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뿐 아니라 정 사장이 계획한 ‘6대 프로젝트’가 무사히 마무리되자 신세계 안팎에서는 정용진·정유경 남매가 차기 신세계 그룹 총수자리를 두고 경쟁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 사장이 진행한 6대 프로젝트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센텀시티점 증축, 시내면세점 오픈, 김해·하남·대구 백화점 오픈’을 일컫는 것으로서 정 사장은 2016년 이를 모두 마무리하면서 단순히 ‘재벌 오너의 딸’이 아닌 경영자로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 잇단 프로젝트 성공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자신감이 높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던 정 사장이 2016년 12월 15일 대구 신세계 백화점 오픈식 날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정 사장이 프로젝트를 잇달아 성공시키면서 신세계 내부에서 입지가 커지고 경영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한다. 나아가 신세계의 남매 간 분리경영이 시작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신세계의 분리경영은 2011년 신세계와 이마트가 법인 분리되며 조짐을 보였다. 이후 사장단회의를 별도로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백화점 사장단회의에 정 부회장이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용진 부회장-마트, 정유경 사장-백화점’ 구도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이미 계열분리라고 생각할 만큼 독립적으로 업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신세계의 남매경영은 2016년 4월 정용진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신세계 지분 7.3%를 정 사장의 이마트 지분 2.5%와 교환하면서 그 조짐이 보였다. 현재 ㈜신세계 최대주주는 이명희 회장으로 18.2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정유경 총괄사장이 지분 9.83%를 보유해 어머니 이 회장의 뒤를 잇는다. 반면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 지분이 없다.
정유경 사장의 경영능력이 부각되며 추후 정용진 부회장과 경영권을 놓고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준필 기자
재계에서는 이명희 회장이 그룹 경영권 승계에 앞서 남매의 경영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정 부회장과 정 사장에게 이마트와 신세계 주식을 같은 비율로 맞춰준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여전히 이명희 회장이 굳건하게 그룹 경영을 챙기고 있다”며 “(지분구조는) 이 회장이 남매의 경영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정 부회장과 정 사장의 경쟁이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정 부회장과 정 사장이 서로 공격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는 것도 경쟁 심화의 일환으로 본다.
신세계 내부에서는 정 부회장과 정 사장의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다. 정 사장이 많은 애정을 쏟은 대구신세계 백화점의 프리오픈 기간에 정 부회장이 방문해 매장을 둘러보고 SNS에 홍보하는 등 지원사격을 한 것만 봐도 남매지간이 얼마나 돈독한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신세계그룹의 경영권 승계나 계열분리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명희 회장이 여전히 그룹 경영을 직접 챙기고 있는 데다 그룹 내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또 계열분리를 위해 이명희 회장이 보유 주식을 증여하려면 수천억 원의 증여세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준비가 덜 된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과 정 사장이 그룹 내에서 맡은 역할이 다르다”며 “현재로서는 각자 분야에서 역량을 펼치고 경영능력을 평가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계열분리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으며 너무 먼 얘기”라고 일축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리틀 이명희’ 정유경은? 실무보다 큰 그림…명품 편집숍 안착시켜 ‘조용한 공격 경영, 디자인 경영’. 정유경 신세계백화점부문 총괄사장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1972년 생인 정 사장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학과를 나와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수학했다. 이 때문인지 패션에 대한 센스와 감각적 안목이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정 사장을 가리켜 흔히 ‘리틀 이명희’라고 부르는 이유는 경영 스타일이 이 회장과 비슷해서다. 이명희 회장은 경영의 세세한 실무를 챙기는 대신 전문경영인의 역량을 존중하고 그룹의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을 주로 챙겨왔다. 정 사장 역시 같은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정 사장은 또 직원들에게 ‘세상에 없던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라고 주문한다. 정용진 부회장이 SNS를 통해 고객과 활발히 소통하고 실무자들에게 직접 보고를 받을 정도로 격의 없고 활발한 사람이라면 정 사장은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격이라고 전해진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정 사장에 대해 “전문경영인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창의적 부분을 강조하고 역발상으로 사업의 큰 그림을 구상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인지 정 사장은 신세계에서 패션·백화점·면세점 등 창의성과 감각을 중요시하는 사업을 주로 이끌어왔다. 정 사장은 국내 명품시장에서도 큰 변화를 불러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1996년부터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아르마니, 돌체앤가바나 등 해외 유명 브랜드를 수입해 사업을 영위해왔다. 또 국내 최초로 명품 편집매장인 ‘분더샵’을 들여와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명품 편집매장의 경우 매장 디자인과 상품 구성에 감각적인 안목이 필요한데, 정 사장이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사장은 최근 화장품과 마카롱카페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