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골프계 쌍두마차 전인지(왼쪽)와 박성현은 2017년부터 LPGA 무대에서 색다른 경쟁을 벌인다. 연합뉴스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 중 가장 핫한 선수를 꼽는다면 단연 전인지와 박성현이다. 2016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루키 시즌을 보낸 전인지는 허리 통증을 참아가며 기어코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신인왕과 최저타수상을 수상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에서 7승을 올리며 다승왕과 상금왕, 평균타수 1위에 오른 박성현은 2017 시즌부터 LPGA 투어를 누빈다. 남녀 골프 선수들을 통틀어 가장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는 두 선수는 한 살 선후배 사이. 박성현이 선배이다.
2017년부터 LPGA 무대에서 색다른 경쟁을 벌이는 전인지와 박성현한테는 마음 속 스승이 있다. 현재 이들을 지도하고 있거나 지도했던 코치들이다. <일요신문>에선 전인지, 박성현 스승으로부터 두 선수의 2017 시즌을 예상해본다.
한국 여자 골프는 해마다 스타를 배출한다. 2014년이 김효주의 해였다면 2015년은 전인지였다. 모두 LPGA를 향해 미국으로 떠난 후에는 박성현이 바통을 이어 받고 각종 타이틀을 섭렵했다.
전인지는 2016년 1월 세계 랭킹 10위로 LPGA 투어를 시작해 3위로 시즌을 마쳤다. 준우승과 3위 등을 반복하며 우승에 갈증을 느끼던 차에 에비앙챔피언십에서 역대 최소타 신기록(21언더파 263타)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하는 바람에 루키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인지의 스승은 박원 골프아카데미 원장. 프로골퍼 출신이 아니지만 선수의 심리를 꿰뚫은 맞춤형 처방으로 전인지를 샷과 멘털이 가장 뛰어난 프로로 키운 참 스승이다. 시즌 중 중요한 대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전인지를 챙긴다는 박 원장은 LPGA 2년차인 전인지의 새해 성적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나타냈다.
“2016년 허리 부상에도 불구하고 LPGA 무대에 잘 적응하면서 다양한 성과를 냈다. 물론 2년차 징크스에 시달릴 수도 있지만 2016년 장거리 이동과 스케줄 관리를 직접 해가며 홀로서기에 성공한 부분이 전인지를 더욱 강하게 성장시켰다고 본다. 워낙 기복이 없는 선수라 새해에도 계속 좋은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박 원장은 지난 3월 허리 부상을 당했던 게 전인지를 시즌 내내 괴롭혔다고 설명했다.
“두세 개 대회를 연속으로 참가하질 못했다. 통증이 심해져 2~3주 연속 대회에 나갔다가 1~2주는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그렇다보니 대회 출전 횟수가 적었다. 이번에 시즌 마치고 귀국할 때는 아예 클럽을 챙겨오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동안 허리 통증을 완쾌해서 미국으로 돌아가자고 결심한 터라 지난 5주간 골프채를 쳐다보기만 했다. 다행인 것은 통증 부위가 조금씩 완쾌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간신히 회복해서 조금씩 클럽을 잡아보고 있고, 러닝도 하면서 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부상 중에도 신인왕을 수상한 근성이 있는 선수라 2017 시즌 부상만 없다면 분명 더 높이 날아오를 것이다.”
박성주 코치는 박성현이 처음 골프를 시작할 무렵인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나 졸업할 때까지 골프의 공격적인 스윙을 가르친 스승이다. 박성현은 인터뷰 때마다 박성주 코치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박성주 코치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2017 시즌을 LPGA에서 맞이하는 제자 박성현에 대해 두 가지 시선을 나타냈다.
“성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승부욕이었다. 대부분 어린 아이들은 골프를 배우면서도 최선을 다하기보단 산만하고 노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러나 성현이는 달랐다. 정해진 프로그램을 정확히 소화했고, 집중력이 매우 뛰어났다. 성현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저 아이는 분명 크게 성공할 것 같다’라고 생각했을 정도이다. 성현이의 성격이 내성적이다. 어머니도 말수가 적은 편이다. 그런 부분이 LPGA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성현이의 골프 스타일만 놓고 보면 한국보다는 LPGA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 페어웨이가 넓어서 단점으로 지적된 OB가 거의 없을 것이고, 러프가 길어도 헤드 스피드가 좋아서 유리한 스코어를 기록할 것이다.”
그렇다면 박원 원장과 박성주 코치는 내년 LPGA에서 경쟁을 벌이는 전인지, 박성현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먼저 박원 원장의 설명이다.
“박성현은 좋은 잠재력을 갖고 있고, 한국에서부터 전인지랑 여자 골프계의 ‘쌍두마차’로 불렸다. 이미 적응을 마친 전인지에 비해 이제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박성현이 불리할 수 있지만 2016 시즌 LPGA 투어에 참가하면서 이미 좋은 성적을 올린 터라 골프 코스가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두 선수가 실제 굉장히 친하다. 그러나 친한 건 친한 것이고, 경쟁은 또 다르다. 박성현이 LPGA에 도전하면서 전인지도 ‘신발끈을 다시 조여 매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본다. 의식을 안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박성주 코치도 두 선수가 건강한 긴장감을 형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두 선수의 플레이가 워낙 다르다. 어떤 코스에선 전인지가 앞설 수 있고, 또 다른 코스에선 박성현이 앞서갔다가 서로 경쟁이 붙을 수도 있다. 골프가 개인 운동이긴 해도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한국 여자 골프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두 선수의 조합만으로도 2017 시즌 LPGA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두 선수 모두 좋은 자극을 받아 동반 상승하리라 본다.”
그렇다면 스승들은 제자들에 대해 걱정이나 우려하는 부분은 없을까. 이번엔 박성주 코치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성현이의 경기력에 대해선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단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약간 신경 쓰이는 건 있다. 성현이가 한국 음식 외엔 외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입이 짧다. 그리고 내성적인 성격이 다른 LPGA 선수들과 어울리는데 어떻게 작용될지 잘 모르겠다. 그 외에는 걱정보단 기대가 더 크다.”
박원 원장은 박성현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어 그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성현이는 주변의 기대가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기대에 너무 의식하지 말고 하나씩 천천히 해나가길 바란다. 조급해 하면 모든 게 엉클어진다. 변화된 환경을 즐겼으면 좋겠다. 어차피 모든 게 새로운 환경이 될 텐데 대범한 자세로 그런 환경조차 신나게 받아들인다면 박성현다운 경기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 박성현, 전인지를 오랫동안 취재했던 연합뉴스의 권훈 기자는 “두 선수처럼 스타일이 다른 선수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각각의 특징을 열거했다.
“전인지는 확률이 높은 골프를 치는 타입이다. 웬만해선 실수를 안 해 매번 안정적인 스코어가 나온다. 보기나 더블보기로 망가지는 스타일이 아니다. 모든 샷이 다 좋고 영리하게 플레이한다. 단점은 박성현 같은 폭발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박성현은 몰아치는 걸 즐긴다. 그게 장점이 될 때도, 또 단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박성현이 하는 골프에 갤러리들이 몰려드는 건 그의 경기력이 화끈하기 때문이다. 지고 있다가 스코어를 뒤집으며 역전 우승을 거두는 장면에 갤러리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낸다. 전인지는 리드하는 경기를 내주진 않지만 지고 있는 경기를 뒤쫓아 가 우승을 거두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조금은 부족한 편이다.”
즉 전인지는 안정되고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반면 박성현은 ‘모 아니면 도’와 같은 골프 스타일을 즐긴다는 것. 권훈 기자는 이들을 따르는 팬들의 성향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얘기를 곁들였다.
“전인지 팬들의 대부분은 삼촌 팬들이 많다. 반면에 박성현은 언니, 아줌마 팬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팬들은 서로를 라이벌 관계로 보지 않는다. 그냥 한 선수로 인정할 뿐이다.”
전인지의 팬카페 이름은 ‘플라잉 덤보’. 회원만 8400여 명이 넘는다. 박성현은 ‘남달라’란 팬카페를 두고 있는데 회원은 3900여 명이다. 팬카페 회원 숫자만 봤을 땐 전인지가 두 배 정도 많은 팬들을 보유했지만 이 숫자가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게 권훈 기자의 설명.
“전인지는 외향적이고, 박성현은 내성적이다. 전인지는 메이저대회 우승을 거두는 등 LPGA 투어 적응을 마쳤고, 박성현은 적응을 앞두고 있다. 2017년 시즌만 놓고 본다면 전인지가 앞서 나갈 수 있는데 박성현도 만만치 않는 실력의 소유자라 전인지의 상승세를 지켜보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LPGA 선수들 중 박성현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선수가 거의 없다.”
현재 전인지는 한국에 남아 재활을 겸한 웨이트트레이닝에 열심이다. 1월 3일 미국 올랜도로 출국할 예정. 박성현은 이미 지난 12월 27일, 미국으로 출국, 2017 시즌을 대비해 동계훈련에 돌입했다. LPGA 투어 개막은 2017년 1월 24일(한국시간) 바하마에서 열리는 바하마클래식을 시작으로 모두 35개 대회가 열린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박성현의 롤모델 박인비는? 박 vs 박 진풍경 벌어질까 116년 만에 올림픽 종목에 포함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손가락 부상을 딛고 극적인 경기를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건 ‘골프여제’ 박인비. 그러나 박인비한테 2016년은 손가락 부상과 허리 통증으로 고생했던 한 시즌으로 기억될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과 LPGA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등 인생 기록들을 달성했지만 10개 대회 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상금 랭킹 1위를 달리던 숫자가 69위(25만 3000달러)로 떨어지며 체면을 구겼다. 올겨울 박인비의 화두는 ‘절치부심’과 ‘회복’이다. 12월 10일 미국으로 떠나 개인 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부상이 계속되면서 스윙과 경기 감각이 떨어졌다고 판단했고,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풀 시즌을 소화하기 위해선 다른 선수들 보다 두세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훈련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재 18홀 라운드를 무리 없이 돌 정도라는 그는 2017년에는 메이저 대회에 집중하면서 떨어진 성적을 회복하겠다는 얘기도 밝혔다. 박성현은 박인비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2015년 11월, ‘ING생명 챔피언스 트로피’ 싱글매치플레이에서 박인비와 맞붙었다가 3홀 남기고 5홀 차이로 크게 이긴 바 있다. 박성현은 당시 박인비와의 맞대결에 대해 “첫 홀부터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세 번째 홀까지 내 정신으로 골프를 칠 수 없었다”면서 “그 경기는 인비 선배를 이겼지만 선배의 플레이 스타일과 인터뷰 태도, 후배를 챙기는 모습에 더 큰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LPGA 도전하는 새내기 박성현과 LPGA의 여제로 군림하는 박인비가 챔피언조에서 맞붙는 일이 벌어질까? LPGA 팬들로선 쟁쟁한 실력파 선후배들의 대결에, 활약에, 한껏 기대를 부풀릴 수밖에 없다. [영] |