프로야구 역사에서 정규시즌 MVP가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한 시즌은 수비율로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정했던 1982년밖에 없었다. 골든글러브 평가 기준이 바뀐 1983년 이후로는 여전히 우즈가 유일하다. “전교 1등인데 반 1등을 못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2012년에는 투수 부문에서 논란이 일었다. 넥센 외국인 에이스 브랜든 나이트는 16승 4패, 평균자책점 2.20을 기록하면서 평균자책점 1위와 다승 2위에 올랐다. 거의 모든 지표에서 그해 최고의 선발 투수였다. 그러나 1승차로 다승왕에 오른 삼성 장원삼(17승 6패, 평균자책점 3.55)에게 골든글러브를 내줬다. 야구팬들은 다시 한 번 “나이트가 장원삼에게 국적에서 밀렸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그 후 분위기는 급격하게 달라졌다. 2014년 넥센 앤디 밴 헤켄이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게 신호탄이었다. 2015년에는 NC 에릭 해커가 투수, 테임즈가 1루수, 삼성 야마이코 나바로가 2루수 부문 황금 장갑을 각각 손에 넣으면서 역대 최초로 3명의 외인 수상자를 배출했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니퍼트가 이변 없이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가져갔다. 심지어 전체 수상자 가운데 최다 득표다. 3년 연속 외국인 선수가 투수 부문 황금 장갑을 끼게 됐다. 테임즈 역시 역대 외국인 선수 최초로 2년 연속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다. 시즌 막바지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시즌 종료 후에는 메이저리그 밀워키와 계약해 NC를 떠났지만, 오로지 올 시즌 성적만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았다.
표심의 변화는 수치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외국인 골든글러브 수상자는 1998년부터 2013년까지 16년간 총 10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4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은 무려 6명이 나왔다. 1년 평균 0.6명꼴에서 2명꼴로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다. 더 이상 무의미한 ‘국적 차별’은 없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역대 시상식 해프닝] 선동열 어록 ‘파리에 가면 파리 법 따라야’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KBO리그에서 가장 성대한 행사다. 수상자들뿐만 아니라 시상자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야구계의 대표 인사들과 당대의 인기 스타들이 수상자 발표를 위해 무대에 섰다. 그 과정에서 장내를 웃음바다로 몰아넣은 에피소드들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누가 뭐래도 가장 유명한 해프닝은 프로야구 초창기인 1986년에 나왔다. 그때만 해도 골든글러브 수상자 발표 봉투에는 수상자 이름이 한자로 찍혀 있었다. 신문 기사나 각종 공식 문서에 인명을 한자로 표기하던 시절이라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KBO 기록위원들은 경기 기록지에도 선수와 심판의 이름을 한자로 적어 넣곤 했다. 일부 기록위원들은 여전히 그 전통을 이어갈 정도다. 그해 유격수 부문 시상자로 나온 한 톱 여배우가 그 탓에 실수를 했다. 수상자인 김재박의 ‘박(博)’ 자를 언뜻 비슷해 보이는 ‘전(傳)’ 자로 착각한 것이다. 봉투를 연 뒤 잠시 머뭇거리던 이 여배우는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수상자는 MBC 청룡 김재전 선수, 축하드립니다!” 그 순간 시상식장에 침묵이 감돌더니 이내 모두가 술렁거렸다. 그리고 ‘김재전’과 가장 비슷한 이름을 가진 김재박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그 다음해부터 KBO는 수상자 봉투에 적힌 이름을 모두 한글로 표기하고 있다. 선동열 전 KIA 감독은 2년 연속 웃음 폭탄을 안겼다. KBO 홍보위원을 역임하던 2003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시상자로 나섰다가 대본에도 없던 애드리브를 했다. “우리 속담에 ‘파리에 가면 파리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죠?”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일단 ‘우리 속담’에 프랑스 파리가 등장할 이유가 없고, 심지어 이와 비슷한 격언에 등장하는 도시는 파리가 아니라 이탈리아 로마다. 이 발언은 두고두고 선 감독의 ‘어록’으로 회자됐다. 삼성 감독이 된 이듬해에도 마찬가지다. 선 감독은 2004년 시상식에서 탤런트 박은혜와 함께 투수 부문 공동 시상을 맡았다. 박은혜는 주최 측이 준비한 대본에 따라 “감독님, 원래 야구란 투수의 손끝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않나요?”라는 대사를 던졌다. 최고의 투수였던 선 감독이 멋진 답변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 그러나 선 감독은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돌연 “자, 모니터를 보시죠”라며 곧바로 후보 소개를 시작했다. 박은혜는 머쓱해졌고, 좌중은 폭소를 터트렸다. 그런가 하면 ‘김재전 사태’의 주인공인 김재박 감독은 현대 사령탑 시절이던 2004년 유머러스한 장면으로 웃음을 안겼다. 그해 현대의 수비를 진두지휘했던 유격수 박진만이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이적한 사연 때문이다. 박진만은 명 유격수 출신인 김 감독의 애제자였다. 그런데 하필 그해 유격수 부문 시상을 김 감독이 맡았고, 수상자는 다름 아닌 박진만이었다. 김 감독은 봉투를 연 뒤 어색하게 ‘삼성 라이온즈 박진만’이라고 호명했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팀 소속이 된 제자가 단상 위에 올라오자 짐짓 황금 장갑을 놓지 않고 상을 주지 않으려는 시늉을 했다. 김 감독도 웃고, 박진만도 웃고, 객석도 모두 웃었다. 소설가 은희경 씨도 2000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의도하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당시 한화에는 골든글러브를 탈 만한 선수가 거의 없었다. 외야수 송지만이 ‘무관’을 면하게 해줄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외야수 부문 수상자를 발표하던 은 씨가 봉투를 연 뒤 “삼성…”이라고 운을 뗀 것이다. 찰나의 순간 한화 관계자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은 씨가 ‘삼성’이라는 단어를 꺼낸 것은 수상자가 아니라 그해 프로야구 스폰서의 이름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은 씨는 “삼성 FN닷컴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는, 한화 송지만!”이라고 발표했다. 한화 관계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린 뒤 힘껏 박수를 쳤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