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지도부의 인사권을 휘둘러 당 윤리위원회에 8명의 ‘친박 사무라이’를 전격 투입하며 여전히 박 대통령 방패막이에 나서기도 했다. 외부 인사 6명과 정운천 의원까지 7명으로 구성돼 있었던 윤리위는 12월 20일 박 대통령 징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사무라이를 투입해 의결의 정족수를 바꿔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 하지만 이 드라마에도 다 각본이 있었다고 한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5일 국회 대표회의실에서 최고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지도부 즉각 사퇴, 윤리위 원상 복구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새누리당 사무처 당직자들과 만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친박 신(新)7인회의 멤버 중 한 명은 최근 지인들을 만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여권의 정황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즉, 막장으로 치닫게 해 친박계 알맹이만 남고 견디지 못한 ‘친박계 외’는 다 떠나게 할 것이란 얘기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정치권 인사는 이렇게 들려줬다. 신7인회는 서청원 정갑윤 정우택 원유철 최경환 이정현 홍문종 등 친박 핵심을 말한다.
“친박계랑 비박계는 도저히 같이 가지 못한다. 한 배를 타고 있었는데 우리 이거(박근혜 대통령을 의미)를-그는 엄지를 들어올렸다-목을 친 자들과 같은 배를 계속 탈 수 있겠나. 우리도 그렇고 저들(비박계)도 그렇고 이렇게 으르렁거리다 보면 지역 주민이 뽑은 헌법기관으로서의 대표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내 목을 언제 치려고 할지 모르는데 무슨 일이 되겠는가. 그 수가 아주 적더라도 알짜 친박계만 남아 정당을 유지하고, 우리만 바라보는 절대 지지층만 바라보고 갈 수밖에 없다. 이런 말을 하더라.”
친박계의 전략은 비박계가 살아갈 수 없는 정치적 토양을 만드는 데 있었다. 막장 드라마를 쓸수록 국민적 지탄은 커질 것이고, 하지만 뚜렷한 명분이 없는 한 친박계를 출당시킬 방법도 없으며, 게다가 현재 지도부는 친박계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판이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12월 14일 친박계 신7인회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친박계 강성파 중에 하나인 김진태 의원은 당 의원총회에서 비박계의 탈당과 분당 움직임을 두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맞다. 나는 새누리호와 함께 가라 앉겠다”고 대놓고 밝히기도 했다. 김 의원은 비상시국위원회로부터 이른바 ‘친박8적(賊)’으로 거명됐다. 친박8적은 이정현 당 대표와 조원진 이장우 최고위원, 서청원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 의원까지를 포함한다. 김 의원은 거기에 덧붙여 “탄핵안이 의결됐다. 그런데 여기에 성문을 열어준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듯 마주 앉아 있는데 당을 함께할 수 있겠는가”라고도 했다.
지난 12월 11일 오후의 일이다. TK의 한 초선 의원은 친박 8적의 한 멤버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이 초선 의원은 급히 상경해 친박계의 이날 심야 회동에 참석하게 되고 일명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에 참여하는 사인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 만난 초선 의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실 그렇게 큰 회동인 줄 몰랐다. 나는 A가 탄핵 이후에 우리 당이 큰 위기에 놓여 있고 그래서 믿을 만한 사람끼리 좀 만나서 저녁이나 먹자고 해서 왔다. 사실 우리 초선은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지 않나. 당이 쪼개지거나 아니면 나가는 분들이 생기면 정말 당의 위치도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뿐이다. 그런데 거기 가보니 의원들이 엄청 많은 거다. 그리고 여기 참여하는 것으로 알겠다고 그러시던데 거기서 ‘저 여기 못합니다’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참담한 심정이었다.”
비단 이 의원뿐 아니었다. 6월부터 의정생활을 시작해 이제 6개월가량을 지낸 초선 의원들 다수는 ‘땅 따먹기 놀이하듯’ 계파 싸움에 몰두하는 두 진영을 아주 못마땅한 시각으로 바라봤다.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한 재선 의원은 “솔직히 초선들 볼 낯이 없다”고 했다. 그 뒤 13일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었지만 현역 의원 60명 이상이 참석할 것이란 호언과 달리 당일 37명이 참석하기도 했다.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식으로 정치생명을 건 계파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친박 모임에 이름을 올렸던 한 초선 의원은 “지역구 행사장에 내려와 있다”고 했다. 이 모임의 가입이 절실해 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하지만 막장 드라마를 써왔던 친박계의 패착은 당을 친박과 비박으로만 바라본 데 있었다. 이번 윤리위 ‘꼼수 인선’은 당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당 사무처 당직자들의 분노를 불렀다. 친박계 의원들로만 구성된 당 최고위원회가 기존 7명의 윤리위원에 원내 친박계인 이우현 박대출 곽상도 이양수 의원과 원외 인사 4명까지 8명을 추가로 투입하면서 거대 윤리위를 꾸리자 15일 당직자들은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당사 회의장으로 피켓을 들고 들어갔다.
‘지도부 즉각 퇴진’ ‘윤리위 원상복구’ 등의 피켓을 든 이들은 이 대표 앞에서 “퇴진”을 외쳤다. 게다가 이양수 의원은 윤리위 불참 의사를 통보하고, 원외 인사 중에는 성추행이나 음주운전 경력이 있어 윤리위원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여론의 역풍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한 비박계 인사는 “막장 드라마를 쓰면서 친박계가 스스로 출당의 명분을 쌓고 있다”면서 “비박계가 당권을 쥘 경우엔 충분히 인적 청산이 가능한 사안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무엇보다 친박계 핵심들의 결속력도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신7인회의 1·2인자, 즉 서청원 전 최고위원과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 간에 묘한 기류가 엿보인다. 둘은 하반기 국회에서 국회의장의 꿈을 함께 꾸고 있다. 선수(選數) 우선의 측면에선 8선의 서 전 최고위원이 유리하지만 비박계는 인적청산의 첫 번째 대상으로 그를 꼽는다. 6선의 정 전 부의장 입장에선 서 전 최고위원만 없으면 국회의장이 가능하다. 물론 제1당의 위치를 지키는 것을 전제하고서다. 그래서 서 전 최고위원과 정 전 부의장은 당이 분당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13일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창립총회에 정 전 부의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검찰이 최경환 의원의 중소기업진흥공단 특혜 채용 의혹을 두고 보좌관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 보좌관은 핵심 증인에게 최 의원이 연루되면 안 된다며 위증을 교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의원은 2013년 인턴 출신 황 아무개 씨를 중진공에 특혜 채용하라고 압박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만약 이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비박계가 인적청산의 명분을 쥘 수 있게 되고, 친박계로선 가장 핵심적인 친박계 거물을 잃게 되는 셈이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