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 한 달 만에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을 덮쳤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6형 AI) 피해 규모가 단 한 달 만에 2014년 6개월간 누적된 피해 규모를 넘어섰다. 2014년은 2016년 이전까지 사상 최악의 피해를 기록했던 해였다.
지난 11월 16일 전남 해남과 충북 음성에서 최초 신고가 접수된 이후 12월 21일 0시 기준 살처분된 닭‧오리 등 가금류는 약 2085만 마리(살처분 예정 포함)로, 하루 평균 60만 마리가 사라졌다. 지난 9월 기준 전국에 사육 중인 닭‧오리가 1억 6526만 마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12%가량에 달한다. 2014년 살처분된 가금류는 약 1400만 마리다. AI 바이러스가 짧은 시간에 상당한 규모의 피해를 남겼으며 여전히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 지역이 얼마나 더 확산될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사태가 커진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정부의 초동 방역 대처에 실패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사전에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골든타임’을 수차례 놓쳤기 때문.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 AI에 대한 정부의 준비 부족부터 늑장 조치, 허술한 대응, 책임 회피까지 총체적인 문제점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처럼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준비 부족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1월 7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 앞서 “오늘 브리핑은 현장 방역상황을 되짚어보고, 향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재발방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다짐의 자리”라며 “그동안 철새정보알림시스템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방역현장의 지도·점검을 강화하는 등 농가의 경각심을 고취해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달 뒤인 지난 22일, 농림축산식품부 AI 역학조사위원회는 중간조사 발표에서 “이번 AI는 당국의 부실한 관리 등 총체적으로 미흡한 조치 탓에 농가로 빠르게 확산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AI가 처음 발생한 건 2003년이다. 이후 13년 동안 AI는 총 9차례 발생했다.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처럼 사실상 AI 상시발생국이다. 하지만 정부는 앞서의 브리핑에서 밝힌 바와는 달리, 그동안 AI 확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온 열악한 농가시설이나 미흡한 방역의식을 점검하지 않았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입수한 지난 12월 12일자 농림부 역학조사결과 보고서를 보면, 2016년 양성으로 확인된 종오리 농장 12곳의 경우 종사자들이 오리 관리, 집란·종란 운반 등의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업무 전환 시 소독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가 100%였다. 육용오리의 경우 69.5%의 농장이 비닐하우스 축사에서 키워지고 있었다. 건물이 아닌 비닐하우스는 쥐 등 외부 동물에 노출이 쉽다. 철새의 분변 등을 막아줄 그물망 등 설비가 오래되거나, 농장 경계 불분명‧출입 차단 표시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또 AI가 확산된 이후에도 농가를 드나드는 계란 중간유통 차량에 대한 소독이 미흡했다거나, 방역 현장에 음식 배달원 등 외부인이 자유롭게 출입하는 등 관리‧감독도 소홀했다. 모두 매년 AI가 발생할 때마다 지적됐던 부분들이다. 정부는 그동안 충분히 개선‧보완할 수 있었지만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 늑장 대응
이번 고병원성(H5N6형) AI는 지난 10월 28일 충남 천안 철새 분변에서 처음 발견됐다. 농림부는 2주일이 지난 11월 11일 확진 판정을 내렸다. 농림부 관계자는 “분변을 채취한 건국대 연구팀으로부터 11월 11일 보고 받았다. 연구팀이 연구 목적으로 채취한 분변이라 보고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언제 떨어진 분변인지, 해외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돼 국내에 유입된 철새의 분변인지, 반대로 국내 농가 등에서 바이러스가 옮은 경우인지 등 여러 가능성과 변수가 많았지만 정부는 방역대를 시단위로만 설정한 뒤, 인근농가에 ‘철새 주의’ 문자를 보내는 수준에 그쳤다. 현장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당시 정부가 보낸 문자를 보고 적극적으로 AI 예방 조치를 취한 농가는 거의 없었다.
또한 11월 16일 농가에서 처음 의심 신고가 접수된 이후 범정부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축한 건 26일이 지난 12월 12일이다. AI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한 단계 상향된 건 한 달 뒤인 12월 15일이다. 그러는 동안 AI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으로 확산됐고, 살처분된 가금류는 2000만 마리를 넘어섰다.
# 책임 회피와 은폐
AI가 확산되면서 정부는 ‘철새’와 ‘바이러스’ 탓으로 돌렸다. 해외에서 유입된 철새가 국내에 바이러스를 옮겼고, 그 바이러스는 이례적으로 확산 속도가 빠르고 독성이 강하다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입장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상희 충남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초 발병은 충북 음성과 전남 해남이다.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동시에 발병한 점으로 볼 때, 국내에 잔존해 있던 바이러스가 변형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순히 철새 탓으로만 돌리는 건 책임회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또 논란이 불거질 것 같은 부분은 숨기기도 했다. 지난 11월 25일 AI 의심신고를 한 세종시의 대규모 산란계 농장이 신고 직전에 계란 288만 3000개를 출하했고, 이 가운데 274만 9000개가 시중에 유통됐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알리지 않았다. 유통된 계란은 철저한 소독을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앞서의 사실을 알리지 않은 건 은폐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한 당일, 살아 있는 토종닭(생닭) 유통을 허용했다가 일부 지방자치단체 반대로 이틀 뒤 다시 금지한 것 역시 공식 발표 없이 이뤄졌다.
전국 거점 곳곳에서 계란 유통 차량 등 외부 차량 소독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상당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 AI 사태 ‘시작’ 단계에 불과
문제는 이번 AI 사태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확산된 H5N6형은 겨울철에 왕성하게 활동하는 바이러스라 2017년 봄까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지난 12월 13일 경기도 안성천 주변 야생조류 분변에서 지난 2014년 유행했던 또 다른 AI 바이러스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번에 확산된 H5N6형 AI는 잠복기가(3~7일) 짧아 증상이 빠르게 나타난 것과 달리, 안성에서 검출된 H5N8형 AI는 잠복기가 최대 21일로 길어 감염 증상이 늦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정부는 12월 22일 H5N8형 바이러스가 추가로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잠복기가 긴 만큼 1월 초중순까지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AI 발생 후 달걀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최근 중간 유통 상인의 ‘매점매석’으로 인한 가격 상승이라는 의혹이 나오고 있지만, 분명한 건 가금류가 대규모로 살처분 된 여파다. 실제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21일 거래된 달걀 평균 가격은 30개 기준 6866원으로 농가에서 AI 확진이 처음 나왔던 지난 11월 17일 5340원보다 28.5%가량 올랐다.
특히 AI 발생 지역에 대한 달걀 출하가 오는 12월 27일까지 제한되면서 공급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여,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대한양계협회가 집계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하루 달걀 수급량은 4000만 개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200만 개가량 공급이 초과되는 상황이었다가 최근 1000만 개가량 공급이 부족한 상태로 바뀌었다.
AI가 발생한 농가에 지급되는 보상금도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2014년 1400여만 마리가 살처분되면서 1017억 원의 보상금이 지급됐던 비율대로 따지면, 2000만 마리가 살처분된 12월 21일까지만 해도 보상금은 무려 1519억 원에 달한다. 날씨가 포근해지는 내년 3월까지 AI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점, 보상금만으로는 농가의 손실을 모두 메꿀 수 없다는 점에서 보상금 규모와 추가 비용 등 향후 발생할 사회적 비용은 아직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백신 불가능? 기존 백신으로도 치료 가능” 가금류에 대한 대규모 살처분이 진행되고 있는 데도 “H5N6형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백신 사용이 올겨울엔 불가능하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기존 개발된 백신으로도 접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AI 전문가인 서상희 충남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H5N6형이 기존에 개발된 백신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12월 20일 농림축산검역본부의 “H5N6형은 올겨울 백신 접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발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번 AI 사태에서 특히 백신 사용이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 위기경보 ‘심각’ 단계에서 정부는 AI 백신 접종을 고려할 수 있지만, 그동안 정부는 백신 사용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남겨뒀다. 변종 바이러스가 생길 가능성이 있거나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마리당 가격이 소나 돼지에 비해 낮은 가금류에 백신을 투입하면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는 등 부작용, 행정비용, 실천가능성 등을 종합할 때 적절치 못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살처분 규모가 커지고 학계에서도 백신 사용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최근 정부가 뒤늦게 백신 카드를 꺼내 들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지난 20일 ‘AI 백신 항원은행’ 구축 계획을 발표하면서 “향후 선제적 대응을 위해 백신을 미리 개발, 보관해 둘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농림부는 올겨울 백신 접종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농림부 관계자는 앞서의 발표에서 “H5N6형은 이번에 유입됐기 때문에 백신 접종이 결정되더라도 최소 3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H5N6형 백신은 세계적으로도 개발된 바 없다”며 “당장 접종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4월 이후가 되는데, 역대 AI 상황을 보면 겨울 철새가 한반도를 떠나면 AI 상황도 종료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백신 관련 내용을 내부적으로 논의는 했지만, 접종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 시점에서는 어떤 타이밍에서 시행하겠다는 게 전혀 결정된 것이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의 서 교수는 정부 발표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지난 2014년 발생한 H5N8형과 최근 확산되고 있는 H5N6는 같은 H단백질을 가지고 있고, N단백질만 다른 바이러스로 구성돼 있다”며 “AI의 병원성을 결정하는 것은 거의 98% 이상이 H단백질이다. 따라서 앞서의 H5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들의 병원성은 거의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N단백질은 저병원성이라 백신이 필요 없다. 세계 어느 나라도 N단백질에 맞춰 백신을 개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H5N6형’에만 맞는 백신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하지만 H5 백신은 지난 2014년 H5N8형이 유행했을 당시 이미 개발됐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H5N6형도 같은 H5 유형이라 앞서의 백신으로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연구 결과는 이미 중국에서 발표된 바 있으며, 충남대 연구팀에서도 실험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정부는 세계동물기구(OIE) 기준으로 AI 바이러스 단백질인 ‘H’는 최대 18가지, ‘N’은 최대 11가지로, 이론상 총 198가지의 AI 바이러스가 조합될 수 있어 AI 백신 개발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해 왔다. 그런데 서 교수는 이러한 설명이 모두 과학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한 것이다. 서 교수는 또 백신 개발-제작-접종까지 최소 3개월이 걸린다는 정부의 설명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체에 사용된 신종플루 백신도 한 업체에 의해 두 달 만에 공급됐다. 국내에만 5개의 동물백신 업체가 있어, 의지만 있다면 백신 제작‧공급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