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일본천황을 만나 처음 꺼낸 얘기가 위안부문제였다. 일본천황은 몹시 당황했다고 한다. 네덜란드 왕은 국빈방문의 틀을 깨어버린 것이다. 네덜란드 왕은 이어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물려받은 대통령자리가 아니고 선거에서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박근혜 대통령이 촛불의 바다 속으로 침몰했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평가가 튀어 나온다. 충언에 귀 기울이는 겸손이나 확고한 국정철학이 없다는 평가가 돈다. 내시나 상궁 같은 측근들의 발호를 막지 않고 오히려 후원자역할을 하다가 걸렸다고도 한다. 세월호에 탄 수백 명의 아이들이 어두운 물속에서 엄마를 부르며 절규하는 순간 대통령의 피는 과연 안타까움에 수런거렸을까?에 대한 의문들도 떠오른다.
박근혜 대통령의 영혼은 네덜란드 왕이 부러워 할 만큼 진짜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을 내 몸같이 생각하는 민주공화국의 대표였을까. 이 나라는 지금 왕당파와 서민파가 서로 반목하고 있다. 우루과이의 대통령 무히카는 이런 말을 했다.
“강한 권력을 가지면 위험해집니다. 자기 자신 때문이 아니라 주변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팀을 꾸리는 것과 아첨꾼과 가신들로 둘러싸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정직입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나머지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는 거리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퇴임은 국민에게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대통령궁에서는 업무만을 보고 저녁이 되면 낡은 자기 차를 운전해서 몬테비데오 변두리에 있는 오래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월급의 90%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 남은 돈으로 소박한 생활을 했다.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면서도 그는 미국 대통령 앞에서 거침없이 쓴소리를 했다. 고난이 그의 선생이었다. 감옥에 갇혔다가 여러 번 탈출했다. 첫 번째는 담을 넘어 도망치고 두 번째는 땅굴을 파고 탈옥했다. 독재 정권은 마지막에는 그를 그물에 넣어 우물 속에 매달아 놓았다. 그는 물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고 회고했다. 그의 재임 중 지지율이 80%를 넘었다. 국회와 여론은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그가 연임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이제 우리도 그런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권력을 독점하면서 대본을 읽고 마음이 없는 연기나 하는 껍데기대통령은 없어져야 한다. 연설문 하나에도 이 나라가 무엇을 원하는지, 국민이 무엇에 분노하는지, 그들이 절규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배어 나오는 그런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