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서 삼성전자 쏠림현상이 극심해지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임준선 기자
최근 국민연금은 벤치마크 복제율을 폐지했다. 주식에 투자하는 기관투자자들은 자신들의 운용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 시장전체 수익률을 기준으로 삼는다. 다만 옥석을 가리는 차원에서 코스피 전체 대신 코스피에서 우량기업 200개만 따로 떼서 지수화한 지표인 코스피200을 기준으로 삼는다. 코스피200 시총은 약 1115조 원으로 코스피(1341조 원)의 83%에 달한다.
삼성전자 주가가 계속 상승해 최근 코스피200 내 비중은 23%에 육박하고 있다. 사상 최고치다. 삼성전자 주가는 2016년 1월 말부터 급등해 이후 주가상승률은 44%에 달한다. 같은 기간 코스피200은 9% 오르는 데 그쳤다. 시총으로 따지면 삼성전자가 약 112조 원 불어나는 동안 코스피200은 100조 원이 늘어났다. 삼성전자를 빼면 코스피200은 하락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시장수익률을 기준으로 삼는 펀드들은 코스피200 주요 종목의 보유 비중을 해당 종목이 증시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게 보유한다. 이후 펀드매니저의 판단에 따라 시장보다 비중을 높이거나 낮추는 방식으로 펀드는 운용된다. 시장수익률을 복제하려면 펀드 내 삼성전자 지분이 23%가 돼야 주가상승에 따른 수혜를 공유할 수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주주친화정책을 밝히고, 인적분할과 같은 지배구조 개편 방향을 제시했지만, 펀더멘털 차원에서 전년도 이맘때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2015년 3분기 말 삼성전자는 매출액 147조 원에 영업이익 20조 원을 기록했고, 지난 3분기 말에도 매출액 148조 원에 영업이익 20조 원을 기록했다. 자본총계도 181조 원과 180조 원으로 거의 같다. 이익개선 등 펀더멘털 개선이 아니라 투자자들의 가치평가(valuation)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는 돈의 힘으로 주가가 오른 셈이다.
익명의 펀드매니저는 “시장수익률을 기준으로 삼는 펀드라면 2016년에는 삼성전자 주식을 얼마나 확보했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 주가가 빨리 오를수록 시장 내 비중도 빠르게 높아진다. 기관투자자로서는 포트폴리오 내 삼성전자 비중이 시장 비중을 밑돌면 시장수익률을 밑돌 상황에 처한다. 결국 삼성전자 주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기관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더 담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2016년 9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자산 총액은 100조 원, 이 가운데 직접운용 부분은 53조 원이다. 47조 원가량은 외부 기관에 위탁해서 운용한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주식 1179만 주(지분율 8%)를 직접 보유 중이다. 9월 말 시가로 18조 8404억 원이다. 10월 이후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계속 올랐다. 국민연금이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2015년 4월 이후 변동이 없지만, 위탁운용기관을 통해 계속 사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이 복제율 폐지방침을 밝혔지만, 시장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삼성전자 주식을 담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는 변함이 없다.
문제는 반대의 상황이다. 시장수익률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돈의 힘으로 삼성전자 주가가 끌어올려졌지만, 반대의 경우 시장수익률을 지키기 위해 주식을 앞 다퉈 내다파는 투매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요 증권사들의 삼성전자 목표주가는 210만 원가량이다.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부문에서 견조한 이익이 나면서 2017년에는 분기당 영업이익 10조 원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여전히 글로벌 경쟁사와 대비했을 때 저평가돼 있다는 평가도 많다.
2012년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44%나 급등했고, 이 기간 코스피200은 10% 상승했다. 2016년과 비슷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도 자사주 매입 소각을 지속할 방침이다. 매물을 어느 정도 받아낼 여력은 있다.
삼성전자는 코스피200이 40% 하락한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낙폭이 19%에 그쳤다. 2008년 이후 8년간 연중 주가등락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13~2015년 3년간이지만 연간 등락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적은 없다. 급락 확률이 낮다는 뜻이다.
위험요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과 가전 부문 환경은 여전히 도전적이다.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원화약세가 가속화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차익실현 욕구가 강해질 수 있다. 투기세력 등이 증시를 통째로 흔들기 위해 시장 영향력이 절대적인 삼성전자를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특검 수사 변수도 남아 있다. 2012년보다 증시 내 삼성전자 비중은 더욱 높아졌다. 반면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증시 주요 대표업종 업황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는 뜻이다.
최열희 언론인
대형 증권사 또 무법증자…돈 싸움 부추기는 정부 2010년 금융위원회는 한국형 투자은행(IB)을 육성하겠다며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의 금융투자회사에 기업대출업무 등을 허용하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상위 5개사 자기자본이 2조 원대에 불과했다. 가계대출에만 몰두해 기업대출에 소홀한 은행 대신 증권사들이 자본을 더 쌓으면 기업 상대로 ‘대출영업’을 하도록 해주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채 이뤄지기도 전에 금융당국이 증권사들을 채근한 데 있다. 2011년까지 삼성, 대우, 우리투자, 한국, 현대, 당시 국내 5대 증권사들은 무려 3조 6000억 원의 자본을 확충했다. 법은 채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법 때문에 자본을 더 쌓는 ‘무법증자’가 이뤄진 셈이다. 대형 증권사들의 이른바 ‘무법증자’ 러시가 이어지면서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한국투자증권 여의도 본사. 일요신문DB 법 개정안은 2013년 초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그나마 금리하락기여서 증권사들은 쌓은 자본을 국고채 등 채권에 투자해 돈을 벌 수 있었다. 법 통과 이후인 2014년부터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투자해 돈을 벌었지만, 무늬만 ‘기업대출’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5년여 만에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증권사 자기자본을 3조 원, 4조 원, 8조 원으로 구분해 차별화된 혜택을 주는 ‘초대형 IB육성방안’을 발표했다.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의 초대형 IB는 어음을 발행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 기업대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기업을 상대로 한 외국환 업무도 가능해진다. 자기자본이 8조 원이 되면 은행예금과 유사한 수신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대출은 금융에서 가장 손쉽고, 안정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영업방법이다. 때마침 2016년 들어 NH투자증권은 NH증권과 우리투자증권 합병으로 자기자본을 4조 5900억 원으로 늘렸다. 미래에셋대우증권도 역시 합병(미래에셋+대우)으로 자기자본을 6조 7000억 원으로 불렸다. 합병인 까닭에 인위적인 자본확충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투자증권은 2016년 11월 2조 692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 자기자본을 4조 200억 원까지 늘렸다. 삼성증권도 12월 초 자사주 매각으로 자본을 늘린 데 이어 최근 유상증자 방침을 밝혔고, 현대증권과 합병한 KB증권도 곧 증자 계획을 공표할 예정이다. 현재 초대형 IB 육성을 위한 법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부의 정책능력이 사실상 정지된 상황이다 보니 차기 정부에서나 가능하다는 관측이 많다. 증권사들로서는 금리상승기여서 자본을 쌓더라도 당장 굴릴 곳이 마땅치 않다. 이른바 ‘노는 돈’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셈이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