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리스트의 최종본에는 세월호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거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지 선언을 한 인사 등 무려 9500여 명의 문화예술인의 이름이 올라 있다. 그 가운데 리스트에 오른 유명 배우로는 송강호를 비롯해 정우성, 김혜수, 하지원 등이 거론됐다.
송강호, 김혜수 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세월호 특별법제정을 공개적으로 촉구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두 사람은 지난 2014년 9월 영화인 1100여 명과 함께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3차 합의안을 비판하며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제정을 촉구하고, 같은 기간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노란 리본 달기 운동과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송강호와 김혜수는 세월호 참사 당시 세월호 특별법제정을 공개적으로 촉구한 바 있다. 사진제공=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영화인준비모임
김혜수는 참사 이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개인적으로 찾아 피해자들을 추모했으며, 개인 SNS에 “곁에서 함께 하지 못해 너무 미안합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마음을 보탭니다”라며 리본이 그려진 노란 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또한, 같은 해 추석에는 팽목항에서 명절을 보내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송편 150인분을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송강호는 2014년 5월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변호인>으로 영화 부문 대상을 받고, 수상 소감에서 “얼마 전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참담한 사건으로 소중한 생명을 희생 당하신 분들의 삼가 명복을 빈다. 가족분들에게도 힘과 용기를 잃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앞서 송강호는 2013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에 출연해 노 전 대통령 역할을 맡은 바 있다. 당시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변호인> 출연 후 차기작 섭외가 끊겼다. 데뷔 이후 이런 경우가 처음이다. 자연스럽게 쉬게 될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조금 시간이 지나서 찾아뵙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출연작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국민배우 타이틀을 달았던 송강호가 <변호인> 출연 후 섭외가 끊긴 것은 사실상 외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함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배우 정우성은 지난 11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사이다 발언을 했다. 그는 영화 <아수라>의 무대인사에서 극중 대사를 활용해 “박근혜 앞으로 나와”라고 외쳐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앞서 그는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기득권에 저항하면 리스트에 오른다. 자유롭게 표현하고 살아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우성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는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송강호, 하지원과 함께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예술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영화 <변호인>의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제기됐다. 그는 <변호인>의 시나리오를 읽고 꼭 출연하고 싶다고 출연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으나 맞는 배역이 없어 출연이 불발됐다. 이후 정우성은 투자자로서 시나리오에 대한 자문을 돕는 등 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며, 영화 <변호인>의 엔딩크레딧에도 이름이 등장했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배우 하지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즐겨봤던 것으로 추정되는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여주인공 ‘길라임’ 역할을 맡은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차움의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원은 박 대통령이 자신이 맡았던 극중 역할의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TV 뉴스를 보다가 길라임이 언급되는 것을 듣고 놀랐다. 한제인(차기작에서 맡은 역할의 극중 이름)은 쓰지 마세요”라고 사이다 발언을 했다. 그는 자신이 리스트에 오른 것에 대해 “저는 배우 하지원을 떠나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다. 지금 여러분들이 슬픔이 큰 것처럼 저도 같이 큰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 12월 29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가 연 기자회견에 참가한 문화예술인들이 정부의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과 관련해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도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 문학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영어권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당시 문체부는 김종덕 장관 명의로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축하하는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앞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세종도서(옛 문화부 우수도서) 선정·보급 사업 심사에서 배제돼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소설은 한강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집필한 것으로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중학생 ‘동호’와 그 주변 인물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내 화제를 모았다.
한강은 지난 13일 광주시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광주트라우마센터 주최로 열린 ‘치유의 인문학’ 강좌에서 “<소년이 온다>를 낸 후 내가 블랙리스트 올랐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직접 블랙리스트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 논란의 핵심 인물인 고영태의 가족사가 실린 것으로 추정되는 시집 <만인보>를 쓴 고은 시인 또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고은 시인은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그는 세월호 추모 집회에도 참여한 바 있다.
고은 시인은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것에 대해 “영광이다. 우리 정부가 얼마나 구역질나는 정부인가 알 수 있다. 자기 정치노선에 반대하는 세력도 하나 없고, 그런 세상이 어디 있겠나”고 일갈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 28일 자신의 트위터에 “고은 선생님, 그리고 수많은 문화예술인들께 미안합니다. 대한민국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며 사과문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이밖에도 <촛불의 노래를 들어라>의 공동 저자인 함성호 시인, <눈물은 왜 짠가>를 펴낸 함민보 시인도 리스트에 올랐다.
국내 유명 만화가 또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만화작가 주호민을 비롯해 이충호, 강풀 등의 이름이 기재됐다. 특히 영화 <내부자들>의 원작자로 알려진 만화가 윤태호 작가는 이례적으로 두 차례 이름이 거론됐다. 윤 작가는 ‘세월호 시국선언’을 행했다는 이유로 한 차례, 박원순 시장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다시 한 차례 블랙리스트에 등장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김상훈 기자 ksanghoo@ilyo.co.kr
문화예술계 유명인들 반응…이외수 “내 이름 왜 뺐어! 개서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유명인들의 명암도 엇갈리고 있다. 소설가 이외수 씨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서 자신이 제외된 것에 대해 서운함을 토로했다. 이 씨는 지난 28일 자신의 SNS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 “명단 발표됐을 때 제 이름이 빠져 있어 극심한 소외감과 억울함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며 “2년 동안 암 투병으로 병원에 묶여 있었으므로 명단에서 누락되는 것은 당연지사인데도 무슨 정치모리배들과 한패 취급이라도 받는 듯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씨는 자신이 청와대 사찰 대상이었다는 의혹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런데 돌연 사찰 대상자로 이름이 거론되다니 이건 뭐 웃어야 할지 참 표정관리가 안 되는 국면”이라며 “아직 대한민국이 민주 공화국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한가 보다”라고 토로했다. 지난 15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4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청와대가 양승태 대법원장과 법원장급 인사, 이외수에 대해 일상생활을 사찰했다고 폭로했다. ‘블랙리스트’ 명단에 의외의 이름 박명수가 올라 있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다. 사진출처=MBC ‘무한도전’ 캡처 가수 이승환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스스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를 자청하기도 했다. 이승환은 지난 11월 12일 열린 광화문광장 촛불 집회 무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해 창피한 기분”이라며 “그래서 요즘 더욱 분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승환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확산되자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을 쏟아냈다. 지난 11월 1일에는 자신의 소속사 건물 외벽에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촛불집회에 참석해 “나는 정치인들 편이 아니고 시민들의 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승환에 대해 일각에선 과거 차은택과의 인연 때문에 제외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차은택이 이승환의 뮤직비디오 연출을 주로 도맡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승환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차은택과) 연락 끊긴 지 5~6년 정도 됐다”고 해명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의외의 이름이 올라 있어 화제가 되는 인물도 있다. 개그맨 박명수가 주인공이다.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박명수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박명수가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지지 선언을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 10월 <한국일보>가 최초 보도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을 한 문화예술인 4110명 명단 중 박명수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이외에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보인 박명수의 정치 풍자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박명수는 <무한도전>이 향후 10년을 이끌 차세대 리더를 선출하기 위해 마련된 ‘선택! 2014’에서 후보자로 나와 담화나 토론 진행 중 수첩을 꺼내 읽고, 박 대통령과 비슷한 유체이탈 화법을 선보였다. 또한, 프로그램 중 당선이 유력한 유재석 후보를 향해 “당신 막으려고 나왔어요”라고 말하는 등 지난 2012년 대선 토론 당시 이정희 전 후보를 연상케 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에 대해 박명수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제가 왜 블랙리스트에 올랐는지 모르겠다”며 “전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전문 웃음꾼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소회를 피력했다. [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