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으로 조기 대선이 현실화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 민심은 19대 대선 승부를 가르는 마지막 분수령이다. 여야 대선 잠룡들이 저마다 한 달 승부수에 돌입한 까닭이다. 임기단축 개헌을 시작으로, 결선투표제,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 제3 지대 이합집산 등 정치권 새판 짜기의 총성은 이미 대선 정국을 덮쳤다.
안철수 문재인.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가변성’이다. 헌법재판소(헌재)의 탄핵 심판 결정에 따라 ‘벚꽃대선’, ‘여름대선’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1년간의 장기 레이스는 없다. 대선 시기와 관련한 상수는 ‘헌재 결정 후 60일 이내’ 대선 실시밖에 없다. 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형성된 3당 체제는 비박(비박근혜)계 발 정계개편으로 4당 구도로 판이 커졌다.
‘도로 친박(친박근혜)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비박신당인 ‘개혁보수신당’(가칭) 구도다. 1987년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 호남, 충청을 할거한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구도인 셈이다. 그때와 다른 점은 ‘체제의 고착성 여부’다. 당시에도 ‘양김 단일화’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극심한 지역구도 탓에 섣불리 판을 깨기 어려웠다. 현 구도는 언제든지 이합집산이 가능한 느슨한 체제다. 그만큼 정치적 변곡점마다 돌출 변수가 촉발, 전대미문의 회오리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정치권의 눈은 여야 대권 잠룡들에게 쏠린다. 최대 이슈메이커인 반기문 유엔(UN)사무총장의 승부수는 ‘임기단축 개헌’이다. 차기 대통령 임기를 20대 국회의원 임기(2020년 5월 말)와 맞추는 게 핵심이다. 이 경우 19대 대통령 임기는 3년으로 줄어든다. 일종의 ‘충격요법’인 임기단축 개헌은 이번 밥상머리 민심의 최대 화두가 될 전망이다. 이 카드가 파괴력을 지닌 결정적 이유는 여론조사 때마다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집단으로 선정되는 ‘정치권의 기득권 포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전 세대·지역·계층에 소구력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반 총장은 11월 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새누리당 충북 지역 경대수(충북 증평·진천·음성), 박덕흠(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 이종배(충북 충주) 의원을 만나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다. 19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며 “대선 전 개헌이 어렵다면 정권 초기에 개헌을 해야 한다. 임기 단축이 필요하면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의원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 시 임기단축은 필수다. 앞서 ‘호헌파 vs 개헌파’ 구도에서도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등 대권 잠룡 등이 임기단축 개헌 추진에 힘을 실었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반 총장이 1944년생으로 올해 만 73세다. 3년 임기단축이 본인에게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 총장이 제3 지대로 가면, 정진석 전 원내대표 등 충청권 의원들이 집단 탈당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반 총장 측은 김숙 전 유엔대사(외무고시 12회)·김원수 유엔 사무처장(외시 12회)·곽영훈 사람과환경 회장 등이 정책 라인, 정 전 원내대표를 필두로 심윤조 전 새누리당 의원(외시 11회)·박진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이 정무 라인을 맡고 있다.
임기단축 개헌은 ‘블랙홀 이슈’다. 이는 강한 휘발성을 내포,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약 2억 8000만 원) 수수 의혹 ▲아들의 SK텔레콤 미국 뉴욕 사무소 특혜 채용 의혹 ▲사측의 현지 골프장 예약 의혹 등 3대 아킬레스건에 대한 ‘혹독한 검증’을 정면 돌파할 수 있는 카드다. 이뿐만이 아니다. 성완종 게이트 연루설, 국내 선거 출마에 관한 UN총회 결의안 위반 논란도 잠재울 수 있다.
이 카드의 위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정계개편 교집합’과 ‘군소 후보들의 자연스러운 2선 후퇴’도 가능하다. 이원집정부제 개헌 시 ‘외치 반기문’을 필두로 내치에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을 배치할 수 있다. 이른바 ‘반·김’ ‘반·박’ ‘반·손’ 연대가 가능한 셈이다. 김 전 대표(1940년)나 박 의원(1942년), 손 전 대표(1947년) 모두 70대 초중반이다. 이들도 이번 대선이 사실상 마지막 판이다.
‘중간지대 빅텐트’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 총장이 3년 임기를 내걸고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경우 친박(친박근혜)·친문(친문재인)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시나리오다. 이른바 ‘반기문·유승민·안철수’ 간 연대 플랫폼이다. 내각제 개헌의 경우 대마불사, 즉 판을 키우는 쪽이 내각 실권을 잡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반 총장이 충청당을 만든 뒤 ‘당 대 당 통합’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87년 체제 극복을 명분 삼아 반 총장을 3년짜리 대통령으로 추대한다면, 나머지 주자들은 자연스럽게 진검승부의 장인 20대 대선 쪽으로 선회할 수 있다. 이질적인 제3 지대 세력 내부가 의외로 일사불란하게 ‘권력 분점’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 한 의원은 “임기단축 개헌이 제3 지대 정계개편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파급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전 대표의 1월 승부수는 ‘섀도 캐비닛’ 연대다. 조기에 섀도 캐비닛을 구성, 사실상 ‘러닝메이트 구도’로 대세론을 이어나간다는 복안이다. 2월 당내 대선 룰 확정에 앞서 섀도 캐비닛을 구성한 뒤 2월 당내 경선 땐 당 내부 주자 흡수, 이후엔 당 외부 주자를 흡수하겠다는 얘기다. 이 경우 ‘문재인·안희정’ 간의 권력분점을 꾀할 수 있다. 여기엔 이를 고리로 야권통합 그림을 만들 수 있다는 셈법도 깔렸다. 한 중진 의원은 “김대중(DJ)·노무현 정신인 야권통합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상처만 남은 ‘문·안’(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모델이 아닌 권력분점을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추진, 범야권을 흡수하는 전략이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이번 판은 인위적인 단일화 국면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문 전 대표 측은 ‘섀도 캐비닛’ 연대가 현실화될 경우 청와대 및 정부조직 개편안 공개를 할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에서는 문 전 대표의 승부수 순항 여부와 관련해 이른바 ‘이재명 학습효과’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임기단축 개헌 등 정치적 국면에서 다크호스 이재명 성남시장이 ‘반문(반문재인)연대’에 나선 이후 지지율이 하락하자, 이후 결선투표제와 관련해선 박원순·이재명 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가 문 전 대표의 ‘선 국회 논의’에 찬성했다. 결선투표제 의기투합으로 대선 전 결선투표제 도입을 위한 8인 회동을 제안한 안철수 전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승부수가 불발로 끝나자, 당 내부에선 “이재명 효과가 아니겠냐”라는 말이 나왔다. 이에 따라 1월 정국은 반 총장의 ‘임기단축 개헌’과 문 전 대표의 ‘섀도 캐비닛 연대’ 구상이 강하게 맞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개헌파의 ‘역습’이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문 전 대표가 개헌과 결선투표제를 왜 받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최소한 야권 간 ‘공동 개헌안’ 발표를 통해 수권정당화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헌 발 정계개편에 따라 친문 세력의 고립을 예고한 대목이다. 개헌 이슈가 문 전 대표를 궁지로 몰 경우 애초 소극적이었다가 ‘국회 논의’로 변경한 결선투표제 이슈처럼 임기단축에서도 입장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비문(비문재인)계 한 의원은 “친문계가 3자 필승론, 4자 필승론을 주장하면 안 된다”며 “지금이라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헌이든 통합이든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의 승부수는 ‘결선투표제’다. 이는 9회 말 투아웃 역전 카드다. 승부수였던 8인 회동 제안이 무위로 끝났지만, 이를 앞세워 ‘1차 손학규 연대’를 시작으로 정계개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이 10% 안팎에 불과하지만, 쓸 수 있는 카드는 많다. ‘안·손 연대’ 이후 추가로 개혁보수신당 및 반 총장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안철수계는 ‘독자 노선’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다. 그간 대선에서 패배한 제3 후보의 당이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 전 대표도 독자 노선만 고집할 경우 패전투수가 될 수밖에 없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안 전 대표는 먼저 국가운영 로드맵을 선보여서 아마추어 리더십에 대한 비판을 불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조만간 신성장동력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진영 관계자는 “이번 대선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만큼, 의외의 변수가 많이 나올 수도 있다”면서 “여야 잠룡의 디테일 승부가 1월 내내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
2012년 대선 ‘설 민심’ 어땠나…문안 승부 그때 결판났다 2012년 임진년 새해 벽두 대선 삼국지 구도가 달아올랐다.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 대표, 무소속 후보였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 간 삼각파도가 대선 정국을 덮쳤다. 기존의 ‘박근혜 대세론’과 새 정치의 열망은 담은 ‘안철수 현상’이 강하게 맞붙는 가운데, 제1야당인 민주당과 혁신과통합,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3자 통합으로 출범한 민주통합당이 ‘문재인 대안론’에 불을 지폈다. 실제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012년 1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월 1주차(2일∼6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3750명 대상·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6%포인트) 다자 구도 결과, 박근혜 29.2% > 안철수 27.5% > 문재인 8.7% 순이었다. 그해 설 연휴(1월22일∼24일) 직후인 2월 1주차(1월30일∼2월3일까지 표본 수 및 오차범위 동일) 다자구도 조사에서는 박근혜 31.2% > 안철수 21.2% > 문재인 19.3%로 집계됐다. 대선 삼각 축의 순위 변동은 없었지만, 설 연휴를 거치면서 제1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 결집한 셈이다. 안 전 대표와 문 전 대표의 골든크로스(지지율 역전 현상)는 딱 2주가 걸렸다. 2월 3주차 다자 구도 결과를 보면, 박근혜 31.6% > 문재인 21.5% > 안철수 19.9%였다. 이후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는 범야권 지지층 및 중도층 경쟁에 나섰지만, 결국 안 전 대표의 후보 단일화를 위한 대선후보직 사퇴하면서 양자의 승부는 막을 내렸다. 설 민심 전후 시점의 지지율 수치보다 ‘추세’가 중요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치권 안팎에선 1월15일 귀국하는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의 지지율 추세에 따라 ‘반기문 vs. 문재인’ 구도의 설 민심 승자가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1월3일 오후 2시 탄핵 심판 첫 변론기일을 진행하며 속도전에 나섰다. 헌재 결정에 따라 이른바 ‘벚꽃 대선’이 펼쳐질 수도 있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조기 대선 승자의 운명은 반 총장의 지지율에 달렸다”고 말했다. 한편 위 여론조사는 휴대전화와 유선전화(휴대전화 20%·유선전화 80%) 임의걸기(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조사했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참고하면 된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