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 등 ‘국정농단 의혹’의 핵심 피의자들에 대한 특검 수사와 재판이 동시에 진행된다. 일요신문 DB
특검 수사와 재판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동안 11차례의 특검 가운데 대부분은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의혹에 대한 재수사 차원에서 도입됐다. 지난 2012년 BBK 사건과 관련, 검찰이 김경준 씨를 횡령 등 혐의로 기소한 상황에서 특검이 꾸려진 경우가 있었지만 당시 검찰은 ‘배후세력’으로 지목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최순실 씨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앞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에 대한 공판이 특검 수사 중에도 계속 진행되면서 재판이 불가피하게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특검이 앞서 마무리된 검찰 수사보다 더 넓은 범위로 전방위 수사를 펼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최근 박영수 특검이 “박 대통령을 반드시 한 차례 이상 대면 조사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히면서 기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관계가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 씨가 받고 있는 직권남용 혐의가 뇌물죄로 변경될 가능성은 이번 특검 수사와 재판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로 꼽힌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최 씨에게 특혜지원을 했던 대기업들의 ‘대가성’이 밝혀지면, 특검은 재판 도중에라도 최 씨의 직권남용 혐의를 뇌물죄로 변경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전 서울지법 판사는 “이 경우 최 씨의 공소장 내용을 변경하거나 뇌물죄를 적용해 추가로 기소하게 된다”며 “추가 기소될 경우 법원은 특검과 검찰의 결론을 비교하며 판단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특검이 수사 과정에서 기존 검찰 수사와 상반된 결론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엔 재판부가 특검과 검찰의 결론을 비교하며 의미 있는 것을 추려 낼 것”이라며 “다만 앞서 의혹을 수사했던 일부 검사들이 특검에 파견된 만큼 크게 다른 결론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는 동일하기 때문에 특검이 재판 도중 피의자들의 혐의가 일부 변경되더라도 그동안의 재판이 허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공소장 변경이나 추가 기소가 되면, 최순실 씨 등 핵심 피의자들의 재판은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형사소송법상 구속피고인에 대한 구속기간은 최장 180일로, 이 기간 안에 1심 선고를 내려야 한다. 하지만 재판 도중 추가 기소되면 이 시점으로부터 6개월 뒤로 선고 기간이 미뤄진다. 서초동의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 사건은 재판부의 심리 영역이 상당히 방대한 편인데, 여기에서 공소장 변경이나 추가 기소가 되면 법률상 정해진 기간을 모두 채우고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특검과정에서 새롭게 의혹이 제기된 인물이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에도 핵심 피의자들의 재판이 장기화되는 원인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앞서의 변호사는 “만약 특검이 새로운 인물을 기소했는데, 앞서 재판을 받고 있던 피고인과 공범으로 인정될 경우 사건이 병합된다. 이때 같은 재판부에서 동시에 심리가 진행될 가능성도 열려 있어 그만큼 재판이 지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법조계에선 특검 수사와 최 씨 등 피의자들의 공판은 이번 헌법재판소 심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2월 9일 헌법재판소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의결서가 접수되면서 헌재는 최장 180일 간의 심리에 들어갔다.
특검 수사에서 각종 의혹에 대한 규명이 이뤄지면 헌재 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 내부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헌재는 박 대통령에게 변론 기회를 제공하고, 사건 심리를 위한 증거조사 권한이 있어 직접 범죄 혐의를 밝힐 수 있다. 다만 박 대통령은 변론에 참석하지 않고 대리인이 진술할 가능성이 높고, 증거조사의 경우에도 압수수색 등 수사를 진행할 수는 없기 때문에 특검의 대통령 대면조사와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를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4년 탄핵 심판 때도 헌재는 재판과 수사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의 수사 기록 복사본을 검토했다.
특검 수사에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최순실 씨 비호 의혹 등에 규명이 이뤄지면 헌재 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최 씨와 핵심 피의자들의 공판도 변수다. 앞서의 서울지법 전 판사는 “동시다발적으로 수사와 공판이 진행되는 만큼 특검 및 법원과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