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반딧불이 밴드 게시판 캡처
반기문 사무총장 팬클럽 ‘반딧불이’ 군포지회 간부는 “우리 지역에 꼴통보수 성향을 띠는 사람들이 좀 많다. 그들과의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팬클럽의 당초 개설 취지가 흐려진 측면이 있다. 이들에게 그런 글을 쓰지 말라고 몇 번씩 경고를 했다. 지회 측에서 일방적으로 삭제하기 전에 스스로 글을 지워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상한 글들을 계속 올리고 있다. 민의와 다른 글이기 때문에 염려가 크다”고 귀띔했다.
군포지회(12월 21일 기준, 회원수 135명)는 반딧불이가 전국 조직화를 위해 설립 중인 228개 광역 기초자치단체의 지회 중 하나다. 지회 소속 회원들의 주 활동 무대는 네이버 밴드(SNS)다. 회원들은 그동안 밴드 게시판에 반 총장 관련 업적과 기사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소통해왔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12월 9일 이후 군포지회 게시판엔 팬클럽 취지에 맞지 않는 글이 급증했다고 한다.
12월 11일 반딧불이 회원 박 아무개 씨는 “친구가 더불어민주당 사무실에 있는 간부에게 무슨 돈으로 45인승 관광버스를 대절하느냐고 물어봤는데 ‘중앙당에서 내려온다’고 대답했다. 참으로 죽일 놈들이다. 선량한 국민들의 세금을 당 운영비로 쓰다니…”라는 글을 올렸다. 일주일 뒤 박 씨는 “박 대통령이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라고 들었다. 야당과 언론에 집중포화를 맞았는데 온전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이 정신병에 걸리지 않으면 기적…”이라는 글도 게시했다. 특정 회원이 민주당 촛불 집회 대가 지불설, 대통령중환자실 입원설 등의 ‘음모론’으로 반 총장 팬클럽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글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군포 지회 게시판엔 박근혜 대통령 팬클럽 ‘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박사모)’이 주도한 광화문 탄핵 반대 집회 포스터 사진이 곳곳에서 보인다. 12월 18일 반딧불이 회원 이 아무개 씨는 박사모 등 보수 단체가 참여한 집회 사진과 함께 “수십만이 훨씬 넘는 태극기 물결이 서울에서 넘쳐흐르는 모습을 보았는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급기야 군포지회는 일부 회원들을 향해 경고장을 보냈다. 군포지회 관계자는 최근 “회원분들게 부탁드린다. 이곳은 반 총장의 반딧불이 팬클럽이다. 취지에 맞게 게시물을 게재해주셨으면 좋겠다. 친·비박 인사에 대한 비난을 삼가주셨으면 한다. 탄핵 문제에서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엄연한 사실이다. 때문에 민의에 어긋난 소위 ‘꼴통’적인 주장은 자제해주셨으면 한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여전히 게시판엔 반 총장과 관련이 없는 분란성 글들이 반복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는 군포지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반딧불이 청주지회(322명)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회원들은 밴드 게시판에 ‘최순실 태블릿PC가 JTBC에 의해 철저하게 조작됐다’, ‘촛불이 전체 민심이라고?’라는 제목의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청주지회 관계자는 “반 총장의 대권가도에 악영향을 끼칠 것 같아 걱정이다. 상식과 동떨어진 글이고 한두 건에 불과하지만 누군가 계속 올리고 있어 안타깝다. SNS는 주로 반딧불이 회원들 간의 소통을 위한 곳이다. 이젠 올라오는 즉시 삭제할 것”이라고 했다.
반딧불이 보은·옥천·영동 지부(34명)․충북본부(67명)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일부 회원들은 연일 최순실 씨 태블릿PC의 출처를 둘러싼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불씨로 작용한 태블릿PC가 최 씨의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정치권 일각에선 “반라인으로 갈아탄 골수 지지자들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반딧불이가 세몰이에 실패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반딧불이는 반 총장의 고향(충북 음성군)이 있는 충북 지역에서 조직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반딧불이가 충북본부 창립대회를 개최했지만 충북·옥천·영동군 지역에서 지회장을 선뜻 맡겠다는 사람이 없어 곤란함을 겪었다고 한다. 팬클럽 일각에서는 ‘조직 확장이 지지부진한 까닭이 극우 성향의 회원들 탓’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하지만 반딧불이 보은·옥천·영동지회 관계자는 “정치 성향과는 상관없다. 옥천 쪽으로 선이 닿는 사람이 아직 없을 뿐이다. 옥천군과 영동군은 반딧불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아직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 못 구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반딧불이 관계자도 “옥천과 영동은 이미 책임자가 있다. 조직이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직 확장 과정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은 억측이다. 지역마다 밴드들이 빠른 속도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반딧불이 측은 일부 회원들이 분란성 글을 올리는 것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딧불이 김성회 회장은 “극우 성향의 사람들도 국민이다. 특정 글들이 너무 왜곡됐거나 문제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회원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간섭할 수는 없다. 내부에서 크게 분란을 일으키는 정도는 아니다. 심지어 민주당 자유게시판이나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팬클럽(문팬)에서도 온갖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가 난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딧불이 회원들이 SNS 공간에서 다양한 글로 얼마든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 총장의 또 다른 팬클럽 반사모(2567명)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11월 10일 1차 정기모임을 개최한 반사모(신영길 회장)는 최근 본격적으로 조직 확장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반사모 중앙회 밴드 게시판에서도 “역대 대통령 중에 재단을 만들지 않은 대통령이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언론사와 종북세력이 만들어낸 기획작품”이라는 취지의 ‘탄핵 불가사유’를 정리한 글이 퍼지고 있다.
최근 ‘탄핵반대천만인서명운동’에 돌입한 반사모 중앙회의 한 회원 역시 “한 나라의 대통령이고 국민 과반수가 뽑은 사람이다. 친인척도 아닌 비리일 뿐이다. 너무 일방적으로 대통령을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탄핵 반대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반사모 중앙회 측은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반사모 중앙회 신영길 회장은 “회원들 중에서 박사모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 강성 지지자들이 과도한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지금 보수단체들이 광화문에서 흔드는 태극기는 자신들이 코너에 몰려 ‘이대로 당할 수 없다’는 분위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촛불민심과는 분명 차이가 있고 우리가 함께 참여할 이유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한민국 반딧불’ 팬클럽(148명)에서는 ‘박사모+반딧불’ 연대 움직임도 일고 있다. 12월 17일 반딧불의 일부 회원들이 박사모 회원들과 함께 광화문 탄핵반대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 집회 전날 반딧불 회원 이 아무개 씨는 “내일 헌재에서 광화문으로 이동을 못하게 차벽을 친다니 헌재는 박사모에게 맡기고 애국시민들은 세종로 공원으로 집결하자”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이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의혹만 있을 뿐인데 촛불민심이 시국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원래 저는 박사모 가족 소속으로 활동해왔다. 어차피 반 총장의 지지자들도 우리와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가 공감대를 느껴 함께 태극기를 흔들었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힘을 합칠 수 있다”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