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6%다. 정부가 성장률을 2%대로 제시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청년실업률이 월별 최고치를 다섯 차례나 경신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5~29세 실업률은 8.2%로, 전년 동월보다 0.1% 상승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11월(8.8%) 이후 가장 높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경제전망도 어두운 가운데, 취업난은 더욱 가중될 조짐이다.
이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커뮤니티 등에서는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가난한 취향’이 유행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청년층이 빈곤해짐에 따라 청년층이 누리는 문화가 저렴한 쪽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한 트위터리안은 “인형 뽑기방, 핫도그 전문점, 편의점 메뉴가 유행하는 것은 한국의 헬조선식 유행이다. 해가 갈수록 유행이 가난해지고 있다. 가게들이 수없이 망하고 그 자리에 새 가게가 들어서기 전까지 빈자리에 인형 뽑기방들이 들어선다. 인형 뽑기는 몇천 원으로 단순한 재미를 즐길 수 있는 가난한 여가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게시물은 5600번 리트윗되며 누리꾼들의 큰 공감과 관심을 얻었다.
서울 명동에 위치한 ‘뽑기방’. 10평 남짓한 공간에 수십 대의 인형뽑기 기계가 진열돼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측은 “지자체마다 뽑기방을 분류하는 기준이 다르고, 상호에 따라 분류하기 때문에 상호를 달리한 뽑기방까지 합하면 실제로는 더 많은 뽑기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뽑기방’에서는 얼마 전 증강현실(AR) 모바일 게임으로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을 비롯해 유명 애니메이션 캐릭터 인형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인형이나 피규어의 종류에 따라 가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1000~4000원 선이면 게임도 즐기고, 운이 좋으면 원하는 인형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유튜브 등에는 인형 뽑기 공략법을 소개하는 동영상도 등장했다. 한 유투버가 인형 뽑기 비결을 소개한 동영상은 80만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서울 중구 명동에서 뽑기방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가게가 명동에 위치해 평일에는 외국인들이 다수 방문하지만, 주말에는 한국인들도 많이 방문한다. 전 연령층이 오는 편인데, 특히 커플이 많이 온다. 미리 전화하고 일부러 찾아오는 마니아층도 꽤 있다”고 전했다.
뽑기방 애용자 김수환 씨(31)는 “번화가에 나올 때마다 거의 매번 뽑기방에 들른다. 새로운 인형이 있는지 구경하러 갈 때도 있고, 마음에 드는 귀여운 인형이 있으면 게임을 한다. 얼마 전에는 포켓몬스터 캐릭터 ‘파이리’를 뽑고 싶어서 몇 번씩 한 적도 있다. 한번 방문하면 평균 1만 원 정도를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뽑기방과 더불어 동전노래방도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는 추세다. 500원이면 노래 두 곡을 부를 수 있는 동전노래방은 저렴한 가격에 유흥을 즐길 수 있고, 혼자 방문하더라도 거리낌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노래방 기계 부스가 여러 대 설치된 동전노래방에는 지폐를 500원짜리 동전으로 교환하는 기계와 음료수 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최근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라 부담 없이 간편하게 ‘혼놀’(혼자 노는 것)을 즐기고자 하는 청년층이 많이 찾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략 1년 6개월 전부터 동전노래방이 성행했다. 체인점도 여럿 생겼고, 여전히 창업 문의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 젊은 층들이 유흥을 즐길 방법이 거의 없어 동전노래방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젊은 층을 상대로 현금장사를 하는 것이라 업주 입장에서도 운영이나 관리가 쉽기 때문에 가게가 많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큰 인기를 얻은 편의점 레시피인 ‘마크정식’. 청년층은 편의점 음식을 활용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고, 이를 SNS 및 온라인커뮤니티에 인증한다. 사진출처=인스타그램
최근 뽑기방, 동전노래방과 함께 청년층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는 것은 저렴한 먹거리다. 번화가 곳곳에 값싼 거리 음식과 무한리필 음식점, 1리터 대용량 음료 전문점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SNS에서는 1000원짜리 핫도그나 6000원짜리 대왕 카스테라, 편의점 메뉴를 활용한 ‘마크정식’ 등의 ‘인증샷’이 게재되고 있다.
대학생 도상영 씨(27)는 “거리 음식과 편의점 음식, 무한리필 음식점을 자주 이용한다. 무한리필 음식점은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도 원하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어 찾게 된다. 1000원짜리 핫도그 등 거리 음식과 편의점 음식의 경우 가격이 저렴하기도 하고, SNS에서 유행하기 때문에 인증샷을 남기는 재미도 얻을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11년 일본 사회에서 눈에 띄게 증가했던 ‘편의점족’도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포착됐다. 1인 가구의 증가와 경제난에 따라 등장한 ‘편의점족’은 도시락이나 반찬을 편의점 등에서 사다 먹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혼밥족’으로 불리기도 한다. ‘편의점 혼밥족’의 등장과 더불어 편의점 음식을 이것저것 구매해 자신만의 요리법으로 섞어 먹는 모디슈머(창의적 소비자)들의 ‘편의점 레시피’도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인기를 얻은 편의점 레시피는 컵 떡볶이와 스파게티 컵라면, 소시지, 스트링 치즈를 조합한 ‘마크정식’이다. 맵고 짠 자극적인 편의점 음식으로 ’나트륨 폭탄‘이라는 오명을 얻었으나 사진을 게재하는 SNS인 인스타그램에만 9400여 개가 넘는 인증샷이 게재돼 있으며,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에는 2만 4100개의 관련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 임희수 연구원은 “전 세계적인 불황 여파로 세계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소비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경향은 4~5년 전부터 지속돼 왔다. 그러나 ‘가성비’는 청년층에게 이미 지나간 소비 기준이다. 2017년도 한국 20대의 소비 트렌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자기만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나성비’다. 기존 ‘가성비’라는 구매 기준에 ‘능동적인 자기만족’이라는 기준이 추가된 것이다. 새로 나온 디저트나 음료를 맛보기 위해 소위 ‘편의점을 털러’ 가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연구소에서 예측한 올해 청년층의 소비성향 키워드는 ‘겟꿀러’다. ‘겟꿀러’(get+꿀+er)란 20대가 자신에게 완전 이득이 되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인 ‘꿀’을 사용해, 자신만의 꿀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 단순히 저렴하고 양 많은 것을 선호했던 지금까지의 소비 경향에서 벗어나, 어떤 물품을 구매함으로써 본인이 취할 이득을 꼼꼼히 따져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