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연 전 대한축구협회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일요신문] 대한민국 축구 행정을 총괄하는 대한축구협회가 전·현직 임원들의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랫동안 축구계에 몸담아 오며 ‘축구 대통령’이라 불리는 협회장 자리에 올랐던 인물도 공금을 사적으로 집행해 진상 조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 드러난 협회 고위직의 비리는 전 집행부 시절 일어난 것으로 협회를 향한 비난이 그들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 회장이 2015년 4월부터 자문으로 위촉돼 최근까지 수천만 원의 연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문제로 지적됐다.
축구협회 공금을 사적으로 집행한 인물은 2009년부터 4년간 회장으로 협회를 이끌었던 조중연 전 회장이다. 조 전 회장은 동시대 선수 출신으로는 드물게 행정가의 길로 접어들어 회장 자리에까지 올라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부분도 많다. 그는 회장 재임 시절 월드컵 원정 16강 달성, 여자 17세 이하 월드컵 우승, 유소년 리그 정착 등의 업적을 이뤘다.
반면 조 전 회장의 실책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는 조광래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밀실 경질, 후임 최강희 감독 부임 강권, 박종우 독도 세리머니 관련 굴욕 외교 등이 꼽힌다. 이처럼 그는 국민적 관심이 쏠린 국가대표팀이나 올림픽대표팀과 관련된 실책에 많은 팬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지난 12월 7일에는 조 전 회장의 비리 혐의에 대한 조사결과가 발표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비리신고센터는 조 전 회장이 해외 출장 시 부인을 동반했고 비용을 축구협회 공금으로 집행했음을 발표했다.
또한 문체부는 조 전 회장이 협회 자문위원으로 임명돼 보수와 차량, 전담기사 등이 지급됐음을 밝혔다. 문체부는 “매월 500만 원의 보수 등 지난 17개월간 총 1억 4400만 원에 이르는 비용이 부적절하게 지급됐다”고 밝혔다. 자문이라는 명목으로 보수를 받았지만 조 전 회장의 자문 실적은 전무하다고 문체부는 전했다.
축구협회는 문체부의 이러한 지적에 “조중연 전 회장은 새 집행부 출범에 따라 자문 임기가 종료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후 협회는 지난 12월 20일 황선홍·하석주 등 스타 감독을 이사에 발탁한 새 집행부 명단을 발표했다. 협회 관계자는 “새 집행부가 출범하며 조 전 회장의 자문 임기는 자동적으로 끝났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는 조 전 회장의 부정만 드러난 것이 아니다. 전·현직 임원 18명이 유흥주점, 안마시술소, 노래방 등에서 무분별하게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난 것. 이들이 사용한 금액은 약 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체부는 적발된 인원에 대해 부당사용 금액 환수, 징계 조치를 내리고 수사를 의뢰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경찰청에 조사 자료를 제출하고 수사를 의뢰한 상태”라며 “경찰 조사에 따라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추가 혐의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전에 다른 사건은 경찰에서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적도 있다. 신고센터가 수사권이 없다보니 조사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센터로 접수된 축구협회의 다른 문제점들에 대해 “종목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제보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전부를 파악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이번에 발표된 비리와 같은 깊이로 조사 중인 사안은 없다”고 설명했다.
새 집행부 출범 이후 첫 이사회를 연 대한축구협회. 사진출처=대한축구협회 공식 홈페이지
축구협회는 이 같은 문체부의 발표에 발 빠르게 사과했다. 축구협회는 발표가 있었던 당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과문에서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부적절한 관행과 내부 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발생한 과거 행위지만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축구협회는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사항으로 “법인카드 실명제, 클린카드 제도를 도입했다”며 “정몽규 현 회장은 무보수로 재직 중이고 업무활동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클린카드 제도는 공식 직무수행과 관련이 적은 단란주점, 골프장 등 특정 가맹점에서 법인카드의 사용이 제한되는 제도다. 이외에도 축구협회는 채용 시 공개채용 절차를 거칠 것을 약속했다. 문체부 조사에서 직원 채용과 관련한 문제도 지적 받은 바 있다.
축구협회는 2013년 정몽규 회장의 부임 이후 나름의 정화작용을 위해 노력해왔다. 정 회장은 집권 2년차인 2014년 협회 내 윤리분과위원회를 신설했다. 협회 관계자는 “분과위원회는 협회 상근직은 아니지만 정기회의 외에도 현안이 있을 경우 긴급회의를 소집하기도 한다”며 “실무적인 일보다 컨트롤타워와 이사회에 안건을 제안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윤리분과위원회에서는 감사제도, 캠페인 등 협회 내 윤리와 관련된 전반적 업무를 모두 다룬다”고 전했다.
윤리위는 창설 이후 활동의 일환으로 협회 홈페이지 내 온라인 신문고를 개설하기도 했다. 협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전부터 운영되던 게시판에 개인정보 보호 기능이 강화된 것으로 완전히 새로운 형태는 아니다”라며 “온라인 신문고에서는 행정부터 유소년 경기까지 모든 분야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다. 제보 이후 문제가 해결된 실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축구협회는 집행부 25명 중 절반이 넘는 14명을 새로 영입하며 변화를 줬다. 또한 축구장 내 불미스러운 일을 없애고자 선수, 지도자, 심판, 팬이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리스펙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한국 축구가 이번 문체부 조사와 집행부 개편을 계기로 ‘리스펙트’ 받는 협회로 거듭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